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텟 연주를 통해 보다 가까워진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
지난 해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가 만나 앨범을 녹음했다는 소식은 2006년 재즈계의 인상적인, 그리고 기분 좋은 이벤트였다. 그것은 두 연주자 모두 확고한 자신의 개성으로 수많은 재즈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많은 신예들이 따르고 싶어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재 재즈를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이라 하겠다. 이런 주요 인물 두 사람이 만나 같이 앨범을 녹음했으니 재즈계의 주요 이벤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제 두 연주자가 함께 한 듀오 연주는 “역시나”라는 탄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처음 함께 하지만 오래 전부터 서로의 음악에 주목하고 있었던 터라 두 연주자의 호흡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또 다른 2000년대 듀오 연주의 모범으로 기억될만한 연주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첫 듀오 앨범에는 순수한 듀오 연주 외에 베이스 연주자 래리 그르나디에와 드럼 연주자 제프 발라드, 그러니까 현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를 이루고 있는 리듬 섹션 멤버가 참여해 퀄텟으로 연주한 두 곡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훌륭한 듀오 연주에 만족을 느끼면서도 저 퀄텟 연주를 조금 더 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감상자들이 많았다. 정말 퀄텟 연주는 듀오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없애기 위한 양념 같은 것이었을까? 물론 아니었다. 그 증거가 지금 여러분이 듣고 있는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의 퀄텟 앨범이다.
사실 오랜 시간 서로를 지켜본 뒤 큰 마음을 먹고 만난 만큼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는 한 장의 앨범을 넘어서는 상상한 분량의 녹음을 했다고 한다. 그 중 듀오 연주를 중심으로 해서 첫 앨범이 발매된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 같이 녹음했던 여FJ 곡 가운데 퀄텟 연주를 중심으로 이번 두 번째 앨범을 발매한 것이다. 그런데 리뷰를 위해 앨범을 듣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가졌던 생각은 이 앨범이 지난 듀오 앨범보다 먼저 발매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듀오 앨범은 큰 기대와 만족만큼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주력, 호흡과는 별개의 문제로 바로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간에 형성된 균형의 문제였다. 실제로 이미 앨범을 들어본 감상자라면 느꼈겠지만 첫 듀오 앨범은 다소 팻 메스니 중심으로 흐른 인상이 강했다. 물론 브래드 멜다우가 팻 메스니의 음악이 자신의 음악인생에 몇 안 되는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했을 정도로 그가 팻 메스니의 음악을 동경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래도 팻 메스니의 개성이 브래드 멜다우의 개성에 우선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두 번째 앨범을 들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말 이번 퀄텟 앨범은 듀오 보다 더 완벽해지고 두 연주자의 개성이 효과적으로 배합된 연주를 들려준다. 물론 전체적인 퀄텟 연주의 느낌은 팻 메스니 그룹의 느낌이 강하다. 대부분 팻 메스니 그룹의 진행 틀이 이번 퀄텟 연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첫 인상의 측면일 뿐 그 내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앨범의 첫 곡 “A Night Away”를 들어보자. 이 곡은 팻 메스니의 기타 톤은 여행자적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리듬, 그리고 곡의 진행이 팻 메스니 그룹의 연주를 많이 연상시킨다. 엄밀히 말하면 팻 메스니 그룹의 <Speaking Of Now>(Warner 2002)의 구성과 유사하다. 하지만 팻 메스니의 기타가 뒤로 물러나고 브래드 멜다우가 전면에 나설 때면 사운드는 분명 브래드 멜다우적인 것으로 변한다. 팻 메스니 그룹적인 리듬 섹션은 그대로 유효함에도 말이다. 이러한 브래드 멜다우의 은밀한 자기 목소리는 다른 곡들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세 번째 곡 “Fear and Trembling”은 어떠한가? <Water Color>(ECM 977)앨범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팻 메스니의 기타에 보다 자유롭게 대응하는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는 분명 트리오 연주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만의 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듀오 연주에서 다소 미진하게 느껴졌던 브래드 멜다우 고유의 색이 퀄텟 연주에서 강화되어 드러날 수 있었을까? 나는 이것을 래리 그르나디에와 제프 발라드의 리듬 섹션 연주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트리오 연주자들과 함께 하면서 브래드 멜다우가 보다 더 안정적인 연주를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더 나아가 팻 메스니와 브래드 맬다우는 정서적으로 보다 하나가 된, 그래서 팻 메스니만의 색도 아니고 브래드 멜다우만의 색도 아닌 두 연주자 모두의 색이 될 수 있는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 좋은 예가 바로 “Secret Beach”가 아닐까 싶다. 이 곡은 분명 어두운 밤 혼자 외로운 여행을 떠나는 듯한 팻 메스니의 몽롱한 기타와 어둡고 우울한 시정을 지닌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가 제대로 만난 곡이다. 이어지는 “Silent Movie”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누구에게 연주를 맞춘다고 생각할 필요 없이 팻 메스니적인 동시에 브래드 멜다우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난 듀오 앨범이 두 곡의 퀄텟 연주를 담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 퀄텟 앨범은 총 11곡 가운데 4곡의 듀오 연주를 담고 있다. 그런데 퀄텟 연주 때문일까? 퀄텟 연주 사이 사이에 배치된 4곡의 듀오 연주는 지난 듀오 앨범을 들을 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보다 더 대등한 관점에서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가 만났다는 느낌을 준다. 어떻게 같이 녹음된 음원들임에도 지난 듀오 앨범과 이리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너무나 한 연주자와 그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감상자는 음악을 순백의 상태,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할 위험이 있다.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의 듀오 앨범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많은 감상자들과 후배 연주자들이 동경하는 두 스타일리스트의 만남은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란 기대가 선입견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물론 새로운 무엇으로 충만 된 앨범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의 희망사항일 뿐 연주자의 의무는 아니다.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의 만남도 그저 개인적이고 은밀한 만남 이상이 아니었다. 서로의 연주와 음악에 관심이 있었기에 커다란 목적 없이 함께 연주하고 이에 즐거워하기 위해 만나 녹음했을 뿐이다. 그래서 “팻 메스니만 보이고 브래드 멜다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은 그릇된 오해였다. 그리고 그 오해는 이번 퀄텟 앨범에서 제대로 풀렸다. 내가 이번 퀄텟 앨범이 지난 듀오 앨범보다 먼저 발매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