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접할 수 없는 개성을 지닌 보컬 니나 시몬
흔히 재즈 보컬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3대 디바라는 호칭으로 엘라 핏제랄드, 사라 본, 빌리 할리데이를 거론하곤 한다. 이것은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여러 백인 보컬들이 득세하고 있는 요즈음까지도 거역할 수 없는 명제로 거대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이 세 명의 여 가수들이 뛰어난 실력과 재즈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경배는 다른 뛰어난 실력자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 그늘에 가려진 실력자가 바로 니나 시몬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 니나 시몬이 뛰어난 가수로서 기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현재의 평가 이상의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인물이다. 실제 그녀의 풍부한 저음-그녀의 목소리는 여성의 음역가운데 가장 낮은 콘트랄토의 영역에 속한다-음에서 나오는 슬픔이 담긴 노래를 듣다 보면 다른 여느 가수들과 다른 확실한 자기 색과 실력을 지녔음을 누구나 느끼게 된다. 게다가 그녀는 마일스 데이비스도 졸업했던 줄리어드 스쿨에서 정식으로 클래식 교육을 받아 직접 노래를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할 줄 알았던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런 클래식 교육을 받던 중 그녀는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학교의 장학생 선발에서 탈락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음악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래서 학비를 직접 벌기 위해 모타운의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녀에게 대중 가수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었다. 실제 그녀가 유니스 캐틀린 웨이먼(Eunice Kathleen Waymon)이라는 본명 대신 니나 시몬 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 것도 이렇게 그녀의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하면서부터였다. (이 니나 시몬이란 이름은 그녀가 키우던 애완 동물의 이름이었던Nina와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배우 시몬느 시뇨레 Simone Signoret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이러한 니나 시몬의 이력은 그녀를 단순히 재즈가수의 영역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반적인 스탠더드 재즈 곡들 외에 보다 흑인들의 정서가 잘 드러난 소울, 블루스 성향의 곡들을 비롯하여 영미 팝과 프랑스 샹송 등의 다양한 성향의 곡들을 노래했다. 한편 직접 체험한 인종 차별의 회한은 그녀에게 흑인의 자유를 향한 외침의 성격이 강한 노래, 여성의 자존을 부르짖는 노래 등을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노래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반대로 이어졌고 나아가 아예 미국을 떠나 리베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 세계를 방랑하는 삶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가 사망한 곳도 미국이 아닌 프랑스였다.) 사족일지 모르지만 뤽 베송 감독의 영화 “Nikita”의 미국판 영화였던 “Point Of No Return”에서 여 주인공 이름이 니나였고 니나 시몬의 음악이 배경으로 등장한 것도 그녀의 이런 전사적 이미지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니나 시몬 블루스를 노래하다
아무튼 이러한 니나 시몬의 복합적인 이미지는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Nina Simone Sings The Blues>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니나 시몬이 RCA 레코드에서 처음으로 발매한 이 앨범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 그녀의 음악이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자신의 색을 확립했던 시기의 시작을 알렸던 앨범이다. 그런데 앨범의 화두가 블루스였다는 것이 특이하게 다가온다. 사실 1950년대 후반 프리 재즈가 출현한 이후 소울 펑키 재즈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점차 대중으로부터 소외를 받기 시작했다. 대신 롹앤롤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니나 시몬이 블루스를 노래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보다 대중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즉, 재즈보다는 보다 단순한 블루스가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실제 앨범을 들어보면 대부분의 곡들이 가장 단순한 블루스 형식으로 짧게 노래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이전부터 니나 시몬의 노래에서는 블루스적인 맛이 언제나 느껴졌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더 엄밀히 들어보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온전한 블루스 곡들이 아니다. 블루스의 단순한 클리세(Cliché)가 사용된 재즈라고나 할까? 특히 시카고 블루스의 느낌이 앨범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블루스의 상투적인 양식들이 확연하게 사용되었다고 해서 우리는 이 앨범을 그저 그런 앨범으로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당신 스스로 앨범을 들어보면 실감하겠지만 이런 단순한 형식의 사운드에서도 니나 시몬만의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는 여전히 우리를 감동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니나 시몬의 평생의 베스트 앨범 가운데 하나로 자신 있게 언급한다.
니나 시몬의 모든 것을 만나게 되는 최고의 앨범
보통 우리는 블루스는 재즈에 비해 보다 거칠고 원초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니나 시몬은 그런 거침과 원초적인 면을 넘어선 그녀만의 부드러움, 달콤함을 노래한다. 분명 블루스적인 사운드를 배경으로 노래가 진행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다분히 낭만적이다. 이것은 앨범의 첫 곡 “Do I Move”부터 쉽게 감지된다. 그리고 “In The Dark”를 거쳐 “I Want A Little Sugar In My Bowl”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분명 블루스적인 곡들이지만 동시에 대중적이고 또 이전 니나 시몬의 매력이 한 차원 더 심화된 형태, 심지어 육감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곡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앨범의 백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앨범의 오리지널 라이너 노트에도 특별히 언급되기도 한 “My Man’s Gone Now”다. 이 곡은 니나 시몬이 오랜 녹음으로 인해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녹음되었다는데 오히려 그런 피곤이 니나 시몬 특유의 내지르면서도 한숨을 쉬는 듯한 처연의 창법을 극대화시켰다 싶을 정도로 가슴을 저미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이 곡은 블루스가 아닌 일반적인 재즈 스탠더드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블루스적이라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니나 시몬만의 창법에 내재된 한이 어린 여성적 슬픔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 니나 시몬의 이번 앨범은 여러 다양한 연주자들이 그녀의 뒤에 서 있다. 예를 들면 후에 퓨전 재즈 기타의 대표 주자로 성장하게 될 기타 연주자 에릭 게일, 펑키 드럼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가 될 버나드 퍼디 같은 인물이 그녀를 반주한다. 그 외에도 여러 연주자들이 그녀의 노래를 꾸미고 있는데 사실 이런 대규모 밴드 편성은 니나 시몬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감상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니나 시몬은 자신의 피아노 반주가 중심이 된 간편한 편성에서 최상의 노래를 들려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로서는 대규모라 할 수 있는 밴드 편성이 다소 의외인데 이런 확대된 편성을 통해 그녀는 블루스의 클리세를 사용하면서도 과감한 편곡 솜씨를 드러낸다. 그 좋은 예가 아마도 애니멀스의 히트 곡으로 유명한 “House Of Rising Sun”이 아닐까? 니나 시몬이라면 누구보다 느린 템포로 노래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반대로 그녀는 이 곡을 미디엄 템포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니나 시몬은 그 특유의 깊은 슬픔을 표현한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니나 시몬의 대중적 인기는 7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인기는 재즈 가수로서라기 보다는 블루스, 가스펠, 소울을 자연스레 소화하는 팔방미인형 가수로서였다. 그리고 음악의 시대적 변천에 따라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결국 2003년 4월 21일 완전히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즈사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그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최근 니나 시몬의 앨범들이 다양한 형태의 시리즈나 박스세트로 재발매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앨범들은 모두 니나 시몬의 한 시기를 온전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니나 시몬의 음악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앨범을 말하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 앨범을 우선적으로 추천한다. 그만큼 이 앨범은 니나 시몬의 음악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좋은 안내자인 동시에 그녀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