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cha Bottom Dollar – The Puppini Sisters (Universal 2006)

과거의 낭만을 재현하고 오늘을 추억하게 만드는 앨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참 바쁘다. 시간에 쫓기듯 숨가쁘게 움직여야 한다. 이러한 우리 삶에 맞추어 최신과 첨단 혹은 미래형이라 포장된 각종 디지털 기기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사람의 삶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이런 기기들이 나올수록 어째 우리 삶은 더욱 빡빡해 지는 것 같다. 여전히 효율 중심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바삐 움직여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 과거를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속도와 진보가 오늘의 윤리가 되어갈수록 요즈음은 레트로(Retro) 스타일이라 불리는 복고적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시대를 추억하며 지금보다는 그 때가 더 따뜻했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그 시절의 물건, 문화를 탐닉한다. 로보트 태권 브이 같은 지나간 시대의 만화와 장난감, 60,70년대의 각종 생활 용품 등에서 위안을 찾는다. 인사동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좋은 예가 아닐지.

그런데 무조건 과거에 집착하기만 한다면 이것은 다소 ‘촌’스러운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또 아무리 애를 써도 지나간 시대를 복원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지나간 것들이 주는 따스함을 현재에 새로이 이입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문화를 변용하여 오늘의 문화로 새로이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이것을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음악에서도 단지 흘러간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오래된 듯한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가 많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공 트리오 퍼피니 시스터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마르첼로 퍼피니와 두 명의 영국인 케이트 멀린과 스테파니 오브라이언으로 2004년에 결성된 이 여성 3인조 보컬 그룹은 1930,40년대의 보컬 하모니 팝을 현재에 되돌려 놓고자 한다. 이들이 함께하게 된 것은 리더인 마르첼로 퍼피니가 우연히 프랑스의 실뱅 쇼메 감독이 2003년에 만든 만화영화 <Les Triplettes de Belleville 벨빌의 삼인용 자전거>를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영화에는 1940년대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여성 그룹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이 그룹의 아름다운 하모니, 그리고 영화 전반에 표현된 40년대의 패션에 반했다. 그래서 곧바로 그녀가 재즈를 공부하기 위해 다니고 있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Of Music)의 친구 두 명을 모았는데 그들이 바로 케이트 멀린스와 스테파니 오브라이언이었다. 이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재즈를 좋아했으며 또한 개인적으로 카바레에서 노래하거나 스윙 밴드 등에서 노래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내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시대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기대 이상으로 이들은 영국 내에서 어려움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결성 하자마자 각종 클럽과 무대에서 공연을 의뢰해 왔으며 각종 TV 쇼 프로그램에서도 그녀들을 찾았다. 그 가운데 제이미 컬럼처럼 성공을 가져다 줄 재능 있는 신인을 찾고 있던 버브 레이블의 관계자를 만나게 되었었는데 그 앞에서 이들은 30,40년대의 고전을 노래하는 대신 70년대 여성 록 스타 케이트 부쉬의 대표곡‘Wuthering Heights’을 특유의 레트로 스타일로 바꾸어 노래했다. 그래서 버브 레이블과 곧바로 계약하고 ‘Boogie Woogie Bugle Boy’를 비롯한 몇 장의 싱글 앨범에 이어 2006년 첫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Betcha Bottom Dollar>이다.

이 앨범은 일단 표지부터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꽃 무늬로 장식된 둥근 액자 틀에 붉은 립스틱에 30,40년대 스타일의 옷차림을 한 퍼피니 시스터의 모습을 보면 정말 이 앨범이 오래 전 앨범을 재 발매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실제 그런 생각이 이 앨범을 선택한 감상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경우 추억의 앨범이 아니라고 실망하지 않기 바란다. 충분히 추억을 자극하는 노래들을 들려주니까.

만화 영화에 나오는 1940년대 보컬 그룹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퍼피니 시스터즈는 1930,4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보컬 팝의 재현을 추구한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큰 인기를 얻었던 앤드류 시스터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시스터즈’로 그룹 이름에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실제 첫 번째 싱글 곡이었던‘Boogie Woogie Bugle Boy’나 ‘Bei Mir Bist Du Schoen’같은 곡은 앤드류 시스터즈가 노래해 큰 인기를 얻었던 곡들이다. 그 외 ‘Mr. Sandman’, ‘In The Mood’, ‘Jeepers Creepers’같은 곡들도 보컬 하모니 팝 시대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고전들이다. 또한 가벼이 스윙하는 재즈 리듬과 휘파람 등 군악대를 상상하게 만드는 밴드의 연주 또한 감상자를 기꺼이 과거의 낭만 속으로 이끈다.

그런데 나는 퍼피니 시스터즈를 단순히 오늘의 앤드류 시스터즈 정도로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이들이 흘러간 시대의 음악을 재현하기만을 바랬다면 지금 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정말 그랬다면 앤드류 시스터즈의‘짝퉁’ 그룹 정도로 대접 받으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한정된 노년층에게만 호응을 얻었을 것이다. 진정한 퍼피니 시스터즈의 매력은 앤드류 시스터즈의 재현에 있지 않다. 레트로 스타일이 과거 재현을 넘어 과거의 현대적 변용을 의미하듯이 퍼피니 시스터즈 또한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혼용한 자신들만의 청량한 음악을 추구한다. 이것은 앨범에 노래된 곡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전들 사이에 글로리아 게이너의 디스코 히트 곡 ‘I Will Survive’, 어쩌면 퍼피니 시스터즈에게 또 다른 음악적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은 혼성 보컬 그룹 맨하튼 트랜스퍼의 히트 곡 ‘Java Jive’, 언급했듯이 버브 레이블 관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케이트 부쉬의 히트곡 ‘Wuthering Heights’80년대 뉴 웨이브 팝 밴드 블론디의 히트곡 ‘Heart Of Glass’ 그리고 역시 80년대 인기를 얻었던 록 그룹 스미스의 ‘Panic’등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곡들이 자리잡고 잇는 것이다. 이들 곡들을 퍼피니 시스터즈는 특유의 아름다운 하모니와 경쾌한 리듬으로 과거에 위치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곡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감상자들의 관심을 이끄는 한편 그들에게 하모니 보컬 팝이 시대에 뒤처진 촌스러운 음악이 아니라 충분히 현재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그렇기에 2007년 U.S 재즈 차트 2위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골드 디스크의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 이들 곡들 외에도 퍼피니 시스터즈는 공연에서 다양한 팝, 록의 명곡들을 노래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그녀들의 노래에 많은 젊은 감상자들이 호응한다고 한다.

모든 것에는 존재한 시간만큼의 추억이 담겨 있다. 퍼피니 시스터즈의 음악은 바로 그 지난 시절의 추억, 이제는 아름다운 향수로 남아 있는 지난 날을 상기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재에 불러낸다. 하지만 그런 중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낸다. 상큼한 퍼피니 시스터즈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했던 오늘의 추억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감상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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