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Lane – 나윤선 (Seoul Records 2007)

나윤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가요와 재즈의 동화(同化)

1.

지금 나윤선의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재즈 애호가로서 나윤선의 이번 앨범 <Memory Lane>을 구입했습니까? 아니면 그저 뭐 새로운 노래 없나 찾다가 표지의 분위기에 끌려 아무 생각 없이 앨범을 구입했습니까? 물론 두 가지 경우 다 가능하겠지요. 당신은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나윤선을 알고 있는 재즈 애호가들, 그리고 어쩌면 거의 나윤선이라는 존재를 모른 채 새로운 가요 앨범으로 생각하고 앨범을 구입한 일반 가요 감상자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의 해설을 담당한 저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할 지 다소 막막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번 앨범을 녹음할 때 나윤선의 마음도 저와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앨범은 재즈 보컬로 세계적으로 성공한 나윤선이 재즈 밖으로 나와 가요 혹은 일반 팝 음악을 노래한 앨범이니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야 할 지 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언제나 새로움을 향해 과감하게 자신의 전존재를 던지곤 했던 나윤선이 이번에도 이런 불확실성을 뚫고 아주 멋진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재즈 보컬이 노래한 가요, 팝 형식의 노래. 이 사실만을 두고 생각한다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크로스오버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윤선의 크로스오버는 지금까지 있었던 크로스오버, 예를 들면 가요를 노래하는 가수가 대략 반주를 적당히 재즈적으로 두고 재즈를 노래했다고 하는, 또 아니면 클래식 성악가가 대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가겠다고 뮤지컬이나 영화의 주제가 등 잘 알려진 곡을 노래하는 그런 크로스오버와는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자신이 있던 장르 밖의 음악을 한번쯤 해볼까? 아니면 말고 라는 식으로 가볍게 노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녀는 재즈 보컬로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했고 일반 가요 형식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고 형식적인 재즈와 가요의 결합이 아니라 그녀 안에서 재즈적인 것과 일반 대중 가요적인 것이 자연스레 동화되어 하나가 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2.

자신 안에서 재즈와 가요를 자연스럽게 동화시킨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장르에 우선하여 나윤선의 내면적 정서, 시적인 서정성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내면적 서정에 매료되어 기존 재즈에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감상자들도 그녀의 노래를 듣기 위해 그녀의 앨범을 구입하고 공연장을 찾곤 했거든요. 사실 어려운 가요 시장보다 더 어려운 한국의 재즈 시장에서 그녀가 넉 장의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 일 년에 한 두 차례씩 객석을 관객으로 채우고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재즈가 아니라 나윤선이라는 한 가수의 노래에 매료된 감상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앨범 역시 아주 특별한 이 감상자들에 대한 믿음이 기반이 되어 제작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앨범을 기존 나윤선의 음악에 비해 아주 색다른 무엇을 담고 있는 음악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그녀의 재즈 노래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대중적인 측면을 보다 더 극대화한 음악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특히 나윤선이 가요를 노래한다더라, 팝을 노래한다더라 하는 소식에 혹시 잘 쌓아 올린 자신의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우매한 시도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재즈 애호가들에게 이 앨범은 오히려 한번쯤 하고 머리 속에 상상하던 나윤선을 만나게 해주는 반가운 선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번 앨범에 닐스 란 도키(제작 및 피아노), 맷스 빈딩(베이스), 알렉스 리엘(드럼), 디디에 록우드(바이올린) 등 유럽에서 내노라 하는 쟁쟁한 연주자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재즈 애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나윤선과 호흡을 기꺼이 맞추었다는 사실에 새삼 나윤선이 해외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지 실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보더라도 다양한 세션 경험을 지닌 이들 연주자들이 있었기에 나윤선의 음악적 정체성이 기본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전에 그녀를 막연하게 이름 정도 알고 있었거나 아예 모르고 있었던 가요 감상자들에게 이번 나윤선의 노래들은 어떻게 다가갈까요? 사실 이번 앨범은 가요 앨범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가요의 유행을 좌지우지 하는 10대를 겨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재즈 연주자들을 불렀던 것이고 따라서 다양한 효과를 사용하여 전체 사운드를 과도하게 부풀린, 그래서 오래 들으면 다소 귀가 피로한,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의 사운드를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존 나윤선의) 재즈적인 맛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이번 앨범은 20대, 30대 혹은 그 이상의 가요 감상자들에게 기존 우리 가요 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지닌 음악으로 다가가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그녀에게 곡을 준 작곡가들의 면모를 보면 1980년대 후반 가요에 새로운 감수성을 불어넣었던 조동익, 가요의 다양성을 부여하고 있는 하림, 그리고 지금은 퓨전 재즈 밴드 버드를 이끌고 있지만 가요 감상자들에게는 ‘새 바람이 오는 그늘’의 멤버로 기억되고 있는 김정렬, 그리고 서정적 재즈 피아노 연주자 김광민 등 확고한 자신만의 개성으로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감상할 수 있는 곡을 만들어 온 인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앨범은 현재 가요에 식상한 감상자라면 매우 신선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한편 가요 감상자의 입장에서 이번 나윤선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면 더 나아가 그녀의 재즈 앨범으로 감상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그래서 재즈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에서 말한 아주 특별한 감상자 층이 더 두터워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겠죠.

3.

한편 한국 외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재즈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나윤선인 만큼 이번 앨범은 해외 감상자 층 또한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곡에 대한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을 함께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감상자들에게도 나윤선의 색다른 시도를 맛보게 될 예정입니다. 그래도 “세노야”같은 곡은 한국어 버전을 그대로 영어 버전에 실었습니다. 그것은 이 곡이 우리네 전통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창력만으로 곡의 정서를 전달 할 수 있는 나윤선의 뛰어난 표현력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 저는 앨범의 영어 버전을 먼저 들고 나서 한국어 버전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영어 버전을 그저 그녀의 노래가 이끄는 대로 들으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한 뒤 한국어 버전으로 가사를 음미하며 들었는데 바로 가사를 모른 채 느꼈던 그 정서를 표현하고 있더군요. 음악적 진정성은 장르를 넘어 통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재즈 가수가 가요를 노래한다는 사실, 그럼에도 재즈적인 정체성이 유지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이전에 가수 나윤선의 노래는 다른 외적 고민을 무력화 시키고 감상자를 자신의 노래로 이끌어 그 안에서 안도하고 꿈꾸게 만든다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번 확인해 보시죠. 아마 여러분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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