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path – Pyramid (Videoarts 2006)

완벽한 조화를 통해 제시하는 일본 퓨전 재즈의 새로운 감수성

1.

일본의 퓨전 재즈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그룹을 말하라 한다면 누구나 T 스퀘어와 카시오페아를 꼽을 것이다. 이것은 이 두 그룹이 일본 퓨전 재즈의 인기를 양분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이들이 일본 퓨전 재즈에 끼친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두 그룹에 재적했다가 탈퇴한 멤버들이 결성한 다양한 프로젝트 그룹들은 일본 퓨전 재즈를 탄탄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최근에만 해도 Four Of A Kind, Trix 등 T 스퀘어와 카시오페아 출신 멤버들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프로젝트 앨범들이 발매되었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프로젝트 앨범을 들을 때마다 일본 퓨전 재즈의 탄탄한 구조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교에 치우친 사운드에 아쉬워했다. 일본 퓨전 재즈를 하나의 정형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런 프로젝트 그룹의 앨범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리 특별할 것 없이 자신들의 출신 그룹과 유사한 음악을 할 것이었다면 굳이 T 스퀘어와 카시오페아를 탈퇴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하곤 했다.

2.

피라미드는 카시오페아 출신의 드럼 연주자 아키라 짐보와 T 스퀘어 출신의 키보드 히로타카 이즈미를 주축으로 현재 일본을 대표할만한 기타 연주자로 평가 받고 있는 기타 연주자 유지 토리야마가 참여한 3인조 그룹이다. 이런 멤버 구성을 하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기존 일본 퓨전 재즈와 그다지 다르지 않는 음악을 들려주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다양한 프로젝트 앨범들과 질적으로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 그 다른 질(質)이란 결코 거칠고 직선적이며 현란한 기교가 앞서는 음악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렇다고 아예 말랑말랑한 분위기에 연주의 즐거움을 매몰시키지도 않는다. 적당한 가벼움과 또 그만큼의 적당한 무게로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 쉽게 질리지도 않는 퓨전 재즈를 들려준다. 따라서 굳이 ‘T 스퀘어와 카시오페아 출신 연주자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식의 수식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

이런 개성만점의 편안한 사운드는 피라미드의 세 멤버가 같은 고교 출신으로 각자의 음악 활동 속에서도 오랜 시간 음악적 우정을 나눠왔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이들은 피라미드라는 그룹 이름을 사용하기 전에 이미 Okay Boy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온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지난 고교 시절을 추억하는 음악을 들려준다고 오해하지 말자. 대신 오랜 시간 음악적 인간적 유대관계가 있었기에 세 연주자의 탁월한 연주력은 +3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3.

이번 <Telepath>앨범은 지난 해 발매되었던 첫 앨범 <Pyramid>에 이은 두 번째 앨범이다. 워낙 첫 앨범이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주었기에 이번 두 번째 앨범이 이들에겐 일종의 부담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두 번째 앨범 역시 첫 앨범에서 크게 다른 점이 없으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이번 앨범은 세 연주자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멤버들의 개성이 전보다 더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귀에 들어온다. 실제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키타를 오가는 유지 토리야마는 어떤 곡이건 간에 자신의 명쾌한 솔로를 서명처럼 집어 넣었고 히로타카 이즈미는 개인적으로 뉴 에이지 성향의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어쿠스틱적인 정서를 앨범 곳곳에 불어 넣었다. 그리고 아키라 짐보는 넘치는 에너지로 탄탄한 리듬을 연주하며 모든 곡에 편재(遍在)한다. 이런 연주자들의 개성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피라미드라는 그룹이름이 너무나도 적절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 하나 더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빛나는 삼각형의 꼭지점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한편 세 연주자의 개성은 단순한 자기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연주가 아닌 음악으로 귀결되고 있기에 결코 모나게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연주를 펼치는 와중에 부재하는 베이스의 역할을 돌아가며 하고 있다는 점은 그룹 사운드를 역동적으로 이끌고 있다. 실제 앨범 수록 곡들을 자세히 들어보라. 베이스가 없다는 느낌, 사운드가 비어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 어느 그룹보다 탄탄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앨범 타이틀이 <Telepath>인 것도 그만큼 세 연주자들의 교감이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4.

앨범은 총 12곡을 수록하고 있다. 세 멤버의 자작곡 7곡과 기존 곡 5곡이 실려 있는데 모두 산뜻하고 밝은 톤으로 연주되었다. 그래서 앨범을 듣는 내내 사람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 정서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한편 5곡의 기존 곡 가운데 줄리아 포댐의 노래로 국내에서도 적잖은 사랑을 받았던 “Happy Ever After”와 크루세이더스와 랜디 크로포드의 조합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Street Life”가 포함되어 있어 이채롭다. 특히 이 두 곡에는 R&B 가수 케냐 헤더웨이가 보컬로 참여하고 있어 보다 대중적인 호응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5.

그런데 내가 피라미드의 음악에 호평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들의 조화로운 사운드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사운드가 조화롭기만 하다면 안정적이지만 그다지 재미없는 사운드로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피라미드는 세 연주자들이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된 지향점을 향해 질주하면서 그룹만의 색다른 이미지를 생산해 낸다. 그래서 감상자는 단지 이들의 조화로운 관계에 단성을 지르기 앞서 피라미드의 음악이 제시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따라 여러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로 공간 이동을 하는 착각에 빠질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내가 피라미드의 음악을 기존 일본 퓨전 재즈와 다르게 보고 또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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