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기분 좋고 유쾌한 일로만 가득 차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살다 보면 우리는 아쉽게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절망, 슬픔,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곤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문제를 대신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저 내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 뿐. 그래도 주변의 따뜻한 위로와 공감은 어려운 문제를 앞에 둔 사람에게 큰 도움으로 다가온다. 고통을 지연시키고 완화시켜준다. 하지만 그런 위안을 주는 사람마저 없다면? 나의 문제를 주변에 알릴 수 없다면? 문제가 주는 괴로움만큼이나 혼자라는 외로움, 고독감에 가슴이 아파올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손쉽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을 듣는 일이다. 코 앞에 시급한 문제가 놓여 잇는데 한가하게 무슨 음악이냐고? 하지만 적절한 음악은 (환상일 지라도) 눈앞에 놓인 문제를 거대한 산에서 삶의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넘어야 하는, 넘을 수 있는 작은 언덕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우리를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들이 결국엔 승리하듯 문제를 해결할 힘을 줄 것이다.
나는 호주 출신으로 현재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아의 음악을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Real Problem)를 지닌, 그래서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음악은 복잡하고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극적인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어 그 속에서 주인공으로 멋지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다소 무서울 수도 있는 우리의 현실을 부드럽게 감싸는 배경 음악이라고 할까? 하지만 배경음악이라고 해서 카페에서 들릴 듯 말 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심심한 음악을 생각하면 안 된다. 시아의 음악은 분명 그 자체로 주목할만한 개성을 지녔다. 특히 다소 거친 록의 질감에 소울의 깊은 정서를 담은 그녀의 목소리는 솔로로 활동하기 전 제로 7, 매시브 어택, 윌리엄 오빗 같은 그룹 혹은 개인 뮤지션들이 노래를 부탁했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 가운데 Zero 7의 경우 감상자들이 그녀를 정규 멤버로 착각하게 할 정도로 지금까지도 그룹의 음악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와 호소력 짙은 노래 솜씨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녀는 보컬을 넘어 전체 사운드로 감상자에게 다가가려 한다. 노래와 사운드 모두에 서사적인 맛을 담아냄으로써 ‘시아’라는 한 인물의 존재감보다는 시아가 만들어 낸 ‘음악’의 존재감을 먼저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노래들은 우리의 현실에 부드럽게 녹아 드는 배경 음악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위에 언급한 유명 그룹 혹은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첫 앨범 <Healing is Difficult>(2000)에서‘Taken For Granted’를 U.K 싱글 차트 10위에 올렸어도 정작 그녀의 인지도는 두 번째 앨범 <Colour the Small One>의 수록곡들이 드라마와 영화 음악으로 사용되면서부터였다. 예를 들면 먼저‘Don’t Bring Me down’이 EP로 먼저 발매되어 프랑스 영화 <36 Quai des Orfèvres>에 사용되었으며 ‘Where I Belong’은 영화 <스파이더 맨 2>에 사용되었다. (후에 ‘Where I Belong’은 국내 드라마 <소울 메이트>에도 삽입되면서 호응을 얻기도 했다.) 특히‘Breath Me’는 곡은 HBO의 드라마 <Six Feet Under>에 사용된 이후 여러 패션쇼, 광고, 게임쇼 등에 사용되면서 전세계적으로‘시아’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이 외에 2006년에는 라디오헤드를 위한 트리뷰트 모음집 <Exit Music: Songs with Radio Heads>에서 노래한 ‘Paranoid Android’도 FOX사의 텔레비전 시리즈 <The O.C>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시아의 음악이 일상을 극적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은 두 번째 앨범부터였다. 즉, 게스트로 참여한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들부터 첫 앨범에 이르기까지 일렉트로니카적 감성이 강한 노래를 불렀던 것에서 벗어나 보다 담백하고 직설적인 어덜트 록으로 스타일에 변화를 주면서부터였다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록적인 측면은 이번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Some People Have Real Problem>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기쁨과 슬픔을 자유로이 오가는 사운드는 일상에 극적인 상상을 부여하는 힘이 더욱 더 강해졌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앨범의 첫 곡 ‘Little Black Sandals’부터 감지된다. 이 곡은 소울풀한 시아의 보컬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회색 빛 사운드가 어우러져 삶의 어려움을 긍정하고 극복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그래서일까? 이 곡은 발표 후 곧바로 ABC 방송국의 의학 드라마 <Private Practice>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이어지는 곡들은 각각 삶의 밝음과 어두움을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그 가운데 삼 박의 왈츠 리듬이지만 경쾌한 춤보다는 회한과 아쉬움의 정서를 드러낸 두 번째 곡 ‘Lentil’과 비가 내린 뒤의 촉촉함처럼 담담한 느낌으로 다가오는‘Day Too Soon’ 앨범에서 가장 시아의 소울풀한 보컬이 강조된 ‘You Have Been Love’, 플래터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나른한 느낌의‘I Go To Sleep’그리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게 만드는 몽환적인 분위기의‘Lullaby’같은 발라드 곡들은 이전‘Breath Me’나 ‘Where I Belong’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를 극적인 상상으로 이끈다. 그래서인지 이들 곡 가운데 ‘I Go Too Sleep’은 FOX사의 텔레비전 시리즈 <Dollhouse>에 삽입되기도 했다.
한편‘The Girl You Lost to Cocaine’와 지난 앨범에 이어 참여한 벡이 백보컬을 담당한 ‘Academia’, 80년대의 느낌이 강한‘Playground’, 마지막 곡 ‘Buttons’같은 곡들은 발라드 곡과는 달리 산뜻한 시아의 모습을 확인하게 해준다. 물론 밝다고는 하지만 통통 튀는 경쾌함보다는 어두운 마음을 전환시키는 화사함의 정서가 강한 곡들이다. 그래도‘The Girl You Lost to Cocaine’은 샌더 반 도른, 스톤브리지 등의 DJ들에 의해 리믹스 되어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개별 곡들을 나누어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앨범은 개별 곡 단위가 아니라 앨범 전체를 들어야 더 맛이 좋다. 슬픔과 체념, 위로와 기쁨을 오가는 그 흐름은 분명 우리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U.S 모던 록/얼터너티브 앨범 차트 5위에 오르는 등 싱글 차트 보다 앨범 차트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시아의 두 번째 앨범 <Colour the Small One>을 듣고 사랑한 감상자라면 이번 앨범에서 두 번째 앨범을 쉽게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앨범을 하나의 스타일이 통했다고 해서 그것을 기계적으로 반복한 앨범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지난 앨범에서 시작된 새로운 자기 스타일의 확립과 확장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적확하지 않나 생각된다. 오히려 나는 어덜트 록을 기본으로 ‘삶의 문제’가 많은 우리를 위로하는 듯한 그녀의 음악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나 나를 만나러 오는 듬직한 친구처럼 늘 그 모습을 유지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