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을 탈색시킨, 무위(無爲)를 찬양하는 소박한 노래
그렇게 강력한 인상을 주지 않지만 대신 오래 여운을 남기는 음악이 있다. 그런 음악은 신선함보다는 친숙한, 편안함이 매력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주위를 편안하게 감싸다가 막상 침묵 속에 덩그러니 홀로 있게 되면 그 매력을 새삼 느끼고 그리워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음악을 가구 같은 음악이라 부르곤 한다. 그냥 우리 일상을 푹신한 소파처럼 편안하게 만드는 음악.
Be The Voice(이하 BTV)가 들려주는 음악은 바로 이런 가구처럼 편하고 부드럽다. 작곡과 보컬을 담당하는 준코 와다와 기타와 키보드,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슌지 스즈키로 구성된 이 듀오는 아늑하고 달콤한 휴식 같은 음악을 들려준다. 그래서 간혹 심심하다 싶은 느낌을 주면서도 시간이 힘들 때마다 들으면 작은 위로를 받게 된다.
이런 편안함은 아마도 BTV가 1996년 11월에 만나 듀오를 결성한 시절부터 이후 Yellow Magic 오케스트라의 유키히로 다카하시의 눈에 띄어 앨범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내의 카페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카페란 어떤 곳인가? 수많은 인디 밴드나 가수들의 열정적 공연이 있는 클럽과는 다른 공간이지 않던가? 카페는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보다 친한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혹은 바쁜 하루의 흐름이 갑자기 멈췄을 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곳이 아니던가? 이런 공간에서는 음악이 너무 튀면 안된다. 있는 듯 없는 듯한 느낌으로 조용히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를 흘러야 한다. 물론 할 일 없어 시간을 메우기 위해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에게는 음악이 관심의 대상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접 카페에서 노래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카페에 온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때에도 그 음악과 노래는 강한 존재감을 발산하기 전에 안락의 느낌을 먼저 주어야 할 것이다.
바로 BTV의 음악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이 듀오는 바쁘게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안식을 제공한다. 그 중 BTV의 다섯 번째 이 되는 앨범 <Music & Me>는 특히나 가구 같은 BTV의 음악적 매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이 앨범의 모든 수록곡들은 이미 잘 알려진 팝, 록 등의 히트 곡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 유명곡들을 리메이크 혹은 커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인기를 얻은 곡들을 노래하는 것은 카페에서 노래하는 가수들에겐 어느 정도 필수로 요구되는 사항이 아니던가? 실제 한국에서도 간혹 만나게 되는 카페에서 노래하는 가수들을 보면 모두 잘 알려진 곡들을 노래하곤 한다. 아마 BTV도 이번 앨범 수록곡들을 카페에서 노래할 때 종종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게다가 이전 앨범들에서 한 두 곡씩 기존 곡들을 BTV 스타일로 노래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앨범은 한 번쯤 했어야 할 앨범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나아가 이 앨범을 BTV의 음악적 근간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앨범 타이틀이 ‘음악과 나’인 것도 이를 반영한다. 적어도 이 앨범 수록곡들은 평소 BTV가 즐겨 듣던 곡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BTV의 달콤하고 편안한 음악을 생각하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면모는 약간 놀랍다. 왜냐하면 80년대 릭 애슬리, 아하 등의 뉴웨이브 신스팝, 영화 <트윈 픽스>의 메인 테마 곡 등의 영화 음악, 자미로콰이의 애시드 재즈, 휘트니 휴스턴의 팝 발라드, TLC, 스티비 원더 등의 R&B/소울,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록 그리고 캐롤까지 실로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총망라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곡들은 모두 강한 개성과 확고한 정서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다양한 성향의 곡들을 BTV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새로운 느낌을 지닌 곡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BTV가 이들 곡들을 바꾸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듀오라는 편성 자체의 단순함도 있겠지만 이들은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곡들에서 정서적인 부분을 정화하고 탈색한다. 그 뒤에 BTV만의 매력을 집어 넣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익숙한 새로운 곡들은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은 자연식, 속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요즈음 자주 말하는 웰빙 음식처럼 담백한 느낌을 준다. 이런 담백한 사운드와 정서가 바로 오랜 시간 카페 공연을 통해 얻은 BTV만의 정체성, 매력이 아닐까?
실제 앨범에서 새로이 노래된 곡들은 기존의 극단적, 자극적 정서를 버리고 나른함, 편안함의 정서로 다가온다. 예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열정과 에너지로 충만한인‘Californication’은 파도의 포말이 백사장을 오가는 오후의 해변을 연상시키는 한적함으로 바뀌었고, 영화 <트윈 픽스>의 메인 테마 또한 그 신비로운 음산함을 뒤로하고 서핑하는 청춘들이 있는 해변의 밝은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또한 온 몸을 흔들게 했던 릭 애슬리의 ‘Never Gonna Give You Up’, 자미로콰이의 ‘Virtual Insanity’, 그리고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손가락 하나를 까닥거릴 정도의 경쾌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간절하고 뜨거운 사랑 노래인 ‘I Will Always Love You’는 어떤가?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연인의 느낌으로 새로이 바뀌었다. 그밖에 TLC의 곡을 노래한 ‘Diggin’ On You’, 스티비 원더의 ‘Ribbon In The Sky’, 아하의 ‘Take On Me’등이 화려함이 탈색된 소박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BTV가 새로 노래한 곡들은 기쁨, 슬픔의 어느 한 쪽의 극단적인 정서를 추구하지 않고 그 중간을 지향한다. 그것은 너무 넘치지도 않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함, 여유의 정서다. 바쁘게 흐르는 일상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듯한 정서, 그렇기에 BTV의 음악은 비현실적인 성격을 지닌다. 감정조차도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현실 세계에서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않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위치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던가?
이런 이유로 BTV의 이번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한편 그 이상을 꿈꾸게 한다. 그 꿈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즐거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데서 오는 안위에 대한 꿈이다. 즉, 한가함, 휴식, 무위(無爲)의 행복을 상상하고 꿈꾸게 한다. 그렇기에 감각적인 부분에 민감한 감상자들은 어쩌면 이 앨범에 담긴 BTV의 노래들이 다소 싱겁다,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일상이 너무 고되게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 일에 치여 나 자신을 잃어간다고 생각될 때 이 앨범을 들어보기 바란다. 아마도 당신의 가슴에 푹신한 소파 하나가 놓여 있는 작은 방 하나를 만들어 줄 것이다. 혼자 있어 기분 좋고 모든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그런 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