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 이상임을 보여준 만남
웨스 몽고메리의 스타일을 계승한 기타 연주와 탁월한 보컬 실력을 겸비했으며 무대에 설 때마다 특유의 빤짝이 옷을 입고 등장하여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질까지 발휘 하는 조지 벤슨,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하는, 그래서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들을 경이의 세계로 이끌곤 하는 알 자로.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은 대중적인 재즈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더욱이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재즈가 퓨전 재즈로 분류되는 만큼 재즈 외에 R&B 보컬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재즈 외에 R&B 부분에서도 그래미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편 이들의 음악은 자신들만의 무엇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통하는 면이 있다. 비단 두 사람의 음악 모두가 퓨전 재즈에 속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히 사운드의 외양을 넘어 정서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니까 똑 같은 감상자를 대상으로 한 음악이랄까?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음악을 동시에 좋아하는) 많은 감상자들은 이들이 만나서 함께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수많은 만남이 가능한 재즈 계에서 이 두 사람이 함께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1970년대 중반 LA의 한 호텔에서 있었던 알 자로의 공연장에서 잠깐 얼굴을 스친 후 블루 노트 클럽에서 짧은 공연을 한 것, 1990년 어쩌면 이 두 사람의 보컬의 모범이라 할 수 있을 존 헨드릭스의 <Freddie Freeloader>앨범에서 두 곡을 함께 참여한 것이 전부다. 사실 각자 솔로로서 많은 인기를 얻고 또 그만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만큼 함께 자리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으리라. 과거 폴 데스몬드와 모던 재즈 퀄텟이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하기까지도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얼마 전에 함께 한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도 교감이 형성된 후 수년이 지난 후에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지 않은가? 한편 여기에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들이 일종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었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되겠다.
2.
그런데 두 사람의 첫 만남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가능할까?”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랬으면……”하고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바로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이번 앨범 <Givin’ It Up>이 그 결과물이다. 그런데 사실 유명한 연주자나 보컬들이 만나 앨범을 녹음한다고 해서 그 앨범이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개별 연주자들의 상충되는 개성이 전체 완성도를 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 더하기 하나가 전무(全無)가 되었던 경우는 이미 많이 있었다. 많은 거장들의 만남이 기대만큼 실망을 안겨주며 재즈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이번 조지 벤슨과 알 자로의 만남 역시 감상 전에 큰 기대만큼 불안도 많았다. 특히 조지 벤슨의 보컬과 알 자로의 보컬 모두 매력적이지만 그래도 이 두 개성적 보컬이 만나면 서로 섞이지 못하고 불완전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미 당신도 느꼈겠지만 이 앨범에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음악이 담겨 있다. 번잡스러운 느낌, 서로의 개성에 사운드의견고함이 무너진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서로의 장점을 교환하고 또 공유하며 연주하고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Breezin’”과 “Mournin’”이다. 각각 조지 벤슨과 알 자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두 곡은 앨범에서 주인이 바뀌어 노래되거나 연주되었다. 즉, 알 자로가 가사를 붙여 “Breezin’”을 노래하고, 조지 벤슨이 자신의 기타로 “Mournin’”을 연주한 것이다. 이렇게 대표 곡을 바꾸어 연주하고 노래한 것은 서로에게 양보하고 또 서로를 이해한다는 두 사람의 공유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 이 두 곡은 어느 누구의 개성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기 전에 누구의 곡이라 할 것 없이 두 사람의 개성이 부드럽게 잘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와 공유의 분위기는 앨범 전체에 기조가 되어 흐르고 있다. 실제 두 사람은 상대를 위해 반주나 코러스를 담당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3.
조지 벤슨과 알 자로의 만남은 적어도 올 해의 이벤트 가운데 하나라 할만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앨범은 둘의 만남만큼 여러 면에서 화려하다. 먼저 수록 곡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채롭다. 이번 앨범을 위한 두 사람의 곡 외에도 Seals & Craft의 “Summer Breeze”, 최근 존 레전드 목소리로 큰 인기를 얻었던 “Ordinary People”, 역시 폴 영의 노래로 잘 알려진 “Every Time You Go”등 팝의 인기 곡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Tutu”, “Four”등이 연주되고 노래되었다. 모두 흥미를 유발하는 선곡들이다. 익숙한 팝 음악은 팝 음악대로 두 사람에 의해 새롭게 바뀌었고 연주 음악으로 익숙한 곡들은 멋진 보컬이 빛나는 곡으로 탈바꿈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나지 않고 둥근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두 사람의 조화는 실로 대단하다.
한편 여기에 앨범에 참여한 게스트의 면모도 쟁쟁하다. 색소폰 연주자 마리온 미도우가 “Ordinary Day”에, 스탠리 클락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Four”에 그리고 마커스 밀러가 “Resurrection Blues”라고 새롭게 가사가 붙은 자신의 자작곡 “Tutu”에,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가 “Let It Rain”에 참여하여 사운드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그리고 매카트니가 샘 쿡의 히트 곡“Bring It Home To Me”를 함께 노래했으며 네오 소울의 디바 질 스콧이 빌리 할리데이의 “God Bless The Child”를 함께 노래했다.
물론 이 정도만 보아도 앨범은 상당히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앨범의 화려한 외양이 아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 화려한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낸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앨범의 만족도는 대단하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그 이상임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지 벤슨과 알 자로의 만남은 단순한 우정의 과시를 넘는 플러스 알파의 쾌감을 선사한다.
4.
한편 이 앨범은 이들에게도 일종의 전환점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최근 이 두 사람의 솔로 앨범들은 음악적으로 다소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개인적인 평가일 수 있지만 조지 벤슨은 지난 앨범에서 아예 R&B 보컬로 전향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즈에서 멀리 떨어진 동시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따라서 이 만남이 서로에게 음악적 자극, 새로운 의욕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말하자면 윈윈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이 앨범을 듣고 나니 이 두 사람의 노래와 연주를 공연으로 직접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마 당신고 감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