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Meets That – John Scofield (EmArcy 2007)

진정으로 뛰어난 연주자, 인정 받는 연주자는 자신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개성을 뒤따르는 연주자들이 넘어야 할 모범으로 삼게 되면 그는 재즈사의 한 흐름을 만들어 낸 스타일리스트로 기억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기타 연주자 존 스코필드도 스타일리스트에 해당한다. 현재 그는 팻 메스니, 빌 프리셀과 함께 현 재즈계의 3대 기타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실제 그의 기타 연주는 통상적인 재즈 기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동시에 반대로 현 시대의 많은 기타 연주자들의 연주 안에 투영되어 드러나곤 한다.

그런데 자신만의 개성을 인정 받고 나아가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그 개성이 지속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만의 독특함만은 변하지 않을 때 비로서 감상자들은 그 개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존 스코필드는 누구보다 그만의 개성을 지닌 기타 연주자이지만 빌 프리셀이나 팻 메스니에 비해 그 음악 스타일은 상당히 가변적인 성격을 띤다. 실제 그는 지금까지 전통적인 기타 트리오 앨범부터 펑키 사운드로 충만한 앨범, 새로운 일렉트로 사운드를 차용한 실험적인 앨범까지 다양한 시도를 거듭해왔다. 물론 이런 그의 활동을 거시적으로 보면 펑키 사운드로 수렴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연만큼은 그의 동료이자 라이벌인 빌 프리셀, 팻 메스니에 비해 다양한 색조를 띈다. 특히 2000년 들어 그는 포스트 밥, 펑키 재즈, 일렉트로 펑키 재즈, 레이 찰스를 위한 헌정 등 매 앨범마다 색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EmArcy레이블로 소속을 바꾼 뒤 처음 발표하는 새 앨범 <This Meets That>은 2000년대 그가 발표한 다른 앨범들에 비해 외연적 새로움 보다는 안정적이고 온건한 느낌, 그래서 익숙한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먼저 앨범이 지난 2004년에 발매된 실황 앨범 <En Route>에 이어 존 스코필드의 기타가 전면에 나서며 빌 스튜어트의 드럼이 자유로이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스티브 스왈로우의 베이스가 사운드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전통적인 기타 트리오 편성으로 녹음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스티브 스왈로우의 연주를 접했던 감상자라면 이 트리오 연주에서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는 그의 모습이 매우 생경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사실 스티브 스왈로우는 자신의 악기를 일렉트릭 베이스가 아닌 베이스 기타라고 부르며 일렉트릭 베이스로 기타에 가까운 솔로를 펼치곤 했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는 모처럼 묵직하고 두터운 저역대의 공간에 기꺼이 머무르고 있다. 특히 하나의 베이스 패턴을 설정하고 이를 끝까지 고집하는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로 인해 좌우로 흔들리는 사운드가 상당히 안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처럼 조용하고 온순한 스티브 스왈로우의 베이스와 이를 기반으로 현대적으로 스윙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존 스코필드의 기타 연주는 이미 존 스코필드의 초기 명작으로 평가 받는 <Out Like A Night>(Enja 1981)같은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앨범에서 두 연주자는 드럼 연주자 아담 누스바움과 트리오를 이루어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주었었다. 그 호흡이 26년이 지난 후에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6년 전에는 스티브 스왈로우가 후배 존 스코필드를 지원하는 역할 외에 이끄는 역할도 담당했던 만큼 그의 베이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공간 장악력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는 이제 존 스코필드가 당당하게 자신의 공간을 선점한 연주를 펼친다. 그러면서 앨범의 리더는 어디까지나 자신임을 밝힌다. 그만큼 두 연주자의 위상이 대등해졌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앨범을 그저 26년 전의 추억을 새삼 돌이키는 앨범으로 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이런 착각을 우려했었는지 존 스코필드는 트리오 연주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색소폰, 트롬본, 트럼펫으로 이루어진 4관 혼 섹션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다. 사실 앨범에서 혼 섹션의 등장은 그렇게 절대적이지도 않으며 그 양도 적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짧은 사용이 가져다 주는 효과는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이 혼 섹션은 존 스코필드가 단선율의 솔로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공간적 여백을 마치 피아노의 컴핑처럼 메우기도 하고 때로는 빅 밴드와도 같은 풍성한 울림으로 사운드의 양감을 강화하기도 하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서는 기타의 대위적 파트너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확인 하는 것은 앨범 감상의 또 다른 미묘한 재미로 작용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모든 것이 편곡을 통해서 설정된 것임을 생각하면 새삼 사운드의 기획자로서 존 스코필드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트리오 연주에 적절한 혼 섹션이 간결하게 등장하는 곡들로 채워졌다고 해서 앨범을 전통적인 기타 트리오(중심의) 앨범으로 보지는 말자. 왜냐하면 이번 앨범에서도 존 스코필드 특유의 펑키함은 여전히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딜레이, 코러스 등의 이펙터들이 다양한 비율로 조합되면서 만들어지는 오묘한 기타 톤으로 펼치는 그의 솔로는 선율적이면서도 늘 가벼운 뒤뚱거림부터 격렬한 흔들림까지 펑키한 리듬과의 연관성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앨범의 정서는 상당히 즐겁고 유쾌하다.

한편 앨범에서 존 스코필드는 자작곡 외에 다른 작곡가의 곡 3곡을 연주했는데 모두 색다른 감상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먼저 다섯 번째 트랙 “Behind The Closed Door”는 원래 컨트리 곡이다. 그래서 존 스코필드도 이 곡을 컨트리 특유의 유유자적한 분위기로 연주했는데 이것은 기존 그의 연주를 생각하면 아주 이례적인 것이다. 실제 이 생경한 느낌의 연주를 듣다 보면 존 스코필드 보다는 빌 프리셀을 저절로 연상하게 된다. 이어지는 “House Of The Rising Sun”에 빌 프리셀이 등장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연히 시간이 맞아서 함께 녹음하게 되었다는 그는 존 스코필드와 공간을 좌우로 분할하며 그만의 몽롱하고 나른한 톤을 짧지만 강렬하게 들려준다. 한편 이 곡은 이 곡은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등장하는 록 그룹 롤링 스톤즈의 히트 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과 함께 존 스코필드가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 자주 연주하던 곡이라 한다.

외연적 새로움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편성으로 담백하게 연주한 곡들로 앨범이 채워졌기에 혹자는 이 앨범을 존 스코필드의 한 시기만을 증명하고 사라질 그렇고 그런 평범한 앨범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오해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교나 사운드를 시도하는 대신 기존에 그가 이미 사용했던 것들을 활용하여 만들어낸 섬세한 사운드는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뻔한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존 스코필드가 설정한 이번 앨범의 방향 또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는 “이것과 저것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익숙한 재료들의 혼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한편으로 이 앨범은 앞으로 자신의 음악을 전진시켰던 존 스코필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 자기 정리의 의미를 띄지 않나 생각된다. 과거 흥겨운 질주를 잠시 멈추고 <Work For Me>(Verve 2001)앨범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 이듬해 앨범 <Uberjam>(Verve 2007)을 통해 새로운 일렉트로 펑키 사운드를 선보이기도 했었으니 이번 앨범 이후에도 또 다른 새로운 변화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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