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Regrets – 남경윤 (EMI 2007)

한결 더 편안해진 사운드 안에 담긴 남경윤만의 음악적 개성

1.

최근 한국 재즈 연주자들의 앨범이 끊임없이 발매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앨범들은 모두 재즈는 미국의 음악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전통에 대한 순응주의적 태도, 아니면 반대로 한국적인 재즈를 연주하겠다는 모호한 강박에서 벗어나 보다 보편적인 공간을 지향하고 오래된 명인의 흔적 안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장 받으려 하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으로 인정 받으려는 자신감을 담은 연주를 들려준다, 그래서 진정 한국 재즈에 새로운 개성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하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갖게 한다.

피아노 연주자 남경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05년에 발매된 그의 첫 앨범 <Energy & Angular Momentum>은 전통을 무조건 따르거나 반대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적절히 취사 선택한 연주를 담고 있었다. 게다가 현대 재즈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는 바이올린이 포함된 퀄텟 편성은 그의 음악적 개성을 한층 강하게 인식시켰다. 하지만 남경윤의 첫 앨범이 많은 한국 재즈 앨범들 가운데 도드라졌던 것은 먼저 해외에서 제작 발매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John Nam이라는 미국명으로. 물론 그 첫 앨범은 미국에서 제작되었지만 유명한 레이블에서 제작되었던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주 커다란 주목을 받았던 앨범은 아니었다. 거의 자작 앨범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 내에서의 판매를 상정하고 제작된 앨범이라는 점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앨범의 사운드가 보다 어렴풋한 한국적 사운드를 벗어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아무튼 한국인지만 한국에 토대를 두지 않은 연주자가 미국에서 앨범을 발매했고 그 앨범이 한국에 수입되었다는 점에서 남경윤의 첫 앨범은 한국 재즈에서 색다른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반대로 수입 형식으로 앨범이 국내에 보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재즈 감상자에게 폭넓게 소개되지 못한다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두 번째 앨범은 역시 미국에서 녹음했지만 믹싱과 마스터링을 한국에서 한 뒤 한국 레이블, 스톰프 뮤직을 통해 발매되었다. 그래서 한국 재즈 감상자들이 이번 앨범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2.

그렇게 만나게 되는 이번 앨범은 전체적인 연주 형식, 구성 등에 있어서는 첫 앨범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트리오 연주, 그리고 제레미 키틀의 바이올린이 가세한 퀄텟 연주, 그리고 지난 앨범에의 색소폰을 대신하여 여성 보컬을 두 곡에 참여시켜 편성에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앨범이 70여분 하나의 편성으로 지속될 때 후반부에서 다소 힘이 떨어지곤 하는데 남경윤의 이번 앨범은 그런 아쉬움이 없다. 적절한 편성의 변화로 감상자들이 지루함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러한 편성의 다양성은 남경윤이 지닌 다양한 능력을 효과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즉, 20대 초반의 신예 여성 보컬 제스 폴터와 함께 할 때는 절묘한 보이싱으로 보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을, 제레미 키틀의 바이올린과 퀄텟을 형성할 때는 피아노보다 전면에 더 드러나는 솔로 악기와 대위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대화하는 능력을, 그리고 트리오 연주를 펼칠 때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부족함 없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능력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앨범을 다 듣고 나면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다가 재즈 피아노로 삶의 방향을 바꾼 이 젊은 연주자의 뛰어남을 입체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한편 이번 앨범은 여전히 편성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지난 앨범에 비해 안정적이고 통일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것은 지난 앨범처럼 밴드를 두 개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밴드를 곡에 따라 탄력적으로 부분적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앨범을 녹음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앨범은 남경윤의 피아노, 앤드류 크라젯의 베이스, 그리고 아리 호닉의 드럼으로 구성된 트리오를 기본으로 제레미 키틀의 바이올린이나 제스 폴터의 보컬이 필요할 때 등장하고 지난 첫 앨범의 고정 멤버였던 채드 하츠버그가 3곡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운드의 균질감이 지난 앨범에 비해 더 강화될 수 있었다. 한편 지난 앨범의 정규 트리오 멤버였던 채드 하츠버그가 이번 앨범에서 3곡만을 연주하게 된 것은 보다시피 아리 호닉 때문인데, 이 드럼 연주자는 남경윤 이전에 보얀 Z, 빌 캐로더스, 쟐 미셀 필크, 케니 워너 등의 피아노 연주자들과의 협연으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유명 연주자이기에 많은 재즈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살만하다. 실제 그의 드럼은 사운드에 안정감, 무게감을 한층 더 강화해주고 있다.

3.

한편 이번 앨범은 첫 앨범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고 감상하기 쉬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보다 폭넓은 감상자 층을 향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보다 더 한국 재즈 애호가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실제 자작곡과 함께 네 곡의 스탠더드 곡을 연주했다는 것, 그리고 그 중 두 곡에서 제시 폴터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보컬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앨범을 보다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자작곡이지만 “Before You Go”나“3 A.M. in the West Village”같은 곡은 그 아늑한 분위기와 선연한 멜로디로 인해 많은 감상자들의 사랑을 받지 않을까 기대된다. 그리고 연주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아웃지향성 연주보다는 널리 잘 알려진 보편적 이디엄 안에서 신선한 맛을 이끌어 내는 연주를 추구하고 있어 감상이 훨씬 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앨범이 평범하고 뻔한 상투의 덫에 걸렸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운드이고 그 내면에는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하려는 남경윤의 부단한 음악적 시도가 담겨 있다. 3/4박과 4/4박을 오가는 “An Epiphany”, 음악적인 부분 자체에서 발견한 남경윤만의 느낌을 표현한 곡 “L.A”(여기서 L.A는 미국의 도시가 아니라 재즈 음계 가운데 하나인 Lydian Augmented를 의미한다고 한다)와 “Flat 6”, 독특한 마디 구분으로 코드를 진행시키고 있는 “Uneven”등의 곡들은 모두 부담 없이 들리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음악적 모험을 담고 있다. 이것은 기존 스탠더드 곡을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누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Triste”가 보사노바가 아닌 전통적인 직선적 리듬 패턴으로 연주되리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이번 앨범은 처음에는 한결 정서적이고 부드러워진 느낌에 매료되지만 감상에 감상을 더하면서 그 안에 담긴 남경윤만의 섬세하고 신선한 시도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4.

어느정도 실력 있는 연주자라면 감상자의 입맛에 맞추어 부드럽고 달콤하게 연주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자신만의 새로운 시도를 투영하고 이를 통해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완전히 새로운 무엇보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경윤은 이번 앨범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상자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그의 성장과 변화를 계속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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