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idwinter’ Night’s Dream – Loreena McKennitt (Quinlan Road 2008)

성스럽고 거룩한 겨울을 그려낸 음악

만약 음악으로 세계 지도를 만든다고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단일 민족, 단일 문화를 고집하는 우리 한국 지도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겠지만 아마 지금의 세계 지도와는 다른 지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가운데 유럽 서쪽을 보면 아일랜드와 영국의 스코틀랜드, 웨일즈, 그리고 프랑스의 브르타뉴를 아우르는 새로운 음악 영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지역은 바로 켈트 음악이 지배하는 곳이다.

켈트 문화는 한 때 서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였다. 하지만 게르만족이 유럽을 장악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한편 그 일파인 노르만족이 1066년 영국을 점령하게 되면서 켈트 문화는 이교도적 신비를 지닌 것으로 주류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의 생명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법. 18세기부터 켈트 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더니 20세기 들어서면서는 켈트 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 현재는 월드 뮤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앨범 <한 겨울 밤의 꿈>의 주인공 로리나 맥커닛의 음악은 바로 켈트 음악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1957년 서유럽이 아닌 캐나다에서 태어나 아직도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계의 후손이기에 켈트 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클래식 피아노와 보컬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그녀의 첫 음악 활동은 켈틱 하프를 거리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5년 직접 퀸란 로드라는 레이블을 세우고 녹음한 앨범 <Elemental>로 앨범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으로 역시 켈트 음악적 요소를 많이 차용하곤 하는 마이크 올드 필드와 함께 유럽 순회 공연을 펼치고 나아가 <하이랜더 3> 등의 영화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면서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런 그녀의 성공은 1997년도 앨범 <The Book Of Secrets>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이 앨범은 캐나다와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그녀를 단번에 월드 뮤직의 슈퍼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큰 성공을 거둔 이듬해 그녀는 보트 사고로 약혼자를 잃게 되었다. 그러면서 1999년 라이브 앨범 <Live In Paris & Toronto>를 발매하기는 했지만 약 9년간 스튜디오 앨범을 녹음하지 않은 채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006년 말 앨범 <An Ancient Muse>로 상업과 비평적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언제나처럼 피터 가브리엘이 운영하는 리얼 월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지난 2008년 10월에 선보인 앨범 <A Midwinter Night’s Dream>은 로리나 맥커닛의 복귀 후 두 번째 앨범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앨범은 공백기를 갖기 전의 시간과 현재를 잇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95년 그녀는 <A Winter Garden: Five Songs for the Season>이라는 5곡을 수록한 EP를 발매했었다. 이번 <한 겨울 밤의 꿈>은 바로 이 EP에 8곡을 새로 추가한 확장판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그녀가 새삼 1995년도 EP를 상기한 것은 앨범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다. 지금까지 그녀는 앨범마다 확고한 주제를 하나씩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음악을 직접 만들고 연주하며 노래해왔다. 그래서 그녀는 필요에 따라 아일랜드의 역사와 민속 음악, 켈트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 등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담은 계절을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겨울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를 위해 가벼이 녹음했던 1995년도 EP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노래와 연주로 표현한 겨울은 단순히 어둡고 추운 시간은 아니다. 앨범 내지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낮은 밤으로 빠져들게 되고 이어 빛과 희망의 전령인 봄이 돌아온다’라고 썼듯이 그녀에게 겨울은 희망과 밝음으로 가는 통과의례적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앨범에 담긴 음악들은 어둡고 우울하지 않다. 대신 봄을 위해 가을의 풍요와 스스로를 단절하는 겨울의 숭고함을 성스럽고 거룩한 분위기로 그려낸다. 여기에는 특히 로리나 맥커닛의 청아하고 신비로운 목소리가 큰 몫을 담당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겨울 밤의 차가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그 밤이 단순히 까맣게 어두운 밤이 아니라 수많은 신비-‘The Holly And The Ivy’, ‘Snow’, Emmanuel’등을 들어보라-와 전설- ‘Good King Wenceslas’, ‘Seeds of Love’등을 들어보라-로 풍요로운 밤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한편 영토는 사라지고 문화만 남은 켈트 음악이기 때문일까? 이 앨범은 감상자를 저절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가 살아 있던 중세로 안내한다. 하지만 거대한 서사의 세계가 아니라 자연이 지금 보다 더 건강했고 순수했던, 인간이 지금보다 더 자연의 일부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갔던 그 중세의 세계다. 그녀의 음악이 켈트 음악 중심의 월드 뮤직으로 분류되는 동시에 종종 뉴 에이지 음악으로 분류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그녀의 음악을 듣다 보면 데이비드 아켄스톤(David Arkenstone)같은 뉴 에이지 아티스트의 음악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그녀의 음악은 종종 비교되곤 하는 엔야(Enya)의 음악과 차별된다. 사실 엔야의 음악은 켈트적 요소가 담겨 있지만 보다 팝적인 맛이 강하지 않은가? 그에 비한다면 켈트 문화가 융성했던 시대를 연상시키는 로리나 맥커닛의 음악은 보다 전통적이고 또 그만큼 순수한 맛이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단순히 켈트 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만 집중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그녀는 켈트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하여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곤 했는데 특히 중동지역의 음악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로 ‘Noël Nouvelet!’,‘God Rest Ye Merry, Gentlemen’ 같은 곡에서 고대 페르시아의 영혼적 신비가 느껴지는 리듬과 선율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God Rest Ye Merry, Gentlemen’은 리사 제라드의 마력적인 목소리에 비교(祕敎)적 사운드가 어우러졌던 데드 캔 댄스의 음악을 연상시킬 정도로 주술적 리듬과 분위기가 켈트 문화권에 위치하지 않은 이국적이고 명상적인 공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밖에 아랍 문화권의 우드(Oud), 아프리카 문화권의 센티르(Sentir), 프랑스 헝가리 등에서 주로 사용된 허디 거디(Hurdy Gurdy), 그리고 그리스 리라와 류트 등 다양한 문화권의 악기들을 사용하여 그녀의 음악이 켈트 음악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새로이 만들어진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혹자는 겨울을 이야기한 이 앨범 수록곡 가운데 크리스마스 캐롤이 있다고 해서 겨울, 그것도 12월에만 들어야 하는 앨범으로 오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앨범은 꼭 겨울 그리고 12월에만 들어야 하는 앨범이 아니다. (또한 앨범에 담긴 캐롤은 우리가 생각하는 캐롤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월드 뮤직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 현재의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으로 감상자를 안내하듯 로리나 맥커닛의 이번 앨범은 다큐멘터리처럼 구체적인 겨울이 아니라 낯설고 그래서 신비로운 겨울로 감상자를 안내할 뿐이다. 그리고 그 겨울은 언급했듯이 성스럽고 거룩한 겨울이다. 그러므로 진정 이 앨범을 들어야 할 때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실제 겨울 외에 우리의 마음이 건조해지고 상상력이 빈곤해질 때, 새로운 희망으로 삶을 재충전해야 할 때다. 그 때 차갑고 투명한 로리나 맥커닛의 겨울 음악들은 치유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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