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가장 매력적이고 듣기 좋게 느껴지는 경우는 음악 속에 익숙함과 새로움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이다. 즉, 분명 처음 듣는 음악이기에 새로운 것이 분명하지만 그와 함께 감상자의 이전 음악 경험에 적절히 부합되는 진행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진행을 함으로서 “새로운 곡이지만 언제 한번 이 음악을 이미 들었던 것 같다.”는 식의 느낌을 얻어낼 수 있을 때 감상자는 그 음악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연주자 개인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표현에 있어서는 보편성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대중적 호응에 관련된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닌 견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성과 예술성의 조화는 차치하더라도 실제 창작과 그 연주에 있어 새로우면서 익숙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크로스오버라고 말하는 음악만큼은 기존의 두 스타일을 이종 교배하는 것이기에 그 방법론 자체로만 볼 때 익숙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감상자에게 들려줄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좋은 예가 클라즈브라더스와 쿠바퍼쿠션의 첫 앨범 <Classic Meets Cuba>였다. 클래식을 주로 연주하면서 재즈 쪽까지 그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세 연주자 킬리안 포스터(Kilian Forster, 베이스), 토비아스 포스터(Tobias Forster, 피아노), 팀 한(Tim Hahn, 드럼)으로 이루어진 클라즈브라더스와 쿠반 뮤직과 라틴 재즈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 명의 타악기 주자 알렉시스 헤레라 에스테베즈(Alexis Herrera Estevez)와 엘리오 로드리게즈 루이스(Elio Rodriguez Luis)로 이루어진 쿠바 퍼쿠션의 이색적인 만남을 담고 있었던 이 앨범은 유명한 클래식 테마들을 쿠바적인 동시 재즈적인 색채를 가득 입혀서 연주한 음악들로 익숙한 동시에 신선하다, 귀에 쏙 들어온다는 대중적 호응을 얻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이 앨범을 처음 발매한 독일에서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운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지금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Jazz Meets Cuba> 앨범이다.
<Jazz Meets Cuba>는 말 그대로 재즈와 쿠바 음악을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혹시 이 앨범이 <Classic Meets Cuba>의 인기에 힘입어 기획되었다고 첫 앨범의 성공 요인을 그대로 답습한, 따라서 그보다 못한 앨범으로 지레짐작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앨범의 발매는 지난 앨범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클래식의 유명 테마와 쿠바의 리듬이 만나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즈가 해결책으로 등장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앨범은 분명 첫 앨범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여기에 편승해 졸속 기획된 앨범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이번 앨범은 “Summertime”이나 “In A Sentimental Mood”같은 곡에서 알 수 있듯이 첫 앨범과 같은 방법론을 사용하여 재즈와 쿠바 음악의 정서적 공감대를 찾아 이를 표현해 나가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전부가 아닌 보다 더 진일보한 새로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일단 지난 앨범의 경우 토비아스 포스터가 모든 편곡을 담당했었던 것과 달리 이번 앨범에서는 전 멤버가 편곡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생긴 두드러진 변화는 킬리안 포스터의 베이스 연주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앨범에서 재즈적인 것과 쿠바 음악적인 것을 분류한다면 재즈적인 부분의 핵심은 킬리안 포스터의 베이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베이스 연주는 재즈적인 즉흥성과 스윙감으로 가득 찬 진행을 보여준다. 한편 쿠바 음악의 핵심은 당연히 두 쿠바 출신의 타악기 연주자들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번 앨범에서 이들의 타악기는 첫 앨범보다 더 사운드의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클래식과 달리 재즈가 보다 더 리드미컬한 음악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하겠는데 팀 한의 드럼이 만들어 내는 규칙적이고 화려한 리듬 사이를 가득 메우면서 리듬이상의 멜로디적 색채감을 드러내는 두 사람의 타악기 연주는 재즈를 만난 쿠바 음악이 아닌 쿠바 음악을 만난 재즈라고 할 만큼 재즈를 강하게 흡수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서는 “Conception”, “Dynamita”, “Konga Solo”같은 앨범에 대거 수록된 타악기 솔로 연주 곡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들의 음악이 지닌 신선함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재즈 내의 한 스타일로 존재하는 재즈와 쿠바 음악의 결합물인 아프로-쿠반 재즈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이들의 음악을 쉽게 아프로 쿠반 재즈로 생각한다면 이들의 음악은 기획에 있어 신선한 것이 아닌 너무 익숙해 뻔한 그런 음악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도 다섯 연주자들 역시 이러한 위험을 의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거쉰, 폴 데스몬드의 재즈 스탠더드와 함께 프랑크 에밀리오 같은 라틴 작곡가의 곡과 자신들의 자작곡을 대등하게 연주하여 이를 피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앨범을 아프로 쿠반 재즈와는 다른 색다른 크로스 오버 앨범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아닌 토비아스 포스터의 피아노 연주다. 그는 지난 첫 앨범과 다르게 재즈적인 면을 자제하고 오히려 쿠바 음악에 가까운 중립적인 피아노 연주를 펼쳐 재즈적인 색채를 앨범에서 희석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찰리 파커의 곡을 연주한 “Au Privave”를 감상해 보자. 이 앨범에서 들리는 토비아스 포스터의 피아노는 재즈적인 스윙감보다는 오히려 바하의 클라비어 곡을 빠르게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더 강하게 풍긴다. 나아가 직접 작곡한 “Elegia”같은 곡은 클래식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작곡되어 쿠바 리듬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작곡의 유명한 보사노바 곡 “Girl From Ipanema”, 가장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폴 데스몬드 작곡의 재즈 스탠더드 “Take 5”같은 경우는 편곡을 통해 멤버 전원이 앨범의 사운드를 기존의 아프로 쿠반 재즈로 흐르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래서“Girl From Ipanema”의 보사노바 리듬은 클래식적 정서로 순화되어 있으며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Take 5”의 5/4 박 스윙감은 록을 느끼게 할 정도로 규칙적인 리듬과 긴장의 정서로 희석되었다.
이렇게 클래식과 쿠바의 리듬이 일대 일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재즈적 순간이 발생되었던 지난 첫 앨범과 달리 재즈와 쿠바 리듬이 만난 이번 앨범에서는 재즈는 많이 억제되고 쿠바 리듬과 오히려 지난 앨범에서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었던 클래식적인 맛이 은근하게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쿠바 음악을 흡수한 아프로 쿠반 재즈가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을 담고 있는 이번 앨범이 지닌 익숙한 새로움이다. 따라서 이미 첫 앨범을 감상하고 그 사운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당신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그 뻔한 예상을 빗나가는 새로움을 익숙함 속에서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사족: 한편 필자는 이 글을 클라즈브라더스와 쿠바퍼쿠션의 첫 앨범 <Classic Meets Cuba>가 라이센스 앨범으로 국내에 발매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시기에 쓰고 있다. 곧바로 두 번 째 앨범이 라이센스로 발매된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들의 내한 공연이 예정되었다는 사실은 더 놀랍다. 다시 한번 익숙함이 전제된 새로움이 얼마나 큰 대중적 흡입력을 지녔는가를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