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ke – Trio Toykeat (Blue Note 2005)

트리오 토이킷의 장점이 살아 있는 앨범

우리가 트리오 토이킷과 이들의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과연 무엇일까? 통통 튀는 것 같은 싱그러운 활력으로 가득한 리듬, 클래식적인 면을 기반으로 부드러운 윤기가 느껴지는 멜로디, 그리고 이 리듬과 멜로디가 만들어 내는 시원 깔끔하고 우아함이 돋보이는 전체 사운드가 아마도 이들의 음악을 규정짓는 설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이것은 일반적인 한국의 재즈 애호가들이 재즈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상충되는 것이었다. 실제 약 10년 전 이들의 앨범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광고나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당시의 재즈 애호가들은 이들의 음악을 롹 같은 연주 음악으로 정의했던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데 장르적 규정이란 사실 음악을 한정 지을 수 없는 것 아니던가? 음악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 장르의 개념이 아니던가? 최소한 10년 전 일반적인 재즈 감상자들은 트리오 토이킷의 음악을 재즈로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주저함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은 어쨌건 한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몇 차례 내한 공연을 가질 정도에 이르렀다. 올 해 2005년에도 이들은 두 번째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멋진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 많은 유럽의 재즈 연주자들 가운데 트리오 토이킷만큼 대중적인 성공을 거든 경우는 흔하지 않다. 

<High Standards>의 아쉬움을 딛고

트리오 토이킷의 앨범은 국내에 소개되는 대로 모두 큰 인기를 얻었다. 그것은 이미 위에 언급한 대로 이들만이 지닌 유럽적이고 세계적인 사운드의 상쾌한 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3년에 발표했던 앨범 <High Standards>는 의욕만큼 큰 만족을 주는 앨범은 아니었다. 롹과 재즈, 자작곡으로 채워진 이 앨범은 무엇인가 새롭게 자신들의 사운드를 진행시켜야겠다는 트리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의지가 너무 강했던 듯 익숙한 테마들에도 불구하고 다소 트리오 토이킷에 맞지 않는 느낌을 주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긴장관계를 형성하였던 이전 사운드와 달리 너무나도 강력한 힘에만 의존하는 사운드를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들은 힘과 사운드의 규모로 감상자를 제압하려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 나는 변화의 기치에 이들의 장점이 희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이 선보인 <Wake>는 이런 우려를 단번에 씻어낸다. 마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세 멤버가 만들어 내는 사운드는 밝고 경쾌하고 산뜻하다. 청명한 가을 하늘의 느낌이랄까? 이것은 앨범의 첫 곡부터 그대로 감지된다. 폭넓고 여유 있는 공간감 속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Perfect Make Out Music”에서부터 감지된다. 약간의 극적인 비장미가 느껴지는 멜로디에 반복적인 왼손 연주로 방점을 찍어 과도한 낭만주의로 빠지는 것을 피하고 있는 이 곡은 힘이 아니라 강약과 완급의 조절로 사운드가 구축되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누어 생각하면 그다지 복잡한 곡이 아님에도 아기자기한 극적 구성을 지닌 것처럼 다가온다. 이런 특성은 앨범의 수록 곡 전체에서 발견된다. 앨범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Final Fantasy”도 마찬가지다. 이 곡은 강력한 타건과 속주를 들려주는 이로 란탈라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클래식적인 느낌의 테마를 정교한 시계 태엽의 물림처럼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멤버들의 호흡과 에너지가 돋보이는데 그렇다고 가청(可聽) 공간을 빡빡하게 메우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강력한 힘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상큼한 충격으로 느껴질 뿐이다. 한편 “End Of The First Set”이나 “Beba”는 트리오 토이킷의 가장 전형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곡이다. 밝음의 정서로 가득 채운 이 곡들은 터질 것 같은 풋풋함과 발랄함이 매력적인데 성세함과 강력함의 조화와 완급의 조절로 아찔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었던 초창기 연주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자신들의 장점을 자각하다.

이번 앨범에도 자작곡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곡을 두 곡 연주했다. 하나는 케니 베이런이 스탄 겟츠와 즐겨 연주하곤 했던 “Voyage”고 다른 하나는 듀크 엘링턴의 “In A Sentimental Mood”다 이 두 곡의 연주를 들으면 지난 <High Standards>와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Voyage”의 경우 마치 변주처럼 조금씩 변화하며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테마를 소위 핀란드 식 탱고 리듬 위에 얹혔다. “In A Sentimental Mood”는 원곡의 낭만성을 트리오 토이킷 식으로 새로이 바꾸어 연주하고 있다. 만약 <High Standards>앨범에 이 곡이 수록되었다면 강력한 타건이 만들어내는 두터운 음으로 연주가 채워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는 맑고 깨끗한 피아노 소리로 낭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모두 텍스트 자체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감수성, 해석 방식을 올곧게 적용한 탓이다. 그 감수성, 해석 방식이란 다름아닌 클래식적인 섬세함과 멜로디컬한 면을 유지하면서 교차하는 멤버들의 인터플레이, 그리고 자연스러운 강약의 변화다. 그런데 이런 장점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이전 앨범에서도 이미 발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보다 장점을 더 극대화 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그만큼 트리오 토이킷이 자신들의 장점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고민했다는 증거다.

실제 이로 란탈라의 피아노 솔로를 들어보면 전통적인 스윙의 맛은 느끼기 힘들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정확한 박자감각으로 클래식을 연주하듯 한 음 한 음 짚어 내고 있을 뿐이다. 라미 에스켈리넨이 연주하는 드럼, 에릭 실카사리가 연주하는 베이스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스윙감보다는 정직하게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적합한 설명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강약의 조절과 변박의 적절한 활용을 통하여 거시적인 차원에서 흔들리는(Swing) 듯한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예를 들면 “You And Me”나 “Third Ball” 등에서 발견되는 분위기, 속도, 힘의 다채로운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일종의 서사적인 맛까지 풍기는 곡 안에서의 작은 변화들은 곡의 흐름에 색다른 리듬감을 부여한다. 모든 것이 뭉친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사운드의 질감 변화라고 할까? 그리고 이 질감은 낙관적이고 내일, 미래에 대한 긍정적 의지가 담긴 정서의 발현으로 이어진다. 마치 공익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영화의 행복한 시절 묘사에 어울릴 법한 정서인데 그래서 이 앨범을 감상하고 나면 누구나 머리 속이 산뜻하고 맑아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갑작스레 녹음이 잘 못된 것처럼 중간에서 끝나버리는 “Third Ball”의 당혹스러움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재치라고 하기엔 다소 과했다는 생각이다.)

이번 트리오 토이킷의 새 앨범에 담겨 있는 사운드를 설명하면서 다시 이들이 과거로 돌아갔다고 하면 트리오 토이킷의 발전을 무시하는 발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변화가 아무리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재즈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아야 좋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서명과도 같은 개성, 존재감이다. 감상자들은 표면적 스타일이 바뀐다 할 지라도 하나의 브랜드처럼 연주자의 정체성이 유지된 음악에 만족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이번 앨범은 과거로의 회귀 차원보다는 장점의 재인식, 재발견으로 보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 한국의 감상자들에게 폭넓은 호응을 얻게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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