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Sand – Robert Plant & Alison Krauss (Rounder 2007)

뜻밖의 만남이 만들어낸 인상적인 사운드

1.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와 앨리슨 크라우스(Alison Krauss)가 만나서 함께 정서를 공유하고 노래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상상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의 음악적 성향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알려졌다시피 로버트 플랜트는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하드 록 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보컬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으며 최근까지도 꾸준한 솔로 앨범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보컬은 아직까지도 록을 지향하는 보컬들의 모범으로 칭송 받고 있다. 한편 앨리슨 크라우스의 경우 10대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컨트리와 블루그래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 외에 걸출한 피들-컨트리 계열의 음악에서는 바이올린을 피들이라 부른다-연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이력을 살펴보면 도무지 만날 수 없는, 아니 만나면 안 되는 사람들끼리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 우리 감상자의 세계에서 록을 좋아하는 사람과 컨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이 좋게 서로의 음악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경우를 본적이 있는가? 그러나 록과 컨트리라는 장르적 구분을 넘어 이 두 사람의 음악을 파고들면 까짓 거 만나지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로버트 플랜트의 최근 활동을 살펴보자. 사실 그는 그룹 레드 제플린에서의 활동이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못해 역사적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의 솔로 활동이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한 감이 있다. 하지만 그의 솔로 활동은 분명 록의 영역 안에 머무르면서도 레드 제플린 시절과는 다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특히 갈수록 그의 관심이 세계의 다양한 음악으로 쏠리고 있다는 점은 그의 음악을 새로이 바라보게 만든다. 실례로 그는 모로코나 말리의 음악과 연주자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아프리카와 켈트의 전통 음악을 결합한 사운드로 유명한 아프로 셀트 사운드 시스템(Afro Celt Sound System)과 녹음을 하기도 했다.  한편 앨리슨 크라우스의 경우 우리는 그녀가 단순한 컨트리가 아닌 그에 파생된 블루그래스 계열의 음악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 블루그래스는 순수한 컨트리 음악에 재즈와 블루스가 가미된 것을 의미한다. 실제 그녀의 음악을 들어보면 컨트리 음악이 기반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도회적인 세련미가 쉽게 발견된다. 게다가 그녀는 다른 가수 혹은 연주자와의 만남을 즐겨왔다. 그래서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존 웨이츠(John Waite), 브래드 페이슬리(Brad Paisley) 등이 그녀와 함께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자! 이 정도면 희미하지만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라우스의 만남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실제 두 사람은 기막히게도 컨트리 블루스 혹은 포크 블루스 성향의 노래로 팝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리드벨리(Leadbelly)를 기리는 공연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2.

물론 첫 만남 이후 함께 노래를 한 번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두 사람의 음악적 개성이 만나는 접점을 찾았다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 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 사람은 티 본 버넷(T Bone Burnett)을 불렀다. 티 본 버넷은 앨리슨 크라우스를 비롯하여 로이 오비슨(Roy Orbison), 토니 베넷(Tony Bennett), K.D. 랭(Lang),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카운팅 크로우(Counting Crow) 같은 인물들의 앨범을 제작했고 코엔 형제의 영화 <O Brother Where Are Thou? > 등을 비롯한 많은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능력있는 제작자다. 이렇게 다양한 제작 경험이 있는 그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라우스를 하나의 공간에 평화롭게 위치시키는데 성공했다. “Killing The Blues”와 “Stick With Me Baby”같은 곡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 곡에서 두 사람은 평화로운 공존을 넘어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특유의 날카로움을 뒤로 하고 부드럽게 속삭이듯 힘을 빼고 노래하는 로버트 플랜트, 그리고 그의 뒤로 한 발짝 살짝 물러선 듯한 분위기로 온화하게 노래하는 앨리슨 크라우스의 노래를 듣다 보면 과연 그동안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성향의 노래를 해왔었는가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조화에는 몽환적이며 광활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그래서 블루스적이면서도 컨트리적인 맛이 나는 사운드를 만들어낸 티 본 버넷의 혜안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라우스 외에 티 본 버넷도 앨범의 주인이라 생각한다. (아니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라우스는 사운드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앨범의 진정한 주인은 그 사운드를 설정한 티 본 버넷이라 말해도 그다지 큰 과장은 아닐 듯싶다.)

3.

아무튼 티 본 버넷이 두 사람을 위해 설정한 음악적 공간은 다름 아닌 어번 블루스와 포크 록, 그리고 황량한 느낌이 있는 텍사스 컨트리가 적절히 결합된 곳이었다. 이것은 아주 기막힌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로버트 플랜트의 음악 안에는 블루스나 포크적인 면이 내재되어 있었으며 앨리슨 크라우스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조화를 위해 억지로 자신의 스타일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과거 레드 제플린의 환영을 느끼게 해주는 몽환적인 곡“Nothin’”-이 곡에서 앨리슨 크라우스의 주술적인 피들 연주는 상당히 인상적이다-이나 “Fortune Teller”, 그리고 앨리슨 크라우스의 보컬과 피들 연주가 목가적으로 다가오는 “Sister Rosetta Goes Before Us” 같은 곡들이 서로 이질적 느낌을 주지 않으며 사이 좋게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티 본 버넷이 설정한 먼지 날리는 광활하고 황량한 공간을 손잡고 사이 좋게 모험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기존 자신들의 사운드와는 다른 질감의 사운드지만 그 안에 있는 로버트 플랜트나 앨리슨 크라우스의 모습은 상당히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껴진다. 곡에 따라 두 사람이 상대의 조연 역할을 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실제 앨범 수록 곡을 살펴보면 두 사람의 듀엣 곡만큼이나 솔로에 가까운 노래들, 다른 한 사람은 백 보컬을 하면서 뒤로 한 발작 물러선 노래들도 많이 발견된다. 로버트 플랜트가 전면에 나서고 앨리슨 크라우스가 백 보컬 역할을 하고 있는 “Please Read The Letter”과 그 반대의 관계를 보여주는 “Through The Morning, Through The Night”이 좋은 예다. 그런데 이런 관계 설정은 이들 곡에 부여된 사운드의 자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Please Read The Letter”는 이미 로버트 플랜트가 레드 제플린 시절의 동료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함께 <Walking Into Clarksdale>(Atlantic 1998)앨범에서 노래했던 곡인 만큼 록이나 블루스적인 면이 강했고 컨트리 록의 명 싱어송라이터 진 클락(Gene Clark)의 곡인“Through The Morning, Through The Night”은 상대적으로 앨리슨 크라우스의 본령에 가까웠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와 같은 관계 설정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앨범은 로버트 플랜트나 앨리슨 크라우스 개인의 존재감보다 이들이 평화로이 서로를 존중하며 만들어낸 사운드가 더 돋보인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처럼 여러 장르를 섞어 만든 사운드가 더 돋보이는 만큼 앨범은 다양한 음악적 상상을 자극한다. 목가적인 이미지와 몽환적인 이미지, 그리고 황량한 사막의 이미지가 다양한 비율로 섞이며 경험해보지 못한 이색적인 정서를 유발한다. 그러면서도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연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라우스는 둘이 만나서 함께 노래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이리 멋진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했을까?

한편 이번 앨범은 로버트 플랜트나 앨리슨 크라우스의 음악을 잘 알고 있는 감상자보다 잘 모르는, 그래서 이 앨범으로 처음 만나는 감상자에게 더 큰 호응을 얻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앨범의 사운드는 분명 두 사람의 음악과 일정부분 관련이 있지만 다른 면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로버트 플랜트의 앨범, 새로운 앨리슨 크라우스의 앨범을 기대한 감상자라면 감상 전에 그런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 좋다. 대신 변화에 대한 기대, 낯설지만 친근한 사운드에 대한 기대를 갖고 앨범 감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다면 선입견이 좋은 음악의 진가를 가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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