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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기본적으로 남성의 음악이다. 재즈사를 빛낸 수많은 명 연주자를 보라. 대부분 남자이지 않던가? 하지만 남성보다 여성이 더 빛을 발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보컬이다. 사실 재즈는 기악 중심 음악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서 보컬 분야는 재즈사에서 언제나 번 외로 언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제일 전면에 위치하는 분야는 바로 보컬이고 또 그 중 여성들이 제일 앞에 서곤 한다. 엘라 핏제랄드, 사라 본, 빌리 할리데이를 3대 디바로 추앙하고 있는 것도 보컬 분야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성 중심의 보컬은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실제 당신이 알고 있고 좋아하는 보컬을 생각해 보라. 여성 보컬들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새로 등장하는 신인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주를 이룬다.
그래도 최근 보컬 분야를 살펴보면 여전한 여성 보컬들의 위세 속에서 새로운 남성보컬들이 자기 존재를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특징적으로 이들은 모두 20세 초반에 등장했다. 제이미 컬럼, 마이클 부블레, 피터 신코티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러한데 이들은 재즈의 전통적인 측면에 현대의 팝적인 감각을 결합한 노래, 음악으로 젊은 감상자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것은 여성 보컬들의 음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남성 보컬들만의 특징이다. 아마도 여성 중심의 보컬 세계에서 자기 위치를 다지기 위해서는 이런 특별함이 필요했으리라.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남성 이런 대중적 측면의 강조는 이미 남성 재즈 보컬의 전형으로 불리는 프랑크 시나트라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실제 프랑크 시나트라는 재즈 보컬인 동시에 팝 보컬이기도 했다. 그리고 단순한 가수를 넘어 엔터테이너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도 요즈음 등장한 남성 보컬들의 음악에서 재즈보다 팝적인 면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약간의 아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사운드
그러나 두 번째 앨범 <Back In Town>으로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맷 더스크의 음악은 좀 다르다. 캐나다의 토론토 출신의 이 남성 보컬은 음악적 측면에서 본다면 요즈음 등장하는 남성 보컬들에 비해 복고적, 보수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글쎄. 마이클 부블레, 제이미 컬럼 등의 스타급 남성 보컬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서일까? 아무튼 맷 더스크는 멀리는 프랑크 시나트라로 대변되는 크루너-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하는 가수를 말한다-의 전통을 계승하는 보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히 맷 더스크가 프랑크 시나트라를 재현하는데 급급했다면 그 역시 평범한 어느 보컬 가운데 하나로 존재하다 사라지고 마는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맷 더스크는 프랑크 시나트라를 존중하면서도 다른 길을 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앨범에 수록된 “Learnin’ The Blues”, “As Time Goes By”, “The Best Is Yet To Come”등은 프랑크 시나트라가 자주 노래했던 곡들이다. 그러나 그는 이들 곡들을 노래함에 있어 “넬슨 리들이나 빌리 메이 등이 프랑크 시나트라를 위해 편곡했던 고전적인 편곡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익숙한 것의 상투적 재현으로 들리지 않는다. 사실 올 해 27세라면 단순히 재즈만 듣고 성장할 수 없는 법. 그 역시 재즈 외에 팝, 컨트리, 롹 등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고 따라서 그의 음악에는 이들 음악이 자양분으로 자리잡고 있음은 당연하다. 단지 다른 동시대의 인기 보컬들과 차이가 있다면 전통적 재즈와 다른 대중 음악적 요소의 성분비율이 다르다는 것일 뿐이다.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재즈 사운드 안에 롹, 팝, 라운지 음악적인 요소가 간간히 드러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앨범의 첫 곡 “Back In Town”을 들어보자. 마치 빅 밴드 음악의 고전 “Sing Sing Sing”을 연상시키는 드럼 연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보통의 재즈적 빅 밴드 스윙 사운드와는 다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듀크 엘링턴이나 카운트 베이시 등을 연상하기 보다는 롹앤롤과 빅 밴드 스윙을 결합한 음악을 들려주는 브라이언 세쳐와 그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그리고 이런 면이 이 곡을 보다 대중적인 곡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All About Me”같은 경우는 대중적인 팝 음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이 곡을 노래하는 맷 더스크의 창법은 여느 팝 가수들과는 다르지만 살짝 양념처럼 가미된 프로그래밍 사운드는 이 곡에 현재적인 성격을 더 강화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아예 라틴 풍의 라운지 팝을 연상시키는 보너스 트랙 “History Repeating”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한편 이렇게 사운드나 리듬에서 현대적인 감각을 보이는 곡들 외에도 앨범의 수록곡들은 재즈의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보다 대중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시 한번 유사한 예를 든다면 프랑크 시나트라에서 출발하여 보다 대중적인 성향의 노래를 불렀던 딘 마틴을 연상시키곤 한다.
- 삶의 밝은 측면을 노래하다
맷 더스크는 이번 앨범에서 거대한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브라스 빅 밴드를 모두 기용했다. 이 두 거대 편성의 사용은 그가 의도했을 음악적 정서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보다 흥겨운 분위기를 위해서는 빅 밴드를 보다 서정적이거나 낭만적인 분위기를 위해서는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빅 밴드 사운드의 흥겨움은 이미 언급한 앨범의 첫 곡이나 “Who’s Got The Action”같은 곡을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낭만은 “A Million Kisses Late”나 빈스 멘도사가 편곡한 “April Moon”등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편곡, 편성의 기용과 상관없이 앨범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긍정과 여유다. 모든 곡에서 맷 더스크의 노래는 언제나 삶의 낭만과 여유를 향한다. 설령 느린 템포의 곡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혼돈의 시기를 겪고 새로이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한 사람의 편안함이 있다. 어찌 보면 27세의 젊은이가 느낀 감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성숙하지 않은가 싶기도 할 넉넉함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재즈는 종종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감상자들에게 실제 이상의 경험을 한 것 같은 환상을 불어넣어주곤 하지 않던가?
음악적인 충격? 튀는 면모? 이런 관점에서 맷 더스크를 바라본다면 분명 그는 동시대의 다른 젊은 보컬들에 비해 느낌이 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서적인 측면과 음악의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꾸준히 우리가 즐겨 듣게 될 보컬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