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beck Meets Bach – Dave Brubeck (Sony BMG 2007)

  1. 쿨 재즈와 데이브 브루벡

널리 알려졌다시피 재즈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가운데는 쿨 재즈란 사조가 있지요. 이 쿨 재즈는 복잡한 코드 체계와 열정적 즉흥 연주로 대변되었던 비밥 재즈의 난해함에서 벗어나 보다 더 편하고 쉽게 연주한 사조였다고 대략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쿨 재즈가 단순히 비밥 재즈의 양식을 단순화시키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단순화 과정에서 새로운 편곡 방식-이것은 비밥 이전의 스윙 시대의 편곡 방식을 새로이 재현한 것이기도 합니다-을 사용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클래식적인 요소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클래식적인 부분의 도입은 비밥 재즈가 흑인 연주자 중심으로 흘렀던 것과 달리 쿨 재즈는 백인 연주자들이 다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후에는 제 3의 흐름(The Third Stream)이라는 독자적인 형식으로 발전되기도 했죠.

데이브 브루벡은 이런 쿨 재즈의 한 가운데 위치한 인물입니다. 그는 색소폰 연주자 폴 데스몬드와 함께 퀄텟을 결성하여 뛰어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가운데 <Time Out>(Columbia 1959) 앨범은 쿨 재즈뿐만 아니라 재즈 역사를 빛낸 명반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실제 이 앨범에서 데이브 브루벡은 쉬운 멜로디로 작곡을 하면서도 그 동안 잘 사용되지 않았던 4분의 5박자, 8분의 9박자 같은 복잡한 리듬과 대위법 등의 클래식적인 요소를 차용하여 쿨 재즈만의 독창적 미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그의 다른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됩니다. 아무튼 이런 데이브 브루벡만의 독특한 쿨 재즈는 커다란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요. 특히 그의 음악에 담긴 우아하고 세련된 맛 때문인지 몰라도 그와 그의 퀄텟은 세계를 돌면서 클럽이 아닌 콘서트 홀에서 마치 클래식 공연 같은 분위기의 공연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 클래시컬 데이브 브루벡

한편 이렇게 데이브 브루벡이 기품 있고 정갈한 음악을 만들어 내게 된 데에는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의 가르침의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데이브 브루벡은 다리우스 미요로부터 클래식의 작곡 기법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특이하게도 다리우스 미요는 그의 충실한 제자인 데이브 브루벡에게 재즈를 선택할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탐으로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할 수 있겠죠?

이런 클래식적인 소양 때문일까요?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데이브 브루벡은 그동안 자신의 음악에서 종종 클래식적인 분위기를 차용하곤 했습니다. 특히 <Jazz Impressions Of Eurasia>(Columbia 1959) 앨범에 처음 등장하여 <Brandenburg Gate: Revisited>(Columbia 1961)로 이어졌던 “Brandenburg Gate”는 데이브 브루벡이 얼마나 대위법을 잘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재즈에 사용할 줄 아는지 확인하게 해주는 명곡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부분은 클래식적인 소양이 있는 한 재즈 연주자로서의 데이브 브루벡을 설명할 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감상자들이 알고 있는 데이브 브루벡의 모습 또한 이런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데이브 브루벡은 많지는 않지만 클래식 작곡가로서도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Beloved Son”이나 “Voice Of The Holy Spirit”같은 곡들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으로 화제를 돌려보도록 하죠.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Brubeck Meets Bach>입니다. 그 타이틀을 놓고 본다면 데이브 브루벡이 바흐의 여러 유명 클래식 곡들을 마치 자끄 루시에처럼 적절하게 편곡하여 재즈로 연주한 앨범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이런 앨범을 한 장 데이브 브루벡이 녹음하면 괜찮겠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 “~ Meets Bach”같은 재즈 앨범이 참 많았지 않던가요? 하지만 두 장의 CD로 구성된 이 앨범은 바흐와 브루벡의 만남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록 바흐가 작곡한 “Concerto For Two Pianos And Orchestra, C-minor. BWV 1060”가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작 이 곡의 연주는 데이브 브루벡이 아닌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인 앤서니 파라토레와 조셉 파라토레 형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형제는 바흐의 곡에 이어 데이브 브루벡이 두 대의 피아노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Points On Jazz”라는 클래식 곡을 연주하고 있네요. 데이브 브루벡은 두 번째 CD에서 여느 때처럼 자신의 퀄텟을 이끌고 “Take Five”등 그가 작곡한 유명 재즈곡들을 연주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앨범은 <Brubeck Meets Bach>라는 타이틀을 붙였을까요? 아마도 바흐의 클래식과 데이브 브루벡의 재즈 혹은 클래식 음악이 동일 선상에서 감상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재즈 연주자로서의 데이브 브루벡 외에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데이브 브루벡의 모습을 담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겠죠. 그런데 이런 데이브 브루벡의 종합적인 조망은 앨범에서 바흐 콜레지움 뮌헨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러셀 로이드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겠습니다. 실제 그동안 러셀 로이드는 크리스마스 칸타타인 “La Fiesta De La Posada”같은 데이브 브루벡의 클래식 곡들을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해왔습니다. 그런 작업을 보다 발전시킨 것이 바로 이번 앨범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어쩌면 이번 앨범의 실질적인 주인은 러셀 로이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1. 실황 녹음

이 앨범은 지난 2004년 11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극장인 알테 오페(Alte Oper)홀에서 실황으로 녹음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드린 것처럼 파라토레 형제가 바흐와 데이브 브루벡의 클래식 곡을 연주했고(CD 1) 이어 데이브 브루벡의 유명 재즈 곡을 데이브 브루벡 퀄텟과 러셀 로이드가 지휘하는 바흐 콜레지움 뮌헨이 함께 연주합니다. (CD 2) 그 가운데 첫 번째 CD에 담긴 “Points On Jazz”가 제일 먼저 귀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곡은 데이브 브루벡이 1960년에 어메리칸 발레 극단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정통적인 클래식 양식에 재즈적인 요소를 가미한 현대적 정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런 결합은 이미 그가 재즈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리듬을 클래식적인 진행에 부여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곡에는 왈츠나 스케르조 같은 무곡의 리듬이 랙 타임과 블루스 같은 재즈의 리듬과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A La Turk”같은 부분은 데이브 브루벡의 히트 곡 “Blue Rondo A La Turk”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더 흥미를 끕니다. 실제 두 번째 CD에 등장하는 “Blue Rondo A La Turk”과 비교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두 번째 CD는 그동안 데이브 브루벡이 만들어 낸 주요 대표 곡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모두 쿨 재즈의 상큼하고 깔끔한 정서를 제대로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연주는 아무래도 “Brandenburg Gate: Revisited”와 “Regret”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두 곡은 데이브 브루벡의 재즈 곡 안에 내재된 클래식적인 면을 아주 멋지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소 비장한 느낌을 주는 오케스트라의 진행과 그 위를 흐르는 즉흥 재즈 연주의 조화. 이것만으로도 재즈와 클래식을 아우른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매우 인상적입니다.

한편 실황으로 녹음된 앨범인 만큼 청중들의 반응도 주목할 만 합니다. 실제 같은 청중임에도 클래식과 재즈곡에 따라 그 반응은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클래식 곡으로 채워진 첫 번째 CD에서는 조용한 감상 후 느긋하게 박수를 치는 청중이 담겨 있다면 재즈로 채워진 두 번째 CD에서는 곡의 진행에 곧바로 반응하며 함께 즐기는 청중이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재즈와 클래식의 정서적 차이를 드러낸다 할 수 있겠는데 그럼에도 이 모두가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이라는 사실은 이런 차이는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앨범은 데이브 브루벡의 클래식적인 면과 재즈적인 면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야 말로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재즈 애호가에게는 데이브 브루벡의 클래식적인 측면을 발견하고 나아가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물론 재즈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지니게 만들어주는 계기를 제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아! 클래식과 재즈 모두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스러운 선물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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