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Warrior – Return to Forever (Columbia 1976)

리턴 투 포에버 최고의 앨범이자 70년대 퓨전 재즈를 대표하는 명반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와 록을 결합하여 만들어 낸 퓨전 재즈. 197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 퓨전 재즈는 이전의 재즈 사조 변화들이 우선적으로 음악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것과 달리 새로운 질감의 사운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음악적인 변화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감의 사운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일렉트릭 기타의 거칠고 거대한 사운드였다. 실제 마일스 데이비스가 퓨전 재즈를 만들게 된 계기는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연주(와 그에 열광하는 대중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일스 데이비스는 기타를 편성에 넣어 녹음한 앨범 <Bitches Brew>(Columbia 1969)으로 본격적인 퓨전 재즈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아울러 자신의 밴드에 퓨전 재즈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재즈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젊은 연주자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그 가운데에는 칙 코리아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칙 코리아는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 합류하기 이전 이미 다양한 밴드에서 라틴 재즈와 하드 밥을 연주하며 경험을 쌓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활동하면서부터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알릴 수 있었다. 따라서 만약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없었다면 그는 리턴 투 포 에버(이하 RTF)를 결성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RTF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만든 퓨전 재즈를 가장 잘 발전시킨 밴드이자 나아가 70년대 퓨전 재즈를 대표하는 밴드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플로라 푸림, 에어토 모레이라, 스탠리 클락, 조 파렐 등이 함께 했던 RTF의 초기 모습은 재즈와 록을 결합한 퓨전보다는 재즈와 라틴 음악 그리고 팝이 결합된 느낌이 강했다. 실제 칙 코리아가 키보드를 연주했지만 전체 사운드는 어쿠스틱 사운드만큼 부드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다가 재즈 록 혹은 록 재즈라 불릴 정도의 강력한 사운드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그런 기타에 대한 관심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시절의 동료였던 기타 연주자 존 맥러플린이 이끌고 있었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가 이룬 대성공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그는 기타 연주자 빌 코너스를 영입하여 RTF를 록 성향의 기타가 전면에 드러나는 밴드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1974년 다시 빌 코너스를 보내고 당시 새로이 떠오르고 있던 20세의 신예 기타 연주자 알 디 메올라를 영입하여 완벽한 록 성향의 퓨전 재즈 밴드를 완성했다.

칙 코리아-알 디 메올라-스탠리 클락-레니 화이트로 구성된 밴드는 사실 3년 정도밖에 활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석 장의 앨범을 녹음했는데 그 가운데 1974년 작 <Romantic Warrior> 는 퓨전 재즈의 명반이자 재즈사의 명반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아울러 RTF의 여러 앨범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앨범으로 기록되고 있다.

실제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웨더 리포트 등 70년대를 풍미했던 여러 퓨전 재즈 그룹의 앨범들 가운데서도 이 앨범은 퓨전 재즈의 가장 이상적 사운드를 들려주었다고 해도 좋을 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리듬의 개념이 전통적인 재즈 리듬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면서도 솔로의 진행만큼은 재즈적 자유로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등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룬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런데 재즈와 록을 결합한 이 앨범의 퓨전 사운드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Bitches Brew>를 통해 제시했던 것과는 다른 독창성을 보여준다. 사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초기 퓨전 재즈는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를 적극 사용하여 질감에 있어서 그가 의도했던 대로 록적인 면이 강했지만 연주의 진행 방식은 프리 재즈의 집단 즉흥 연주에 더 가까운 양상을 보였다. 이것은 연주자들의 대가적인 기교를 드러내는 데는 아주 좋은 방식이었지만 다소 혼란스러운 진행과 구성은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다르다. 재즈와 록의 장르적 균형만큼 연주자 개인의 폭발적인 솔로 연주와 그들이 모여 함께 만들어낸 전체 사운드의 균형 또한 매우 뛰어나다. 사운드가 화려하면서도 난잡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특정 연주자의 현란한 솔로를 감싸는 반주 또한 상당히 화려한 진행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 연주자들이 완벽한 하나됨을 보인다는 것이다. 정말 앨범을 감상하다 보면 특정 연주자의 솔로 연주보다 레니 화이트의 정교한 드럼과 스탠리 클락의 빠르고 탄력적인 베이스, 알 디 메올라의 거칠고 공격적인 기타, 칙 코리아의 다양한 음색을 지닌 키보드가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는 합주가 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곤 한다.

한편 이런 정돈된 맛은 정교하고 치밀한 곡의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구성은 테마 합주-연주자 개개인의 솔로-테마 합주의 틀을 따르던 전통적인 재즈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다시 말해 같은 패턴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리듬 섹션을 배경으로 악기 별 솔로가 이어지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고 악기 별로 다른 배경의 솔로 공간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급박한 리듬 섹션의 진행 위에서 알 디 메올라의 거친 기타 솔로가 진행된다면 이어 등장하는 칙 코리아의 키보드는 보다 긴장을 이완시키는 분위기의 반주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식이다. 그리고 각 연주자의 솔로는 전체 사운드의 다양한 변화 속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또 연주자간의 솔로가 교차되는 사이에도 전체 연주자들의 다양한 합주가 마련되어 터닝 포인트를 형성한다. 그래서 전체 음악의 흐름은 상당히 서사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구성은 작곡과 편곡 단계에서 매우 세심한 고려를 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복잡한 구성에 공을 들이는 아방가르드 재즈의 영향이라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인기를 끌던 프로그레시브 록(혹은 아트 록)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앨범의 퓨전 사운드는 거친 질감의 록 사운드를 도입하는 것을 넘어 프로그레시브 록의 구성 방식까지 차용한 결과라 할 것이다. 실제 이 앨범은 당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예스(Yes), EL&P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의 음악을 연상시키곤 한다. 게다가 갑옷을 입은 중세 기사를 그린 앨범 표지부터 “Medieval Overture”, “Sorceress”, “The Romantic Warrior “,“Majestic Dance” “The Magician” “Duel of the Jester and the Tyrant”로 이어지는 중세적 분위기의 곡 제목들은 재즈보다는 실제 중세의 전설이나 신화를 주제로 삼곤 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곡들을 더 연상시킨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의 커다란 대중적 인기는 수많은 록 음악 감상자들이 열렬한 호응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쩌면 지금도 재즈 쪽의 감상자들보다 프로그레시브 록 쪽의 감상자들이 더 많이 이 앨범을 감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긴 다수의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은 반대로 재즈를 도입하여 재즈적 진행을 보이기도 했으니 이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을 아예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재즈 쪽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보일 수 있어도 록 쪽의 감상자에게는 어디까지나 재즈로 들리니 말이다.

앨범 <Romantic Warrior>는 분명 퓨전 재즈의 절정이자 RTF의 절정을 보여준 앨범이었다. 이후 칙 코리아는 새로운 멤버들로 1977년 <Musicmagic>이라는 앨범을 녹음했지만 1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라이브 앨범을 한 장 더 발매한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앨범에 참여한 네 멤버는 거장으로 성장하여 현재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다시 모인다고 해도 시대와 그 시대정신이 바뀐 오늘 이런 사운드는 들려주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앨범의 사운드는 1976년 당시에만 가능했던 독특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앨범이 역사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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