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 아시아 & 호주 투어 콘서트

* 나윤선의 <아시아 & 호주 투어 콘서트 2006> 서울 공연 리플릿에 수록된 해설 글이다.

내가 나윤선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직접 그녀를 알게 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파리에서 공부를 마치고 전문 재즈 보컬로서 조용히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 나 또한 파리에서 체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재즈를 좋아하는 지라 이런저런 미지의 앨범들에 관심을 두며 없는 살림에 음반을 구입하던 차에 프랑스의 베이스 연주자 자끄 비달(Jacques Vidal)의 앨범 <Ramblin’>(Shai 1999)앨범에서 “Youn Sun Nah윤선 나”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름의 주인을 중국인으로 생각했다. 앨범을 듣고 나서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왜냐하면 외지에서 한국 재즈인을 만난다는 것은 당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에 유달리 많이 있는 중국인 가운데 한 사람이 그 보컬의 주인공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도 이름이 “나 윤선”이 아닌 “윤 선나”라는 이름을 지닌. 정작 내가 나윤선을 알게 된 것은 귀국하고 난 후의 한 공연장에서였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퀸텟 멤버들과 대학로의 재즈 공연장에 찾았다가 나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당시는 그저 지나가는 단순한 지나침에 불과했지만 여차한 이유로 그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어오고 있다.

내가 나윤선과의 인연을 구차하게 서술하는 이유는 그녀와 나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인식을 당신에게 심어주기 위함은 아니다. 그보다는 재즈 보컬로서 그녀가 이리 큰 존재가 되리라는 것을 나 역시 상상하지 못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어떻게 그녀가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에 매 공연마다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이해되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의 음악을 들어보면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반대로 전존재를 집중해서 음악에 귀를 기울일 때 무엇인가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음악은 앨범을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대중적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혹시 그녀가 프랑스에서 혼자 공부하고 재즈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소개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그녀의 인지도를 높였고 이후 일련의 방송과 언론의 극찬, 그리고 지난해 문화관광부로부터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면서 하나의 신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사실 그녀가 프랑스에서 재즈 보컬로 성장한 과정은 상당한 흥미를 유발할만하다. 한국에서 대학시절 프랑스 대사관 주최 샹송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하고 또 <지하철 1호선>같은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한국을 떠날 때까지 정식적인 음악 교육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대학 전공은 불어불문학이었다. 이것이 평범한 회사원 출신의 그녀를 프랑스로 향하게 했을 지는 몰라도 프랑스에서 그녀는 음악 분야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을 정도로 용기 외에는 아무것도 객관적으로 그녀를 증명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프랑스의 최고 교육과정을 거치고 현지 연주자들이 함께 활동을 제의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의 재즈계에는 나윤선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런 그녀의 음악적 인생 역정을 접하게 되면 누구라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또 그녀의 음악에서 무엇인가 다른 삶의 깊이를 느끼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녀의 대중적 인기는 단지 그녀의 독특한 과거에 의존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견고하다. 게다가 해외에서의 호응은 우리의 기대 이상이다. 그러니 분명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 그녀만의 특별한 마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마법이란 무엇일까?

나는 가끔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는데 종종 쾌활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그녀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녀는 상당히 다소곳한 여성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무대에 설 때면 평소의 그녀와는 다른 과감한 자기 표현을 두려워하지 않는 카리스마를 지닌 열정적인 모습으로 변신한다. 나는 바로 여기에 그녀만의 대중적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을 생각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과거 많은 비밥 연주자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연주 속에서 대중들의 외면을 받아야 했던 딜레마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자기 중심의 노래는 현란한 기교 이전에 음악적 진정성에 있다. 분명 그녀의 음악은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의 음악 경험에 기대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음악은 재즈의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또 그녀만의 새로운 공간에 머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식 재즈가 가장 재즈적인 것이라는 선입견을 넘어 자신이 가장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한 결과 나온 음악이 바로 그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녀의 음악을 대하는 것이 보다 빠른 음악에의 몰입 방법일 지도 모른다.

이처럼 낯선 지점에 놓인 그녀의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처음에는 그 낯선 느낌에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녀의 노래, 그녀의 스캣, 그리고 그녀와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의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낯섦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임을. 그녀의 음악이 지닌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미지의 영역에서 출발하여 모르는 사이에 감상자에게 다가오는 음악, 감상자로 하여금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세계에 몰입하게 만드는 음악. 그것이 바로 나윤선의 음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관객을 따라 음악, 사운드를 바꾸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재즈와 거리 있는 사람들이 그녀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설령 이들을 위해 모두 쉽게 이해할만한 곡을 선택할 지라도 그녀만의 방식으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올 해 청와대 신년 시무식에 초대되어 재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대통령 이하 정부 각료들을 앞에 두고 노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뱃노래를 선택하여 노래했지만 분명 그녀의 노래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의 그 황망한 청자들의 모습은 이내 감동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대중적 인기와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진정성에 의존하여 노래하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러한 그녀만의 음악적 진정성은 해외에서도 통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상당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 유수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그녀는 지난 2월 일본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의 국제적인 재즈 페스티벌인 자바 재즈 페스티벌 참가를 비롯한 총 7개국 17개 도시로 이어진 <아시아 & 호주 투어 콘서트 2006>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연들은 모두 기대 이상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음악이 지닌 진정성이 세계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실제 그녀는 몇 해전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프랑스에서 공연을 할 때 그녀의 1집 수록곡이자 우리의 가곡인 “초우”를 종종 한국어로 노래하는데 이렇게 한국어로 노래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반응은 나 역시 직접 경험했었다. 2년 전 나는 취재차 다시 파리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재즈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모두 당시 새로이 발매되었던 나윤선의 앨범 <So I Am>(Sony 2004)을 언급하며 신비롭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보컬을 만났다고 극찬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볼 공연은 그녀의 대장정 <아시아 & 호주 투어 콘서트 2006>의 마지막 일정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한국 감상자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세계의 재즈 감상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가 해외에서 어떤 형식의 공연을 펼치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그녀가 올 가을 발매를 계획하고 있는 우리 가요를 재즈로 노래한 색다른 앨범 제작에 앞서 그 동안 그녀의 음악을 새로이 정리하는 의미를 띄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의 일관된 흐름 안에서 미묘한 변화를 보였던 그녀의 내적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이번 공연을 관람할 때는 그녀의 보컬 외에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퀸텟의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나윤선이라는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퀸텟은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하면서 연주자와 악기의 합을 넘어선 신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단지 나윤선의 노래를 반주한다는 것도 아니요, 곡의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솔로 연주를 통해서도 아니다. 반주와 솔로 그리고 나윤선과의 교감 등 모든 음악적 현실화 과정 속에서 모든 멤버들이 공유하고 있는 책임감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연주자들 스스로도 음악적 진정성으로 나윤선과 함께 감상자에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다가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이 만들어낸 화학작용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윤선은 이 퀸텟 멤버들에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윤선의 노래 외에도 퀸텟의 연주에 관심을 갖고 공연을 감상한다면 보컬에만 집중했을 때와는 다른 복합적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어둠 속에서 시작될 그녀와 퀸텟의 공연이 만들어 내는 세계로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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