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신선한 모습으로 나타난 성숙한 제인 몬하이트
- 새로운 재즈 보컬의 기수 제인 몬하이트
재즈 보컬 하면 아직도 우리는 엘라 핏제랄드, 사라 본, 빌리 할리데이로 대표되는 3대 디바, 그리고 그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여러 흑인 보컬들의 계보를 연상한다. 하지만 백인인 다이아나 크롤이 담백하고 육감적인 목소리로 여성 재즈 보컬을 대표하면서부터 1990년대 이후 재즈 보컬의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실제 디 디 브리지워터, 다이안 리브스, 카산드라 윌슨 같은 뛰어난 흑인 보컬들이 전통적인 재즈 보컬을 계승 발전시킨 노래를 들려주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은 다이아나 크롤을 위시하여 카린 앨리슨, 스테이시 켄트 등의 백인 보컬에 쏠려 있다.
제인 몬하이트는 이런 백인 여성 보컬의 계보에서 가장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1998년 20세의 어린 나이에 몽크 보컬 컴페티션에서 2위를 수상하며-1위는 백전 노장 테리 손튼이었는데 이후 아쉽게도 사망했다-본격적으로 재즈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후 선보이는 앨범마다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호평을 얻으며 현재 백인 여성 보컬을 대표하는 새로운 얼굴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제인 몬하이트의 개성은 그 누구보다도 백인적인 노래를 한다는 데 있다. 사실 많은 백인 여성 보컬들은 과거 재즈 보컬의 역사가 흑인 중심으로 흘러왔고 또 그로 인해 흑인적 창법 즉, 끈끈함과 깊은 울림의 비브라토를 사용한 창법을 전형으로 인식되었던 만큼 이를 따르려는 시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제인 몬하이트는 이런 흑인 보컬에 대한 맹신, 강박에서 벗어나 특유의 순수한 미성으로 자연스럽게 노래하는데 주력한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바이올린의 부드럽게 이어지는 레가토 주법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힘을 주어 깊이를 표현할 때도 있지만 그녀의 매력이 가장 잘 표현되는 순간은 역시 힘을 들이지 않는 듯 매끄럽게 목소리가 흐를 때이다.
- 신선함과 성숙미를 지닌 새 앨범 <Surrender>
이런 실력과 그만큼의 개성을 지닌 제인 몬하이트는 다른 재즈 보컬들이 그러하듯이 지금까지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해왔다. 그리고 이 앨범들은 노래 참 잘한다. 분위기 좋다라는 평을 받곤 했는데 여기엔 언제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완숙미”라는 수식이 따라다녔다. 나는 이런 수식이 그녀와 함께 해온 드럼 연주자 릭 몬탈바노와 결혼한 지금까지도 따라붙는 것은 그녀의 미성과 창법이 낡디 낡은 스탠더드 곡들에 신선한 감수성을 불어넣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직까지 많은 감상자들이 그녀의 목소리와 창법이 스탠더드 곡들과 기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목소리인데도 기막히게 잘 소화한다는 식의 평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제인 몬하이트는 더욱 더 스탠더드를 고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몽크 컴페티션에서 상을 수상한 이후 10년이 흘렀고 어느덧 그녀도 20대가 아닌 30대 여인의 길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1977년 11월 3일생으로 우리나이로 따진다면 이미 30대를 시작했다) 말하자면 이제는 순수한 어린 소녀로 그녀를 더 이상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 제인 몬하이트 본인도 이러한 생각을 가졌던 듯싶다. 그래서 이번 새로운 앨범 <Surrender>는 더욱 더 그녀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앨범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시기에 접어든 제인 몬하이트의 모습을 담고 있다.
- 새로운 선곡과 보다 자신에게 맞는 사운드
그것은 무엇보다 그녀가 스탠더드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다양한 곡들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게다가 대부분의 곡들이 아주 오래된 고전이 아니다. 그녀의 처음이자 유일한 보컬 선생이었던 피터 엘드리지-그는 뉴욕 보이스의 멤버이기도 하다-가 작곡한 앨범 타이틀 곡 “Surrender”부터 스티비 원더의 히트 곡 “Overjoyed”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세르지오 멘데스, 질베르토 질,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등 브라질 작곡가들의 곡을 대거 노래했다는 데서 이전 앨범과 가장 큰 차이점을 형성한다. 이렇게 색다른 선곡은 제인 몬하이트가 여전히 그녀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고운 미성으로 노래함에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이렇게 선곡의 묘를 통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새로움, 자기 쇄신의 미명하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던가? 하지만 제인 몬하이트는 10년 경력의 가수답게 자신의 장점과 가야 할 길을 알았다. 그래서 이런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
물론 선곡 외에도 그녀는 사운드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새롭게 그녀가 선택한 노래에 무엇이 어울리는 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편곡과 악기 편성을 결정했는데 그렇다고 아예 낯선 느낌으로 이어지게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먼저 악기 편성에 있어서는 최근 그녀의 음악에 자주 등장하던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기본적으로 그녀의 미성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여기에 팝적인 느낌을 주는 신디사이저, 그리고 보사노바 리듬을 은근히 표현하기 위한 타악기와 기타가 적절히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마이클 캐넌(피아노) 마일스 오카자키(기타) 올란도 르 플레밍(베이스) 아리 암브로스(색소폰) 릭 몬탈바로(드럼)으로 구성된 기본 밴드 외에 다양한 유명 연주자를 게스트로 등장시켰다. 타악기의 파올리뇨 다 코스타. 베이스의 데이브 카펜터, 알폰소 존슨, 하모니카에 거장 투스 틸먼스, 피아노에 세르지오 멘데스, 그리고 브라질의 대표적인 남성 보컬 이반 린스가 참여해 제인 몬하이트의 낭만성을 더욱 강조해 주었다. 한편 편곡에 있어서는 모두 잔잔하고 느린 발라드로 전체를 꾸몄다. 빠른 템포의 곡보다 느린 곡에서 그녀의 매력이 더 잘 사는 만큼 역시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앨범은 제인 몬하이트의 다른 어느 앨범보다 낭만적이고 대중적인-그렇다고 우아한 품격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한편 이렇게 그녀가 새로운 선곡과 사운드 위에서 노래하게 된 데에는 앨범의 제작을 담당한 호르헤 칼란드렐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는 지금까지 바브라 스타라이샌드, 토니 베넷, 셀린 디온, 베트 미들러, 베리 매닐로우 등 재즈와 성인 취향의 팝 가수들의 앨범을 제작하여 모두 성공으로 이끈 베테랑이다. 그만큼 보컬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사운드를 만드는데 혜안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그 능력은 탁월한 빛을 발한다. 실제 그는 이번 앨범에서 직접 오케스트라 파트를 편곡하고 지휘했으며 나아가 보컬 부분도 제인 몬하이트에 맞게 직접 편곡을 했다. 그래서 제인 몬하이트의 기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신선함이 가미된 사운드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 제인 몬하이트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다
이렇게 제인 몬하이트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것은 이제 그녀를 평가할 때 따라다니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의 수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숙함의 세계로 드디어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녀는 정통적이지 않다는 평을 두려워해 스탠더드만을 고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성숙해진 그녀는 이제 보다 더 자신의 욕구에 집중해 자신에게 한결 더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번 앨범으로 끝이 날 것인지 이 앨범을 계기로 새로운 시기를 시작할 것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적어도 이번 앨범이 그녀의 음악 인생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