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노바로 새롭게 노래된 미국적 정취들
- 세계인의 음악 보사노바
보사노바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여러 리듬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현재 보사노바는 하나의 리듬을 넘어 확고한 음악적, 대중적 기반을 지닌 장르로 자리잡고 있으며 브라질을 넘어 세계인이 즐기고 연주하는 보편적 음악이 되었다. 우리 가요만 해도 보사노바 리듬을 사용한 곡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지 않던가?
이 보사노바 음악은 그 어떤 스타일의 음악도 넘기 어려운 매력을 지녔다. 마치 주변 온도에 맞추어 색을 변화시키는 카멜레온처럼 보사노바 음악은 겨울에는 따뜻한 느낌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보사노바 음악을 듣기에 최적의 계절은 여름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보사노바 음악이 겨울을 모르는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무더운 여름 보사노바 음악을 듣게 되면 누구나 시원한 바다와 휴양지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매년 여름이면 다양한 보사노바 앨범이 발매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보사노바 리듬은 긴장을 완화시키는 능력만큼 음악이 지닌 개성을 부드럽게 순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여러 보사노바 앨범들 가운데 잘 만들어진 보사노바 음악을 고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올 여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앨범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리사 오노의 새로운 앨범이다.
- 누구보다 더 브라질 적인 리사 오노의 보사노바
이제 리사 오노는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보사노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부드러운 보사노바 리듬도 리듬이지만 재즈에서 말하곤 하는 스모키 보이스에 속하는, 부드러움 속에 결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한 매력으로 감상자를 사로잡는다. 그녀의 음악에 낭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보사노바 리듬 외에 그 위에 살짝 녹아 든 안개 같은 그녀의 보컬이 커다란 몫을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편 리사 오노의 보사노바 음악은 다른 어느 뮤지션보다 더 브라질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마 브라질 본토의 뮤지션보다 더 브라질 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많은 보사노바 음악들은 그저 긴장과 이완이 교차되는 보사노바 리듬만을 원래 설정된 멜로디에 차용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리사 오노는 단순한 리듬 차용이 아니라 보사노바에 담긴 브라질 음악의 색을 아주 잘 이해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나아가 이 보사노바 리듬을 기반으로 세계의 다양한 음악들을 새로운 공간 속에 위치시키는데도 일가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브라질 사람이 아닌 일본 사람이 이러한 음악을 선보인다는 것은 다소 뜻밖의 모습일 수 있다. 물론 그녀가 브라질 상 파울로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10세 이후 일본에서 거주했음을 생각하면 더욱 더 기이한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마리오 아드넷, 유미르 데오다토, 오스카 카스트로 네브 등 브라질 대중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제작자, 연주자로서 매 앨범마다 참여한 힘이 크다. 이들의 후원이 있었기에 리사 오노는 누구보다 브라질적이고 대중적인 보사노바 음악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브라질적인 보사노바 탐구가 정점에 이르자 그녀는 2000년대에 접어 들면서 자신만의 보사노바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 보사노바를 통해 바라본 영미 대중 음악
그 시도란 다름 아니라 브라질에서 나와 다양한 세계의 음악과 보사노바를 결합하는 것이다. 실제 그녀가 최근 선보인 일련의 앨범들은 다양한 세계의 음악들과 보사노바가 결합된 음악을 담고 있다. 예로 <Bossa Hula Nova>(2001)는 하와이를, <Questa Bossa Mia>(2002)는 이탈리아를, <Dans Mon Ile>(2003)은 프랑스를, <Naima>(2004)는 아프리카와 아랍의 음악을 보사노바와 결합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발매된 이번 앨범은 바로 그 연장 선상에서 미국의 대중 음악 정확하게 말하면 영국과 미국의 전통 및 대중 음악을 소재로 새로운 보사노바의 공간을 제시한다.
그런데 누구는 그녀가 <Dream>(1999)나 <Pretty World>(2000)에서 유명 재즈 스탠더드와 스티비 원더, 스팅 등의 팝 음악을 노래한 것을 말하며 이미 팝 음악을 보사노바로 노래하지 않았냐 의문을 제기할 지 모른다. 사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다소 그 성격이 다르다. 즉, 이전 앨범에서 팝 음악을 보사노바로 노래한 것은 유명한 이들 노래들이 보사노바 리듬과 만나 새로운 대중적 부드러움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영미 음악과 브라질 음악이 문화적인 관점에서 만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앨범엔 카펜터즈의 노래로 유명한 “Jambalaya”를 시작으로 “Saliance”, “Danny Boy”, “She Wore A Yellow Ribbon”같은 전통곡, 윌리 넬슨의 포크 성향의 곡 “Crazy”, 비틀즈의 “I’ve Just Seen A Face”, 그리고 존 덴버의 컨트리곡 “Take Me Home Country Road”등 영미 대중 음악 가운데 영국과 미국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는 음악이 보사노바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단지 대중성의 관점에서 보았다면 다른 음악들이 선곡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이 앨범은 한 음악 문화와 다른 음악 문화의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총 13곡을 듣는 동안 당신은 보사노바 음악이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드는 곡들을 대거 만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살고 있는 만큼 미국 문화가 다양한 세계 문화의 흡수를 통해 만들어 졌음을 말하려는 듯 미국적 색채를 넘는 유럽의 향취 또한 느끼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Stay A Little Longer Stay All Night”같은 곡은 보사노바 전에 집시 재즈적인 색채가 우선적으로 드러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Saliance”는 폴카의 향취가 물씬 풍겨난다. 그리고 “Gentle On My Mind”, “My Boy”같은 곡은 포크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이처럼 리사 오노의 음악을 규정짓는 보사노바를 비롯한 브라질 음악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녀가 단순히 보사노바 리듬을 무작정 모든 곡에 적용하려 하기 보다 원곡의 음악적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은 브라질 적인 동시에 영미 대중 음악적인 면을 띈다. 아마도 이러한 리사 오노의 의도는 싱글로 선보인다고 하는 “Take Me Home Country Road”에서 정점에 달한다. 존 덴버가 남긴 목가적이고 평온한 시골길의 정서를 촉촉하고 싱그러운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그녀는 보사노바와 미국의 컨트리적 감수성 모두를 절묘하게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시키는데 성공했다.
- 리사 오노와 함께 낯선 공간 속으로
앨범의 내용이 이렇기에 그저 편안한 흔들림 속에서 진행되는 보사노바 리듬과 달콤한 멜로디를 기대한 당신이라면 그 느낌이 생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사 오노는 결코 자신의 과거와 완전한 단절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만의 대중적인 매력은 이번 앨범에서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예로 내가 직접 언급한 곡들 외의 곡들에 집중해보라. 바로 당신이 기대하던 분위기의 곡들이 아니던가? 이런 기본 리사 오노의 특징을 간직한 곡들 속에 새로운 느낌의 곡들을 함께 듣는 다면 감상 자체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을 뿐더러 브라질 음악과 영미 대중 음악이 만나 만들어 낸 새로운 공간에도 쉽게 적응되리라 생각한다.
여름이면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꿈꾸곤 한다.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다른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낯선 곳으로 향하는 것은 분명 가슴 뛰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짧은 모험조차 할 수 없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가? 만약 당신이 그 경우에 속한다면 리사 오노가 제시하는 색다른 공간을 상상한다면 직접 떠나는 것 못지 않는 새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어디론가 떠날 때 리사 오노가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