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zilian Sketches – Jim Tomlinson (Candid 2001)

<Getz/Gilberto>앨범에 필적할만한 멋진 보사노바

브라질에서 호앙 질베르토,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빈시우스 드 모라에스 등에 의해 생겨난 보사노바는 엄밀히 말한다면 브라질의 다양한 리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현재 보사노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보사노바를 전문으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보컬, 연주자들이 무수히 있으며 그들을 통해 다양한 보사노바 앨범들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앨범들 속에서도 보사노바의 전형, 가장 이상적인 보사노바 사운드를 들려주는 앨범을 말한다면 누구나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겟츠와 호앙 질베르토, 아스트러드 질베르토 부부가 함께 한 <Getz/Gilberto>(Verve 1962)를 꼽는다. 이 앨범은 재즈 역사를 빛낸 명반이자 일반 대중 음악사의 명반으로 자리잡으며 지금까지 많은 감상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 앨범의 명성을 수많은 언급을 통해 확인하거나 직접 앨범을 감상하여 확인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와 보컬들이 단독으로 혹은 연합으로 스탄 겟츠와 질베르토 부부의 이 1962년도 앨범을 재현하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시도들은 시도에 그쳤을 뿐 이 전설의 앨범을 재현하고 나아가 뛰어넘지 못했다.

2.

짐 톰린슨은 영국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로 편안하고 부드러운 연주로 모국 영국을 중심으로 근처 유럽에서 지명도를 획득하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지명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의 색소폰 연주는 나름대로 국내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친숙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의 색소폰 주법 자체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로 그와 스테이시 켄트와의 관계 때문이다. 사실 그는 현재 재즈 보컬을 이끌고 있는 백인 여성 보컬 가운데 하나인 스테이시 켄트의 남편으로 그녀의 앨범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러므로 그의 연주는 이미 스테이시 켄트를 좋아하는 한국의 감상자들에게는 친숙하게 노출되어 온 셈이다. 따라서 아! 그래서 더 친근하게 들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감상자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짐 톰린슨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아내 스테이시 켄트의 반주자가 아닌 리더로서 자신의 앨범을 제작해 왔다. 그리고 그 앨범들은 대부분 편안한 보사노바 재즈의 성격을 띠어왔다. 그 가운데 이 앨범 <Brazilian Sketches>는 짐 톰린슨을 가장 잘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음악, 보사노바 재즈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앨범의 기저에는 내가 화두로 언급한 <Getz/Gilberto>앨범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이 앨범 내지를 보면 짐 톰린슨은 <Getz/Gilberto>앨범이 자신에게 음악적 영감으로 작용했으며 그래서 이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Getz/Gilberto>앨범에서 출발한 짐 톰린슨의 이번 앨범은 그 원형에 버금가는 뛰어난 음악을 담고 있다고 확언하고 싶다.

3.

사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지금까지 많은 앨범들이 <Getz/Gilberto>앨범을 원형으로 삼아 제작되었지만 대부분 그 결과물들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기곤 했다. 이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보사노바 리듬을 배경으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들을 편안하게 노래하고 연주하면 된다는 식의 단순하고 형식적인 생각을 기초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Getz/Gilberto>앨범은 그 이상의 특별한 무엇을 담고 있다. 그 특별함이란 다름아닌 보사노바 리듬을 넘어 스탄 겟츠와 질베르토 부부가 만들어낸 신비한 정서다. 그러니까 단순히 보사노바 리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연주자와 보컬 특유의 매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말 신비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이질적 정서의 공존이다. 즉, 겨울에는 다스하게 들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들리며, 때로는 정신을 맑게 해줄 정도로 싱그럽다가도 때로는 안락한 실내를 연상시키는 아늑한, 복잡 미묘한 그 정서야말로 이 앨범의 핵심인 것이다. 발매된 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앨범이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앨범으로 많은 감상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짐 톰린슨은 바로 그 매력을 이해했던 듯싶다.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분명 하나로 모아질 수 있는 편안한 정서가 주조를 이루지만 그 편안함 아래에는 따스함과 시원함, 싱그러움과 아늑함, 활력과 우울이 다양한 방식으로 섞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앨범은 감상하는 내내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몽환적이고 나른한 여름날 오후부터 막 아침 이슬이 나뭇잎을 타고 흐르는 오전 10시의 싱그러움, 와인과 연인이 함께 있는 안락한 실내, 비가 촉촉히 내리는 평화로운 거리, 많은 기분 좋은 사람들과의 담소가 있는 공간까지 앨범의 각 수록 곡들은 복합적인 상상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첫 곡 “Dreamer”부터 마지막 곡 “No More Blues”에 이르는 50여분의 감상시간 동안 비슷한 스타일의 반복이 주는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4.

그런데 이렇게 짐 톰린슨이 <Getz/Gilberto>앨범의 신비를 재현하고 있다고 해서 이 앨범을 <Getz/Gilberto>앨범의 아류로만 생각하지 말자. 실제 그의 색소폰을 중심으로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그리고 스테이시 켄트의 보컬-그녀는 단 4 곡에만 참여하여 효과적으로 앨범의 매력을 상승시켰다-로 이루어진 편성이나 스탄 겟츠를 자연스레 연상하게 하는 그의 건조한 비브라토 연주에서 직접적으로 스탄 겟츠와 그의 1962년도 앨범을 생각하게 하지만 짐 톰린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감을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역시 정서적인 것으로 그는 스탄 겟츠와 질베르토 부부가 만들어낸 복합적인 신비에 달콤한 우울이라 정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서를 추가했다. “Portrait In Black & White”가 그 대표적인 예로 이 곡에서 그는 “우울해서 기분 좋다.”라는 다소 모순적인 문장을 생각할 정도로 우울을 편안하고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나아가 스테이시 켄트의 촉촉하고 달콤한 목소리가 가세한 “The Gentle Rain”에서는 비관을 긍정으로 바꿀 정도의 마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스탄 겟츠와 질베르토 부부의 보사노바에서 시작해 자신과 아내 스테이시 켄트의 보사노바로 발전시킨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에 나는 이 앨범을 <Get/Gilberto>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2000년대적 변용을 담고 있는 앨범으로 보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