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거대한 콘서트 홀, 재즈 페스티벌의 대형 야외 무대에서 유명 재즈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재즈 공연하면 제일 먼저 클럽 공연을 연상하곤 한다. 재즈의 발전에 있어서 클럽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클럽은 연주자들의 생계가 걸린 일터이자 연주자간의 음악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또 이를 통해 새로운 밴드의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복합적인 장소다. 이런 클럽들 가운데 인기가 높았던 클럽들을 언급한다면 뉴욕의 버드랜드, 블루 노트, 빌리지 뱅가드, 카페 보헤미아, 파이브 스팟 시카고의 플러그드 니켈, 샌 프란시스코의 키스톤 코너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의 클럽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반면 블루 노트 클럽 같은 경우는 세계 곳곳에 지점을 둘 정도로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클럽에서의 공연이 앨범으로 발매된 것으로 유명세를 따진다면 블루 노트 이전에 1935년 막스 고든에 의해 문을 연 빌리지 뱅가드 클럽을 먼저 생각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절대적인 숫자에서 그 서열 관계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문제작이 녹음된 클럽으로서는 빌리지 뱅가드가 단연코 최고라 생각된다. 실제 소니 롤린스(1957), 빌 에반스(1961), 존 콜트레인(1961), 아트 페퍼(1977), 키스 자렛(1979), 조 헨더슨(1985), 폴 모시앙(1995), 윈튼 마샬리스(1999) 등 유명 연주자들의 빌리지 뱅가드 공연 실황 앨범들은 재즈사를 빛낸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 명반 목록의 가장 최신 항목에 브래드 멜다우의 앨범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브래드 멜다우와 빌리지 뱅가드의 관계는 다른 선배 연주자들보다 훨씬 더 긴밀한 양상을 보인다. 실제 그는 지금까지 모든 트리오 라이브 앨범을 빌리지 뱅가드에서 녹음했다. 게다가 그의 라이브 앨범들은 모두 정규 앨범의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스튜디오 앨범의 내용을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이를 기록하는 차원에서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던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레퍼토리와 이전 앨범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연주를 앨범에 담았다는 것이다.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첫 번째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 앨범은 1997년 7월 29일부터 8월 3일 사이에 녹음되어 <The Art Of The Trio Vol. 2: Live At The Village Vanguard>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 이전에 브래드 멜다우는 실질적인 첫 번째 리더 앨범 <Introducing Brad Mehldau>과 이후 5장으로 이어질 “Art Of The Trio” 시리즈의 첫 번째 앨범 <Art Of The Trio Vol. 1> 를 각각 1995년과 1996년에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두 앨범 모두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앨범 이전에 Fresh Sound New Talent 레이블에서 1994년에 발매되었던 <When I Fall In Love>는 브래드 멜다우와 드럼 연주자 호르헤 로시와의 공동 앨범이었다.) 사람들은 이 두 장의 앨범에 담긴 다소 우울하고 어두우면서 예민한 브래드 멜다우의 서정적 감수성에 환호했다. 그러나 첫 번째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 앨범 <Art Of The Trio Vol. 2>에서 브래드 멜다우는 나의 음악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이 의도적이다 싶을 정도로 발라드 외에 빠른 템포 연주를 강조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보다 길고 현란한 솔로로 스튜디오에서와는 다른 비루투오소적 기질을 드러냈다.
브래드 멜다우의 두 번째 빌리지 뱅가드 실황 앨범은 1999년에 <Art Of The Trio 4: Back At The Vanguard>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당시 그는 한해 전에 탁월한 멜로디적 감각과 특유의 우울한 서정으로 가득한 스튜디오 앨범 <Songs: The Art Of The Trio Vol. 3>을 발표하여 주목 받는 젊은 연주자에서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에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노 연주자로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서정적 연주에서 빌 에반스의 흔적을 언급하는 것에 상당히 거북해 했다. 그래서 두 번째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 앨범은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인 듯 의도적으로 빌 에반스와는 상관 없는 보다 개방적인 화성에 기반한 연주를 담고 있다. 그리고 솔로 연주에서도 테마의 멜로디를 보다 과감하게, 보다 멀리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직접 쓴 라이너 노트를 통해 자신은 13세인가 14세 무렵 잠시 빌 에반스의 연주를 들은 것이 전부일 정도로 빌 에반스의 연주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밝히는 동시 음악적이지 않고 연주자의 지난 이력과 인상에 근거하는 비평가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한편 같은 해 브래드 멜다우는 <Elegiac Cycle>이라는 솔로 앨범을 선보였는데 자신의 서정적 피아니즘이 브람스, 슈만, 쇼팽 등의 낭만파 클래식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밝히면서 자신의 서정은 인상주의 작곡가들의 영향을 주로 받았던 빌 에반스와 상관 없음을 은연중에 밝혔다.
이후 2000년에 <Place>라는 스튜디오 앨범을 녹음한 뒤 브래드 멜다우는 2000년 9월 세 번째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 앨범을 녹음했다. <Art Of The Trio Vol. 5: Progression>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이 앨범은 브래드 멜다우-래리 그르나디에-호르헤 로시 트리오의 모든 것을 들려주었다. 사실 브래드 멜다우를 워너 레코드로 영입하고 이후 그의 앨범을 제작한 맷 피어슨은 “Art Of The Trio” 시리즈를 통해 트리오가 어떻게 발전하는 가를 기록하려 했다고 한다. 그 정점이 바로 이 앨범이었다. 실제 “Art Of The Trio”시리즈의 마지막 앨범답게 두 장의 CD으로 발매된 이 앨범은 스튜디오 앨범에서 더 강하게 드러났던 서정적 발라드 연주와 라이브 앨범 특유의 역동적인 연주를 고르게 담고 있으며 각 곡에서 세 연주자가 펼치는 솔로와 보다 탄탄하면서도 자유로운 인터플레이는 트리오가 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이후 2002년도 앨범 <Anything Goes>을 끝으로 호르헤 로시가 떠나면서 브래드 멜다우-래리 그르나디에-호르헤 로시 트리오는 활동을 마감했다. 하지만 브래드 멜다우는 곧바로 종종 호르헤 로시를 대신했었던 제프 발라드를 영입했다. 그리고 2005년 <Day Is Done>를 녹음하고 2006년 10월 네 번째로 빌리지 뱅가드 클럽에서 라이브 앨범<Live>를 녹음했다.
이상 브래드 멜다우의 빌리지 뱅가드 클럽 라이브 앨범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한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이것이 그대로 앨범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브래드 멜다우는 마치 자신의 정규 앨범을 위한 스튜디오인 듯 빌리지 뱅가드 클럽을 활용했다. 분명 빌리지 뱅가드 클럽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브래드 멜다우는 첫 번째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 앨범이 될 1997년의 공연에 대해 클럽이 트리오 멤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래서 일주일 만에 음악적으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모든 공연이 끝난 후에는 트리오가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좋은 느낌 때문에 이후 지속적으로 빌리지 뱅가드 클럽에서의 공연이 좋은 결과를 나아 앨범으로 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결과적으로 브래드 멜다우에게 빌리지 뱅가드는 늘 성공을 가져다 주는 명당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