한 연주자나 그룹이 어렵게 얻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자신들에게 인기를 가져다 준 음악적 요인을 그대로 지속시킴으로써 기존 팬들을 잡아두는 것, 동시에 약간의 변화를 통해 사운드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켜 신규 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두 가지 전략이다. 이렇게 해야 익숙하면서도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음악을 들려준다는 평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매 앨범마다 그 주인공들은 보수적인 부분과 진보적인 부분을 어떤 비율로 배합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곤 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New York City>의 주인인 브라질리안 걸스 또한 앨범을 녹음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은 새로운 방향성을 앨범에 더 많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실제 기존 브라질리언 걸스가 발매했던 두 장의 앨범을 잘 알고 있는 감상자라면 이들의 이번 새 앨범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 역시 내가 듣고 있는 앨범이 브라질리안 걸스의 앨범이 맞는 것일까 다시 확인을 할 정도로 낯선 느낌을 받았다.
브라질리안 걸스는 그 그룹이름으로 인해 브라질 출신의 아리따운 여성들로 구성된 그룹이 아닐까 생각하기 쉬운데 실상은 키보드 연주자 디디 구트만과 드럼 연주자 애론 존스톤, 이렇게 두 명의 남자 연주자와 여성 보컬 사비나 슈바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앨범까지 베이스 연주자 제스 머피가 참여한 4인조였지만 이번 앨범부터 제스 머피는 세션으로 빠지고 3인조로 그룹을 재 정비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브라질 출신이 아니고 주무대 또한 뉴욕이다. 그러니까 브라질리안 걸스라는 그룹 명은 전혀 이 그룹의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그룹이 “브라질 소녀들”이란 그룹 이름을 사용했던 것은 그룹의 탄생이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일렉트로 재즈, 라운지 팝 등 보사노바, 삼바 등의 화려한 라틴 리듬을 종종 사용하는 일렉트로니카 파티 뮤직의 성장 속에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이들은 다양한 이국적 리듬을 사용한 경쾌하고 흥겨운 사운드로 수많은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클럽 뮤직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브라질리언 걸스는 2005년 첫 앨범 <Brazilian Girls> 때부터 도시적 느낌의 세련된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클럽 뮤직을 들려주는 그룹으로 평가를 받으면서도 여타 프로그래밍 된 사운드가 중심이 된 그룹과는 다른 개성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들이 실제 연주를 하는 그룹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은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음악에서 흔히 발견되는 프로그래밍 된 단순한 리듬 패턴보다 보다 역동적인 연주의 맛이 강하다. 동시에 보컬이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도 차이라 하겠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독일의 뮌헨과 프랑스의 니스 등에서 성장하며 이탈리아어는 물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5개 국어를 습득한 사비나 슈바는 곡에 따라서 언어를 바꾸어 노래하며 그룹을 대표하는 아이콘 역할을 해냈다.
세 번째가 되는 이번 앨범에서도 브라질리언 걸스는 그들만의 세련된 도시적 사운드를 들려준다. 앨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뉴욕을 화두로 삼은 이번 앨범에서 이들은 수수함보다는 트렌드를 이끄는 멋쟁이를 떠올리게 하는 세련된 도시적 감각을 뽐낸다. 그런데 앨범에 담긴 음악을 통해 뉴욕을 생각하면 이들이 뉴욕의 코스모폴리탄적인 면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나 싶다. 즉, 미국 문화의 중심지를 넘어 세계 문화의 중심지,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접점으로써 뉴욕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실제 이 앨범의 타이틀은 en 번째 앨범 <Talk To La Bomb>의 성공과 함께 세계 곳곳을 다닌 후 뉴욕이 세계 여러 도시의 특징을 조금씩이라도 담고 있음을 느끼면서 정해졌다고 한다. “St. Petersburg”, “Berlin”처럼 다른 도시를 주제로 한 곡들이 앨범에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아가 “Internacional 국제적”, “L’interprete 통역”같은 범세계적 느낌을 주는 스페인, 프랑스 단어들, “Mano De Dios 신의 손”, “Nouveau Americain 새로운 미국인”처럼 영어 외의 언어들이 수록 곡들의 제목으로 사용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 하겠다.
하지만 브라질리언 걸스가 뉴욕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려 했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운드를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를 결정짓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앨범에서 이들은 기존 일렉트로니카 그룹으로서의 이미지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재즈, 레게, 보사노바 등의 리듬을 사용하여 파티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렉트로닉 댄스그룹의 이미지를 벗어나는, 스타일의 측면에 있어 진지하고 지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이전 두 앨범보다 상당히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Berlin”에서는 카바레적인 분위기와 회전목마 등이 있는 놀이동산의 축제적 분위기를 결합한 듯한 사운드를, “Losing Myself”에서는 복고적인 고고 스타일의 오르간 사운드를,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면을 띠고 있는 “Good Time”에서는 80년대 뉴웨이브 팝을 연상시키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리고 “Internacional”의 경우 기존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사운드지만 세네갈 출신의 보컬 바바 말을 게스트로 불러 이국적인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예를 든 곡들은 물론 충분히 파티에서 흥겹게 몸을 흔들기 위한 음악으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분명 스타일의 측면에서는 기존 파티 뮤직과는 다른 면을 보인다. 게다가 “Nouveau Americain”, “L’interprete”같은 곡은 토킹 헤즈, 디페쉬 모드 같은 뉴웨이브 신스 팝 그룹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또한 앨범의 마지막 곡 “Mano De Dios”는 몽환적이고 명상적인 사운드로 이번 앨범을 단순한 클럽용 앨범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 밖에 앨범 전체를 듣다 보면 큐어, 뷔욕 같은 개성파 그룹이나 뮤지션의 잔영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클럽을 벗어난 이러한 다채로운 사운드의 시도는 브라질리언 걸스가 이번 앨범을 통하여 자신의 음악적 근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유추하게 한다. 즉, 재즈, 보사노바, 래게 등의 음악 외에 뉴웨이브, 모던 록을 이번 앨범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근간으로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영향은 다름 아닌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교차, 공존하는 뉴욕 생활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튼 이번 앨범을 통해서 브라질리언 걸스는 보다 진지하고 다채로운 색을 지닌 감상용 음악을 추구하는 그룹으로서 자신들을 재정비했다. 이런 놀라운 변화에 대해서 기존 브라질리언 걸스의 음악을 좋아했던 감상자들의 경우 익숙함보다 많은 생경함의 비율에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릴 지도 모른다. 이들의 흥겨운 클럽 음악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나 변화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편견 없이 바라본다면 이번 앨범이 지닌 다양한 감상 가능성에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Good Time”같은 곡이 있으니 무작정 불만을 가질 수도 없을 듯하다. 그리고 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앨범을 통해 브라질리언 걸스가 새로운 감상자 층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