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Seed – Corrinne May (Pink Armchair 2007)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문이 없는, 말 그대로 벽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에 절망할 때가 있지요. 삶을 힘들게 하는 요인들은 사람들마다 제 각각일 것입니다.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서, 누구는 그간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사업, 시험 등에 실패해서, 누구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뭐, 생각할 수 있는 힘든 상황은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다시 힘을 내시나요?

누군가 나를 이해하는 사람의 따듯한 말 한마디면 될 것 같은데 어째 갈수록 세상 인심이 흉흉해지면서 이런 말을 듣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진심과 거짓을 구분하는 데에도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또 그만큼 나 스스로도 누군가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 또한 능력이 되지 않고. 그래서인지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 비슷한 상황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이 닥친 어려움을, 그것을 하소연할 친구하나 없는 자신을 한탄하는 주인공이 종종 등장합니다. 아니면 노래방에 혼자 가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그럴 때 우연히 들은 노래 하나가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습니다. 가사를 이해하기 전에 그냥 음악 자체가 상처 받은 가슴에 새살이 돋는다는 연고처럼 스르르 스며드는 것이죠. 그러면 잠시나마 우리는 용기를 얻고 희망을 품습니다.

싱가포르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코린 메이의 통산 네 번째 앨범 <Beautiful Seed>에 담긴 노래들이 그렇습니다. 이 앨범에 담긴 그녀의 노래들은 스타일, 사운드, 연주 등을 생각하기 전에 감상자의 마음을 맑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음악의 진실성이랄까요?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그녀는‘당신의 어려움, 슬픔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직 무너질 때는 아니지요.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차분하게 노래합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상큼하고 밝게 노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사운드가 감상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기분이 평안한 사람들이 삶에 여유를 즐길 때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슬플 때는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어야 슬픔이 가시지 않던가요? 슬픔을 참고 억지로 밝은 웃음을 짓기란 힘들뿐더러 또 더 가슴이 아프지 않던가요? 그래서 코린 메이의 노래는 슬픔을 공감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앨범의 첫 곡 ‘Love Song For #1’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담담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시작되는 그녀의 노래에는 그리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긍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내 다음 곡 ‘Shelter’를 통해 근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싶다는 우정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죠. 다시 이어지는 ‘On The Side Of Me’는 어떤가요? 사랑하기 쉽지 않은 ‘나’의 편에 서서 친구가 되어 위로해준 ‘너’에게 감사한다는 가사로‘Shelter’의 답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또한 첫 곡의 담담한 정서에서 나아가 어느덧 건강하고 긍정적인 정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렇게 코린 메이는 공감에서 시작하여 감동으로 감상자를 이끌어갑니다.

한편 코린 메이의 노래는 희망으로 삶을 긍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삶을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지 또한 담고 있습니다.‘너’의 위선, 거짓에 놀아나던 과거를 뒤로하고 떠난다는 ‘Leaving’, 슬프고 힘든 삶의 경험들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Scars’,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만의 길을 찾아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노래하는‘On My Way’같은 곡들이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 앨범 타이틀 곡 ‘Beautiful Seed’는 희망을 향한 삶의 의지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곡은 이미‘Dear Hero’라는 국내의 한 캠페인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어 친숙한데요. 이 곡에서 코린 메이는‘미래에 대한 희망은 가장 여린 속삭임에 있고 꿈은 우리가 만들기 나름입니다. 희망은 모든 심장의 울림에 있고 너무나도 작아 보이지만 당신은 하나의 아름다운 씨앗입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코린 메이는 이 앨범이 ‘희망과 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앨범’이 되기를 바랬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우리가 ‘아주 작고 의미 없는 것들이 숨기고 있는 아름다운 가능성에 대해 잊고 지내는 것’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희망 노래는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녀는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 영문학을 전공 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LA로 가서 역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는 노래를 해 온 캐롤 킹과 함께 작업하면서‘If You Didn’t Love Me’라는 곡으로 Tonos.com이 주최하는 작곡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어쩌면 그녀의 노래들은 그녀 스스로가 힘들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했던 곡들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천사의 도시라 불리는 LA에 대한 그녀의 느낌을 담은 ‘City Of Angel’, 조카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My Little Nephew’, 그리고 이 앨범을 제작하던 당시 33세의 삶을 생각하는 ‘33’같은 곡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그녀의 삶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한편 종교적인 면 또한 그녀에게 삶을 긍정하고 희망을 노래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이미‘Love Song For #1’에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동화 같은 내용의‘Five Loaves and Two Fishes’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영어권 밖에 있는 한국 감상자들이 노래를 들으며 그녀가 노래를 통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단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 또한 내지에 있는 가사를 보면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고를 하지 않고 오로지 사운드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노래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그녀의 노래를 감싸고 있는 사운드는 그리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특별한 효과를 사용한다거나 특정 장르에 충실하지도 않습니다. 전자악기가 포함되었음에도 기본적으로 어쿠스틱의 맛을 살린,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은 사운드에서 심심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담백한 사운드는 코린 메이의 맑은 목소리와 만나면서 곡마다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 냅니다. 어찌 보면 그냥 우리 일상의 배경 음악처럼 흘려 보낼 수 있을 법한 사운드이면서도 그렇지 못하게 합니다. 들으면서 저절로 우리의 삶, 현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인간 승리의 드라마 혹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를 놓고 삶의 의지를 새로이 다지게 합니다.

이 앨범에 담긴 그녀의 노래가 단번에 커다란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우리를 달래고 위로하는 노래로 계속 남아 있게 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 뭔가 가슴에 허한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삶에 대한 노래, 사람에 대한 노래로 가득한 이 앨범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현재를 극복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마음의 자양강장제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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