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실예 네가드
1.
실예 네가드-정확한 발음은 실예 네가르라고 하지만 국내에서 네가드로 굳혀진 만큼 그렇게 표기하기로 한다-는 2001년도 앨범 <At First Light>에 수록된 “Be Still My Heart”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다. 실제 블로섬 디어리류의 귀여운 코맹맹이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녀의 노래는 도시를 살면서 지친 현대인들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실예 네가드는 단지 편안하게 노래하는 재즈 보컬로만 바라보기에는 그녀의 숨겨진 능력, 매력이 너무 크다. 무엇보다 그녀는 뛰어난 작곡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이 작곡을 기반으로 그녀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지휘해 앨범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분위기로 꾸밀 줄 아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실예 네가드의 매력은 단순히 보컬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작곡과 그 곡들이 모여 형성한 커다란 주제가 수렴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실예 네가드는 1990년 팻 메스니가 참여하기도 했던 <Tell Me Where You’re Going>(Lifetime1990)으로 앨범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Kirkelig Kulturverksted 레이블을 거쳐 2000년부터 유니버셜에 정착해 앨범을 내오고 있다. 그 가운데 그녀의 역량이 빛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유니버셜과 계약한 2000년 이후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전의 앨범들도 음악적으로 실예 네가드의 개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예 네가드 만의 개성이 성숙되어 드러난 것은 4년간의 공백 끝에 2000년에 유니버셜을 통해 앨범 <Port Of Call>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정말 이 때부터 현재 우리가 사랑하는 실예 네가드의 모습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ort Of Call>에 이어 그녀는 <At First Light>(2001)과 <Nightwatch>(2003)앨범을 발표하면서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연달아 큰 호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특히 앨범 <Nightwatch>는 발매되자마자 노르웨이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그 결과 그녀는 2004년 노르웨이 뮤직 어워드에서 올 해의 음악인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 본다면 현재 실예 네가드는 음악적으로 정점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정점에 있을수록 다시 새로운 무엇을 찾아 탐구를 시작해야 하는 법. 그렇지 않으면 자기복제라는 평가와 함께 인기는 시들고 만다. 그런데 2005년에 발매된 히트곡집 <Be Still My Heart>를 제외하면 역시 4년만의 새 앨범이 되는 <Darkness Out Of Blue>를 들어보면 그녀가 단순히 현재에 안위하며 자기복제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어쩌면 그녀의 음반 이력에 또 다른 중요 앨범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제 그녀는 앨범을 녹음하면서 “새로운 무엇의 시작”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2.
그렇다면 새로운 무엇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나는 그동안 부드러움, 편안함과 함께 그녀의 음악적 매력의 일부분을 자리잡고 있었던 정서적 밝기에서부터 변화를 감지한다. 사실 2000년대 이후 그녀의 음악은 설령 밝더라도 모두 어두움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At First Light>은 어둠을 뚫고 밝아오는 여명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리고, <Nightwatch>는 어둠이 지속되는 밤의 공간적 느낌이 강했다. 실예 네가드의 음악에서 실내적인 느낌, 개인적인 느낌이 났던 것도 이렇게 어두움이 전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는 작은 빛 하나가 거대한 밝음의 효과를 만들어 내지 않던가? 실예 네가드의 밝은 이미지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Nightwatch>에서 심화되기 시작한 어두움의 이미지가 그 타이틀만큼 한층 더 강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실예 네가드가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어둡고 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어두움의 전제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When Judy Falls”처럼 앨범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으리라 예상되는 밝고 화사한 노래가 12곡 안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사운드가 어두워졌다고 하는 것은 음악이 무거워졌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멤버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을 녹음하면서 실예 네가드는 그동안 그녀의 음악을 멋지게 감쌌던 피아노 연주자 토드 구스타프센과 이별하고 새로운 피아노 연주자 헬게 리엔을 영입했다. 이 헬게 리엔은 이미 국내의 여러 재즈 애호가들에게 알려졌을 정도로 자신의 이름을 건 여러 트리오 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구축해 온 피아노 연주자다. 그런데 음악적으로 보았을 때 토드 구스타프센이 달콤하고 은밀하다면 헬게 리엔은 그보다는 무게 있고 어두운 피아니즘을 지녔다. 이런 차이가 실예 네가드의 이번 새 앨범에 그대로 반영되어 드러난다. 이를 위해 “What Might Have Been”이나 “Let Me Troubled”같은 곡을 들어보기 바란다. (그러고 보면 실예 네가드가 이번 앨범을 녹음하며 새로움을 추구했다 말하지 않고 새로운 무엇이 시작됨을 느꼈다고 말한 것은 이런 멤버의 변화가 가져온 상황적 결과로 볼 수 있겠다.)
한편 편곡에 있어서도 은근한 변화가 감지되는데 기타의 비중이 과거에 비해 더욱 커졌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특징으로 드러난다. 아마 피아노와 함께 기타 연주자도 기존의 뵤른 찰스 드레이어에서 핀 구토름센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기타의 비중 변화로 인해 이번 앨범의 사운드는 보다 더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앨범 타이틀 곡이나 소울적인 코러스까지 등장하는 “How Are You Gonna’ Deal With It”같은 곡이 좋은 예라 하겠다. 한편 이렇게 기타의 비중이 커지면서 전체적인 사운드의 음악적 느낌이 재즈에서 포크나 팝으로 살짝 더 경도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3.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실예 네가드의 이번 앨범이 마치 과거와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추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사실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정서적으로는 낯선 느낌보다 어쩌면 많은 감상자들이 기대했을 익숙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실예 네가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예 네가드가 곡을 쓰고 마이크 맥구르크가 시적인 가사를 써서 곡을 완성하는 방식, 그리고 그 곡들을 재즈를 기반으로 포크와 팝의 느낌을 가미해 편곡하는 것은 기존과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실예 네가드 사운드의 질감 역시 큰 변함이 없다. 또한 실예 네가드의 여인의 성숙함과 소녀의 귀여움이 공존하는 보컬도 그래도 건재하다. 따라서 이번 앨범 역시 여전히 지치고 힘든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여유를 제공한다. 그래서 지난 앨범 <Nightwatch>만큼의 큰 대중적 호응을 다시 한번 기대하게 한다.
그러므로 실예 네가드의 이번 앨범은 단순한 변화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장점을 연장하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의미, 어두움을 배경으로 두는 밝은 음악을 완성하고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교차점에 놓인 앨범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그래서일까? 익숙함과 새로움 위에 서 있는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이후에 일어나 그녀의 새로운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