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로 노래한 샹송의 고전들
프랑스 하면 우리는 보통 ‘예술의 나라’ 혹은 ‘문화의 나라’를 떠올립니다. 실제 미술, 문학, 건축, 패션 등의 역사를 살펴보면 프랑스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은 상당히 크고 또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영미 팝 음악이 전세계의 대중 음악을 획일화 하는 경향이 있지만 70년대 아니 8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샹송은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이 당시 샹송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몇 곡은 번안 곡으로 노래되기도 했었죠. 아마 나이 지긋한 감상자 분들에게 이브 몽탕, 세르쥬 갱스부르, 에디트 피아프, 클로드 누가로, 샤를 아즈나부르 같은 가수들의 이름은 젊은 시절을 상기하게 하는 친숙한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재즈에 있어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수도로 통하고 있습니다. 재즈의 발생지인 미국 뉴 올리언즈가 원래 프랑스령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프랑스가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이나 자신의 음악을 펼칠 무대가 좁아지는 현실을 피해 건너온 미국 연주자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후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으로 프랑스만의 독자적인 재즈 환경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샹송의 전통이 있고 일찌감치 재즈를 수용했다면 샹송을 주제로 한 재즈 앨범이 좀 있을 법한데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재즈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샹송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재즈의 층위에서 받아들여진 경우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연주되어 온 스탠더드 재즈 곡목을 살펴봐도 파리를 주제로 한 곡들은 좀 있지만 샹송 그 자체를 가져온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로도 유명한 ‘C’est Si Bon 너무 좋아’와 ‘Autumn Leaves’란 제목으로 알려져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로 친숙한 ‘Les Feuilles Mortes 고엽’ 정도가 보일 뿐입니다. 그나마 최근 프랑스 연주자들이 샹송을 종종 재즈로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노래하는 경우는 또 흔치 않은 것 같네요.
프랑스 출신의 아와는 재즈를 노래하는 보컬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번 첫 앨범 <L’amour 사랑>은 샹송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기 드문 샹송을 재즈로 노래한 앨범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앨범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참 재미있습니다. ‘인연’의 이어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체 이름이 아와 리(Awa Ly)는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녀는 아프리카 혈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 다카르 출신의 부모가 그녀를 파리에서 낳았던 것이지요. 그녀는 보통 방리외(Banlieu)라 불리곤 하는 파리 근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주로 이민자들이 살았던 동네였었는지 살면서 프랑스 외에 아랍, 스페인, 이탈리아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원하던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곳은 파리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로마였습니다. 약 10년 전, 그러니까 20대 초반 무렵 로마로 건너가 그곳의 주요 재즈 연주자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그녀는 보다 안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앨범 제작을 할 기회를 얻기에는 좀 어려웠던 듯 합니다. 그러던 차에 일본의 앨범 제작자 마코토 키마타가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이 일본인 제작자는 케니 드류 트리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등의 앨범 제작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 그는 잘 알려진 연주자들의 앨범뿐만 아니라 직접 세계를 돌며 발굴한 연주자나 보컬들의 앨범을 다수 제작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앨범들은 대부분 일본을 중심으로 화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아와의 부드럽고 소박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앨범 제작을 결심했고 그 결과가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앨범 <L’amour>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아프리카 혈통의 여가수가 프랑스 샹송의 대표곡들을 미국의 재즈 형식으로 이탈리아 연주자들의 깔끔한 반주를 배경으로 일본인 제작자의 요구를 따라 제일 먼저 앨범을 듣게 될 일본 감상자들을 대상으로 노래합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적어도 다섯 문화가 어우러진 앨범을 만나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마코토 키마타는 연주자의 개성도 개성이지만 무엇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앨범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제작하는 앨범들은 대부분 듣기 쉬운 형식과 달콤한 정서로 가득 하곤 합니다. 이것은 아와의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와가 재즈 스탠더드 곡이나 창작곡이 아닌 프랑스 샹송의 고전들을 노래하게 된 것도 마코토 키마타의 기획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C’est Si Bon 너무 좋아!’부터 프랑소와즈 하디의 노래로 친숙한 ‘Comment te dire adieu 어떻게 너에게 이별을 말할까?’, 에디트 피아프의 명곡 ‘‘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 클로드 누가로의 경쾌한 노래로 알려진 ‘Tu verras 알게 될 거야’, 샤를 아즈나부르의 유랑자적 슬픔이 담긴 노래 ‘La bohème 라 보헴’, 라틴적 향취가 느껴지는 세르쥬 갱스부르의 ‘Couleur café 커피 색’, 질베르 베코의 ‘Et maintenant 그리고 지금’,‘ 샤를 트레네의 ‘Que Reste-t-il De Nos Amours 우리의 사랑에서 무엇이 남았나요?’에 이르는 곡들은 프랑스 샹송사를 빛낸 곡들인 동시에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곡들이기도 합니다. 예외가 있다면 아와 본인이 직접 가사를 쓴 ‘L’amour Qui Va 사랑은 떠나고’와 스팅의 노래로 알려진 ‘La Belle Dame Sans Regrets 후회 없는 여인’정도일까요? 이것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마 앨범을 듣다 보면 제목은 모르지만 멜로디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곡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들 곡들을 아와는 동료 이탈리아 연주자들의 재즈의 긴장을 반영하면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 연주를 배경으로 화려한 기교 대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듯 담백한 창법으로 원곡의 멜로디를 존중하며 노래합니다. 그래서‘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이나 ‘La Boheme 라 보헴’처럼 느리고 슬픈 분위기의 노래들은 마치 세상에는 슬플 일이 없다는 듯이 긍정, 수용의 분위기로 노래하고 ‘Couleur Café 커피 색’, ‘C’est Si Bon’처럼 흥겨운 곡들은 손가락 하나 정도 까딱거리면 충분하다는 듯이 흥분을 절제하며 노래합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노래가 심심하다거나 개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노래는 감상자를 미소 짓게 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대신 달콤한 여유를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프랑스어, 샹송, 그리고 재즈에서 기대하는 낭만을 소박하게 종합했다고 할까요? 특히 부드러운 프랑스어에 내재된 이국적 낭만성이 앨범을 보다 달콤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프랑스 여행을 꿈꿉니다. 그것은 오래된 건축물부터 여러 가지 볼 것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프랑스에 가면 왠지 낭만에 젖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프랑스 여행을 꿈꾸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그 프랑스 여행에서 기대하는 낭만이 아와의 이 앨범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녀의 노래와 그 아래로 흐르는 깔끔한 연주의 어우러짐을 따라가다 보면 부드러운 프랑스어가 있고 달콤한 샹송이 있으며 기분 좋은 재즈가 있는 프랑스, 그리고 그곳의 낭만을 분명 상상하게 될 것입니다.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받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재즈 같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