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지닌 매력을 모처럼 제대로 보여준 앨범
- 리 릿나워의 두 가지 매력
리 릿나워는 퓨전 재즈를 이야기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것은 그가 퓨전 재즈를 만든 사람이라거나 무엇인가 새로운 혁신을 가져온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신 퓨전 재즈의 인기를 이끈 연주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퓨전 재즈는 보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스무드 재즈로 한 단계 나아가 있는 상황인데요. 초기에는 거칠고 다소 원초적이었던 퓨전 재즈를 부드럽고 도시적 세련미를 갖춘 음악으로 이끈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리 릿나워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도 리 릿나워의 인기가 대단하지요?
저 역시 그의 음악 그의 기타 연주를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최근 그의 음악에서 음악적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아쉬움을 느꼈다는 것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그 아쉬움은 리 릿나워가 지닌 매력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적 매력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도시적 세련미 속에서 빛나는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라틴 음악적인 요소입니다. 실제 지난해 그가 과거 몸담았던 GRP 레이블에서 그의 라틴적인 부분만을 따로 정리한 <World Of Brazil>이라는 앨범을 발매했을 만큼 그의 음악에는 이국적인 향취가 상당합니다. 그리고 리 릿나워의 또 다른 음악적 매력은 연주자 그 자체로서의 매력입니다. 그러니까 과거 “Captain Finger”라 불릴 정도로 명확한 운지와 매끄러운 톤, 그리고 웨스 몽고메리의 재즈 기타 스타일을 계승하고 자기화 시킨 주법이 주는 매력 말입니다.
이렇게 리 릿나워의 음악적 매력을 두 가지로 생각했을 때 최근 그의 음악은 연주자로서의 매력에 더 많이 치중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그는 지난 해 <Overtime>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는데요. 이 앨범에서 시종일관 그는 진지한 연주자로서의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그래서 그 뛰어난 연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컸습니다.
- 이국적인 색채감
리 릿나워의 새로운 앨범 소개를 하면서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긴 서론을 풀어놓은 것은 이번 새 앨범이 모처럼 리 릿나워의 모든 매력을 다시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라틴 음악적인 색채감에 연주자로서의 매력이 적절히 녹아 든 앨범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어디가 어떻게 매력적인지 살펴볼까요?
일단 이미 말씀 드렸던 것처럼 이번 앨범에는 그동안 많은 분들이 그리워했던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라틴적 분위기가 배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다니엘 조빔-그는 보사노바의 대표적 작곡가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손자이기도 합니다-과 역시 브라질의 여성보컬 조이스의 참여에서 드러납니다. 이 두 사람은 “Blue Days”에서 온화하고 투명한 브라질 사운드를 들려주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리 릿나워의 명반이라 할 수 있는 <Festival>(GRP 1988)에 수록된 곡으로 카에타노 벨로소가 노래했던 “Linda”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외에도 음악 곳곳에서는 화려한 타악기 연주 등을 통해 브라질 적인 요소가 자주, 효과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리 릿나워는 이번 앨범을 통해 이 라틴적 분위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아프리카적인 사운드를 도입하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 그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자마조베라는 보컬과 그녀의 프로듀서이자 기타 연주자인 에릭 팔리아니를 기용했습니다. 그래서 “Memeza”같은 곡에서 기존 리 릿나워의 사운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아프리카 적인 색채를 새로 사운드에 덧입히도록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쩌면 기존 리 릿나워의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논쟁거리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새롭다는 것 그리고 기존 리 릿나워의 음악적 핵심은 그대로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기타 연주자로서의 리 릿나워
한편 이번 앨범은 퓨전 재즈나 스무드 재즈로 분류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분위기에 연주가 매몰되는 면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리 릿나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그는 기교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기타 연주자 아닙니까? 이번 앨범에서도 그 기타 연주 실력을 유감없이 들려줍니다. 매끄러운 멜로디의 연결, 동그란 톤, 이야기를 담아낸 프레이징 등 명불허전(名不虛傳)의 기타 솜씨를 그대로 들려줍니다. 특히 역시 웨스 몽고메리의 후계자이기도 했던 헝가리 출신의 기타 연주자 가보르 스자보의 “Spellbinder”에서 들려주는 화려한 기타 연주는 별 다른 상상 없이 그 자체로 감상자를 감탄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트럼펫 연주자 프레디 허버드의 대표 곡 가운데 하나인 “Povo”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이 외에도 섬광처럼 빛나는 리 릿나워의 기타 연주는 도처에 편재합니다.
한편 참여한 연주자들의 면모도 앨범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리 릿나워의 오랜 지우라 할 수 있는 데이브 그루신을 시작으로 허비 행콕, 존 패티투치, 비니 콜라우타, 아브라함 라보리엘. 파트리시아 러쉰, 알렉스 아쿠나, 라차드 보나 등 쟁쟁한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는데요. 이들은 모두 기교와 이국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연주자들입니다. 한편 파트리시아 러쉰이 자신의 히트 곡 “Forget Me Not”을 모처럼 새로 노래한다는 사실은 앨범의 색다른 재미이기도 합니다.
- 리 릿나워의 2000년대 최고 앨범
보통 재즈는 늘 새로운 음악이라고들 합니다. 자유의 음악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 표현은 언제나 연주자들을 옥죄는 굴레와도 같습니다. 그만큼 매번 자기 부정을 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음악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경력이 붙은 연주자들에게 앨범을 녹음한다는 것은 더 많은 기획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리 릿나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기타 연주 중심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앨범들이 그의 새로운 구상이었고 이번 새 앨범 <Smoke’n’Mirroirs>가 그 첫 결과라면 저는 그 구상의 결과가 상당히 훌륭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새로움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그래서 새롭지만 익숙하기도 한 음악을 들려주니 말이죠. 저는 몇 장 되지 않지만 리 릿나워의 최근 앨범 가운데 최고의 음악을 들려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