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ni Letters – Herbie Hancock (Verve 2007)

조니 미첼의 시적인 가사를 해석하다

허비 행콕을 이야기하면 보통 빌 에반스 이후 키스 자렛, 칙 코리아와 함께 재즈 피아노를 정의한 인물로서의 이미지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사실 그가 현대 재즈 피아노의 거장 중의 거장이라는 사실은 맞는 말이다. 아마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역사적인 피아노 연주자라는 설명만으로는 허비 행콕 전체를 비추기엔 부족하다. 실제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음악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단순히 피아노 연주자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자 악기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펑키 재즈, 퓨전 재즈 그리고 최근의 일렉트로 재즈로 이어지는 첨단의 재즈를 개척했으며 그리고 부단한 작, 편곡 작업 가운데 새로운 재즈 스탠더드를 개척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하고 싶은 활동 모두를 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조니 미첼의 가사를 생각하며 연주하다 

그러나 이런 허비 행콕에게도 아직 미지의 영역은 남아 있었나 보다. 그것은 바로 가사를 생각하는 연주, 그러니까 가사를 노래하는 보컬과의 협연이나 가사의 의미를 따라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실제 그가 녹음한 앨범 목록을 보면 보컬과 함께 한 앨범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2005년에 발매된 <Possibilities>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피아노 연주자로 가사의 영역에 접근하는 허비 행콕보다는 여러 대중 가수들을 만나 수용적 자세로 그들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듯한 제작자로서의 허비 행콕이 더 많이 드러나는 앨범이었다. 한편 그가 지금까지 무수히 연주했었을 전통적인 스탠더드 곡들 대부분이 가사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가사를 생각하는 연주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허비 행콕이 추구한 가사를 생각하는 연주란 말 그대로 가사의 의미를 연구, 이해하고 이를 연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스탠더드 곡의 연주는 가사의 의미보다는 사운드의 측면에서 곡을 편곡하고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가사의 내용과 상관없는 분위기의 연주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이것은 보컬이 함께 해도 마찬가지다. 사운드가 중심이 되면 연주자들은 보컬 또한 하나의 악기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허비 행콕이 가사를 생각하는 연주란 통상적인 연주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편 허비 행콕은 가사를 생각하는 연주를 위해서 조니 미첼의 곡들을 선택했다. 이렇게 그가 조니 미첼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이 시대의 음유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의미가 풍부한 그녀만의 시적인 가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허비 행콕과 조니 미첼의 친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두 사람은 1979년 조니 미첼이 베이스 연주자 찰스 밍거스와 함께 <Mingus>(Asylum 1979)앨범을 제작할 때 허비 행콕이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어 조니 미첼의 재즈 성향의 앨범 <Both Side Now>(Reprise 2000)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러므로 보컬과의 협연이 그다지 많지 않은 허비 행콕에게 조니 미첼과 그녀의 음악은 매우 특별하고 친숙한 것이었으리라. 한편 허비 행콕의 오랜 음악적 파트너로 그의 앨범을 제작해 온 래리 클라인이 조니 미첼과 한때 부부 사이였다는 것도 조니 미첼의 음악을 이번 앨범의 화두로 삼는데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적인 정서를 표현하다 

그렇다면 허비 행콕은 어떻게 가사를 생각하며 연주했을까? 사실 통상적인 연주 방식과 이번 앨범의 연주 방식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연주 방식보다는 연주하는 자세와 마음이 더 중요하다. 즉, 새로운 사운드만을 추구하지 않고 가사를 먼저 깊게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사운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허비 행콕은 연주에 들어가기 앞서 스튜디오에 모인 연주자들과 보컬들에게 조니 미첼의 가사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서로 교감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를 해석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앨범에 담긴 사운드는 새로운 느낌 가운데 조니 미첼의 그림자를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가사를 생각하면서 연주를 하다 보면 그 가사에 밀착되어 있는 멜로디에 더 집중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허비 행콕의 가사를 생각하는 연주는 이런 멜로디 중심의 연주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앨범에서 그는 멜로디 자체에 집중하려 하지 않으려 한 듯하다. 이번 앨범의 화두인 조니 미첼을 위시해 노라 존스, 티나 터너, 코린 배일리 래, 레너드 코헨 등의 가수들을 부른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그가 여러 보컬을 기용한 것은 가사의 시적인 의미를 보다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와 함께 멜로디 부분을 아예 보컬에 일임하고 자신은 그 멜로디를 가사에서 자신이 느낀 정서로 감싸는데 더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가 참여한 여러 보컬에 대해 깊은 신뢰를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Court And Spark”를 노래한 노라 존스부터 “Edith And The Kingpin”을 노래한 티나 터너, 그리고 “The Jungle Line”을 특유의 저음으로 노래가 아닌 읊조린 레너드 코헨까지 각 보컬들은 허비 행콕이 해석한 조니 미첼의 시적 세계를 독특하게 재현하고 있다.

한편 멜로디 이전에 조니 미첼의 가사에서 느낀 자신만의 해석을 우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허비 행콕의 의도는 여러 보컬 곡 사이에 배치된 네 곡의 연주 곡을 통해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특히 “Both Side Now”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곡 조니 미첼의 곡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졌다고 할 수 있는 이 곡을 허비 행콕은 멜로디를 안으로 감추려는 듯이 연주한다. 원 곡의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는 여기 저기 흩뿌려져 조금씩 제시될 뿐이다. 대신 그 안에 많은 시적 의미를 내포한듯한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아름답게 드러난다.

이처럼 조니 미첼을 존중하면서도 허비 행콕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지는 연주는 “Solitude”와 “Nefertiti”의 독특한 연주로도 이어진다. 사실 이 두 곡은 조니 미첼의 곡이 아니다. 각각 듀크 엘링턴과 웨인 쇼터의 곡이다. 하지만 이 두 곡은 앨범의 전체 흐름 속에서 조니 미첼의 곡처럼 들린다. 즉, 조니 미첼식으로 허비 행콕이 새로이 분위기를 만든 탓이다. 그리고 물론 여기에는 밴드 멤버들의 조화로운 연주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이 밴드는 웨인 쇼터(색소폰), 데이브 홀랜드(베이스), 비니 콜라이우타(드럼), 리오넬 루에케(기타)로 이루어진 그 구성 자체만으로 앨범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대만큼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는데 특히 웨인 쇼터의 이지적인 색소폰 연주는 앨범의 시적인 정서를 강화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허비 행콕은 이번 앨범을 통해 가사를 생각하는 연주를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어쩌면 많은 감상자들이 간과하고 있었을 지도 모를 허비 행콕의 새로운 면을 보게 해준다. 사실 그동안 허비 행콕의 피아노 연주는 리듬을 놓지 않는 탁월한 기교와 창조적인 화성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기에 내적이고 정적인 연주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았다. 그런데 이 앨범으로 그의 내성적 연주를 새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앨범이 주는 신선함과 놀라움은 어쩌면 조니 미첼의 곡을 새로이 연주했다는 사실보다 허비 행콕이 시적인 심상을 드러냈다는 것에 더 기인할 지도 모른다. 또 그만큼 이번 앨범은 허비 행콕의 화려한 이력 가운데 매우 특별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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