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할리데이를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 앨범
1.
마들렌느 페이루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20대 중반의 모습으로 맨발로 드레스를 입은 채 골목에서 양손으로 턱을 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저는 평범한 백인 여성의 목소리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앨범과 표지를 다시 확인해야 했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달랐습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안개처럼 감아드는 스모키 보이스였죠.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스모키 보이스는 헬렌 메릴을 비롯하여 여러 백인 여성 보컬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다지 놀랄만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놀랐던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를 기억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백인이 아닌 흑인의 목소리를. 바로 재즈의 3대 디바라고 불리는, 불행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목소리였습니다. 정말 그냥 음악만 들었다면 빌리 할리데이가 이런 노래를 했던가? 의문할 정도로 너무나도 같은 목소리였습니다. 정말 무당 같은 영매(靈媒)가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소름 끼칠 정도로 꼭 같은 목소리였죠.
이렇게 빌리 할리데이의 환영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마들렌느 페이루는 재즈계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녀만의 음악적 개성도 무시할 수 없겠죠. 그러나 노래를 듣는 순간 확연하게 느껴지는 빌리 할리데이의 흔적은 그녀의 개성을 생각하는 것을 잊게 합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를 의식한 듯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흐르는 모노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복고적 사운드를 주로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빌리 할리데이의 도플갱어라는 평가는 사실 그녀의 음악이 발전하는데 커다란 제약이 됩니다. 왜냐하면 빌리 할리데이의 환생으로 마들렌느 페이루를 보는 순간 그녀는 과거를 향한 음악을 해야 인정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 그게 그렇습니까? 마들렌느 페이루 나름대로 자신만의 음악적 방향과 개성이 있는 것을. 그래서일까요? 지난 앨범 <Careless Love>(Rounder 2004)에서부터 희미하게 나타났던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이번 세 번째 앨범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물론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빌리 할리데이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마들렌느 페이루가 억지로 흉내 내려 해서 나온 목소리가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목소리였는걸요.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들렌느 페이루는 빌리 할리데이를 넘어 그녀만의 음악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앨범 수록 곡의 면모를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빌리 할리데이가 노래했을 지도 모를 스탠더드 곡은 앨범에서 “The Summer Wind”와 “Smile”이렇게 단 두 곡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신 레너드 코헨(“Blue Alert”, “Half The Perfect World”), 톰 웨이츠(“The Heart Of The Saturday Night”), 조니 미첼 (“River”). 프레드 네일(“Everybody’s Talkin’”)등 포크 계열 작곡가들의 곡들이 노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들을 마들렌느 페이루는 굳이 재즈적으로 바꾸려 하기 보다는 원곡의 포크적 색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노래합니다. 분명 빌리 할리데이를 생각하기 어려운 음악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조니 미첼의 “River”를 노래할 때는 컨트리, 포크, 팝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K.D 랭과 듀엣으로 노래합니다. 그래서 이 겨울 냄새가 나는 노래는 재즈와 포크의 경계에서 묘한 긴장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포크적인 경향은 앨범에 수록된 자작곡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앨범에는 네 곡의 자작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마들렌느 페이루 혼자서 만든 곡이 아니라 공동 작곡의 형태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작곡가는 70년대를 풍미했던 대중적인 재즈 록 그룹 스틸리 댄(Steely Dan)의 멤버 월터 베커, 노라 존스의 대표 앨범 <Come Away With Me>(Blue Note 2002)의 성공을 이끌었던 제스 해리스, 그리고 조니 미첼의 남편으로 이번 앨범의 총 제작을 담당하기도 한 래리 클라인입니다. 이들이 작곡에 참여한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음악적 성향을 살펴본다면 곡들이 포크적 성향을 띄게 됨은 일찌감치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앨범이 마치 재즈보다는 컨트리, 포크에 가까웠던 노라 존스의 전철을 따르려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곡의 분위기는 담백, 건조한 포크적인 맛이 강하지만 그 연주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특히 오르간, 키보드 등을 연주하는 샘 야헬은 마들렌느 페이루의 음악에 흑인적, 재즈적 색채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3.
한편 마들렌느 페이루의 이번 앨범이 빌리 할리데이를 벗어난 그녀만의 음악을 담고 있다고 보게 만드는 것은 그 음악적 정서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빌리 할리데이의 모습은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가슴 아픈 노래들 아닙니까? 물론 그녀도 밝고 경쾌한 노래를 불렀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모래들은 모두 삶의 비애가 느껴지는 곡들입니다. 하지만 마들렌느 페이루의 이번 앨범을 들어보세요. 앨범이 “I’m All Right”으로 시작해 “Smile”로 끝이 나는 것은 나름대로 의도적인 선곡의 배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두 곡 외에도 앨범 수록 곡들은 모두 삶에 대한 낙관, 낭만의 정서로 가득합니다. 삶의 비애, 비탄의 정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훨씬 듣기 편한 매력이 있지요. 그래서 마들렌느 페이루의 거친 질감의 목소리는 빌리 할리데이와 유사하지만 삶의 비애보다는 따스함을 먼저 느끼게 해줍니다.
한편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샹송의 고전이 한 곡 노래되었습니다. 지난 앨범에서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La Vie En Rose”를 노래하더니 이번 앨범에서는 세르쥬 갱스부르의 “La Javanaise”를 노래했습니다. 역시 포크적인 색채가 드러나도록 노래했네요. 이렇게 마들렌느 페이루가 앨범에 샹송을 한 곡씩 노래하는 이유는 그녀가 비록 미국 조지아주 출신이지만 13세부터 22세, 그러니까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앨범에 담긴 한 곡의 샹송은 마들렌느 페이루의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 앨범이 다른 누구도 아닌 마들렌느 페이루 자신만의 것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서명(署名)이기도 합니다.
4.
저는 마들렌느 페이루의 이번 앨범이 재즈에 관심을 둔 많은 분들의 관심을 끌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정서적으로 편하게 다가가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음악적으로도 요즈음 재즈 쪽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존재하고 있는 포크적 재즈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역시 보다 많은 분들이 그녀의 노래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겠지요. 자. 이미 마들렌느 페이루를 알았건 아니면 모르는 상태에서 우연히 앨범을 손에 들었건 간에 한번 그녀의 노래를 진득하니 들어봅시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주변 사람에게 추천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추천하게 되실걸요. 일단 저부터 여러분께 이 앨범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