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소박한 긍정과 찬미로 현대인을 위로하는 사운드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내렸던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 11시,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를 걷는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지만 하늘은 여전히 짙은 회색 빛 구름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렇기 기분이 우울하지 않다. 비가 도시의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냈기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진 보도 블록이 평소보다 더욱 반짝거리는 듯하다. 가로수도 마찬가지. 나뭇잎의 푸른 색이 더욱 더 선연(鮮然)하다. 그 나무 사이로 분주히 날아다니는 참새들의 움직임도 훨씬 더 날렵하다. 아직 날이 흐리지만 이상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다. 이제 곧 찬란한 태양이 뜰 것이고 그와 함께 뭔가 삶에 좋은 일이 생길 듯한 막연한 기대로 가득 차게 되는 날. 이 때 지나치는 커피숍의 문틈 사이로 노래가 들린다. 담백한 편곡과 편안하게 감기는 목소리를 듣자 의지와 상관 없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도시를 살아가면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짧은 행복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뿌듯함에 숨을 크게 쉬며 하늘을 보니 어느 새 구림이 걷히고 햇살이 기분 좋게 거리를 비추기 시작하고 있다.
다소 감상적으로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프리실라 안의 첫 앨범을 들으면서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이런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나처럼 음악을 듣고 그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연주나 창법, 전체 사운드의 흐름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음악이 이런저런 분석적 생각을 마비시키고 가슴으로 곧바로 들어올 때가 있다. 리뷰를 전문으로 쓰는 사람이라도 기본은 음악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개인적 느낌 이후에 이를 토대로 객관적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프리실라 안의 음악이 내게 그랬다. (그렇기에 이후에 진행되는 나의 글은 객관적 분석, 소개보다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성격을 띰을 미리 밝힌다.)
분명 1984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출신인 프리실라 안의 첫 앨범 <A Good Day>는 감상자의 정서를 무장해제 하는 매력이 있다. 그 정서적 매력이란 밝음, 긍정의 정서를 말한다. 물론 이런 정서를 지닌 음악은 많다. 그러나 프리실라 안의 노래 속에 담긴 밝음과 낙관의 정서는 무조건 밝음과 긍정 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되는 어둡고 우울한 정서를 아래에 깔고 있다. 즉, 20대의 젊은 여성이 막연하게 ‘내 삶은 반짝반짝 밝게 빛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올 해 우리나이로 25세인 이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20대의 발랄함을 유지하면서도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된 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아무래도 이 앨범이 꿈을 포기하려던 찰나에 행운처럼 찾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프리실라 안은 14세 때 록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처음 기타를 잡았다. 그리고 16세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전면허를 딴 이후부터는 노래하기 위해 필라델피아까지 1시간 반 거리를 왕복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후에 블루 노트에서 앨범을 발매하게 될 에이모스 리(Amos Lee)와 음악적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이런 그녀의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았을까?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려던 그녀에게 고교 선생님은 대학 진학을 하지 말고 곧바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라고 충고했다. (대단한 선생님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녀는 고교 졸업 후 기타 두 대와 옷 몇 가지를 챙겨 LA로 떠났다. 그리고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노래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노래 했다. 그러나 고된 웨이트리스 생활은 그녀의 꿈을 위협했다. 더불어 그녀의 음악 또한 어둡고 냉소적인 면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LA에서의 불안정하고 피곤한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가 대학 진학을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행운처럼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Hotel Café’에서 싱어송라이터 조슈아 라딘(Josua Radin)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와 음악에 반한 조슈아 라딘은 자신의 순회 공연에 그녀를 동반하는 한편 드럼 연주자이자 제작자인 조이 워론커(Joey Waronker)에게 그녀를 소개시켰다. 그렇게 해서 2006년 이번 첫 앨범에도 실린 “Dream”과 “I Don’t Think So”를 담은 EP를 녹음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무렵 그녀의 노래 실력을 잊지 않았던 에이모스 리가 자신의 앨범을 제작한 블루 노트에게 그녀를 추천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뉴욕으로 날아가 관계자들 앞에서 쇼케이스를 가졌고 그 결과 첫 앨범 <A Good Day>를 녹음할 수 있었다.
이처럼 힘든 삶의 끝에 첫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기에 앨범에 담긴 프리실라 안의 노래는 밝고 긍정적이면서도 결코 가벼이 들뜨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힘든 시기를 지난 후의 행복을 차분하게 감사하고 음미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담백한 기타 아르페지오를 시작으로 첼로가 햇살처럼 스며드는 사운드를 배경으로 청아한 프리실라 안의 목소리가 흐르는 앨범의 첫 곡 “Dream”을 들으면 누구나 저절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연상하지 않을까 싶다. 편하게 리듬을 타며 밝게 노래하는 “Leave The Light On”은 또 어떤가? 소풍을 가는 듯한 설렘이 느껴지는 “Find Way Back Home”은 또 어떠한가? 모두 삶에 대한 낙관적 긍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삶에 대한 소박한 감사의 정서는 사운드를 봐도 알 수 있다. 기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운드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담백하고 소박하다. 게다가 다양한 개성과 실력을 지닌 연주자들이 다수 참여했음에도 단출한 느낌을 준다. 또한 전체 사운드의 채도는 어떠한가? 결코 오후 두 시의 뜨거운 태양처럼 마냥 찬란하지만은 않다. 채도를 한 단계 낮춘, 흑백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잘 정돈된 색감으로 다가온다. 마치 비가 내린 후의 오전 11시처럼 말이다. 이러한 흐림 뒤의 갬, 밝음의 정서는 “Dream”과 ‘Morning Song’이라는 부제가 붙은 앨범의 타이틀 곡을 들으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들 곡들은 흐림과 맑음, 어두움과 밝음의 강한 대비효과로 작은 행복의 가치를 새삼 소중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한편 어려운 환경에서 여명처럼 찾아온 어떤 좋은 날(A Good Day)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나는 그녀의 노래가 도시를 건조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를 제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그녀의 노래는 늘 편안한 삶,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부단히 뛰고 땀을 흘리지만 손 끝 1센티미터 밖에 위치하는 듯한 그 행복과 안위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나아가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 속에 나만을 위한 작은 행복의 섬을 꿈꾸게 해준다.
사실 재즈를 주로 듣고 그에 관한 글을 쓰고 있기에 나는 그녀의 이 앨범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듣기 전에 기타를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Advance CD는 현재의 CD와는 다른 표지를 하고 있다-을 보고 비록 재즈의 명가라 불리는 블루 노트가 또 노라 존스의 단맛을 잊지 못하고 유사한 인물을 찾아 내어 키우려 하고 있구나 라는 부정적 생각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또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최근 블루 노트의 행보를 보면 여전히 재즈 명가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노라 존스의 성공 이후 재즈 밖의 앨범들, 특히 포크-팝 계열의 앨범들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재즈를 기대하고 프리실라 안의 이 첫 앨범을 구입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만약 첫 느낌이 앗! 기대와 다르다! 였다면 다시 한번 앨범을 감상해보시길 부탁 드린다. 선입견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진가, 음악적 참 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노라 존스와 그 이후에 발매된 포크 성향의 앨범들은 재즈라 생각하기엔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지만 음악적으로는 모두 훌륭했다. 프리실라 안의 이번 첫 앨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가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기 전에 가슴으로 바로 들어왔듯이 재즈를 기대했을 다른 감상자들 역시 재즈가 아닌 것에 불평하기 전에 그녀가 제공하는 긍정의 정서에 빠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