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ith Jarrett의 솔로 앨범들

∗ 이 글은 2005년 앨범 의 발매에 즈음해 작성되었다.

키스 자렛은 현대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그가 현대 재즈의 거장으로 대접 받게 된 것은 다양하고 독창적인 시도, 그리고 음악성을 겸비한 대중성, 재즈의 다른 시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연주하는 진정성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메이저 레이블이 아닌 독립 레이블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보다 큰 평가를 받을만하다. 즉, 대중성이전에 음악성을 우선으로 생각한 음악을 먼저 만든 후에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지속하고 있는 그의 트리오 활동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이러한 높은 성과의 한 가운데는 무엇보다 오로지 피아노 한 대만으로 청중을 잊고 오로지 자신과 사투를 벌린 솔로 연주가 위치한다.

결정적 만남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과 함께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녹음했던 앨범 <Expectations>은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키스 자렛이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일 재즈 연주자로 성장할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콜럼비아 레코드사는 이 앨범의 성과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던 듯하다. 아니면 전통적인 재즈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새로운 방향으로 재즈를 전진시키려는 키스 자렛의 의도가 그다지 자사의 정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아무튼 특별한 이유 없이 콜럼비아 레코드는 키스 자렛을 포기하고 허비 행콕을 불러들였다. 앨범 한 장을 발표하고 그렇게 키스 자렛은 콜럼비아 레코드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키스 자렛에게 불행이 아닌 새로운 만남, 그것도 그의 앞으로의 음악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 만남은 다름 아닌 현대 재즈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ECM 레이블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와의 만남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키스 자렛과 맨프레드 아이허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주 재미있는 감상거리를 결코 보지 못했을 지 모른다.

ECM 레이블은 당시 칙 코리아, 말 왈드론 등의 미국 연주자들의 앨범으로 막 새로운 재즈의 경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맨프레드 아이허는 본인 스스로가 클래식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활동을 했을 정도로 음악에 정통한 인물로 당시 존 콜트레인을 중심으로 60년대 재즈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었던 임펄스 레이블의 재즈를 좋아하면서도 녹음의 품질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인물이었다. 아무튼 맨프레드 아이허는 키스 자렛에게 피아노 트리오 앨범을 한 장 녹음하자고 제의했다. 아마도 레이블의 첫 앨범이었던 말 왈드론의 트리오 앨범과 유사한 앨범을 머리 속에 그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키스 자렛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아이허에게 소로 앨범을 녹음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당시까지 솔로 앨범은 재즈계에서 성공한 유명 인들 중심으로 녹음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왜냐하면 리듬 섹션을 제거한 피아노 솔로 연주는 결국 빌 에반스의 경우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연주자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키스 자렛의 지명도가 여기에 필적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이허가 군말 없이 자렛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녹음은 1971년 키스 자렛이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의 일원으로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이루어졌다. 그 때 키스 자렛은 곡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만을 준비하고 오슬로의 아르네 벤딕센 스튜디오의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기존의 재즈 앨범에서 듣기 어려웠던 회화적이고 직관적인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그 연주는 어떤 완결된 무엇을 그린다기 보다는 자렛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길을 향한 서주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아무튼 이 첫 앨범은 유럽 클래식의 전통에 익숙한 유럽의 재즈 감상자들의 구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맨프레드 아이허도 이 뜻밖의 앨범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한 번으로 끝났을 수 있었던 아이허와 자렛의 동반 관계는 수 십 년을 이어갈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아이허는 연주자들과 앨범 단위로 계약을 한다. 대신 앨범마다 제작자로서 모든 지원과 음악적 관심을 보여 연주자를 잡는다.)

솔로 콘서트

이듬 해 맨프레드 아이허는 독일의 한 재즈 페스티벌에서 솔로로 공연을 할 수 있는지 키스 자렛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니까 솔로 공연에 대한 생각은 키스 자렛 본인이 아닌 맨프레드 아이허의 머리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솔로 공연이 오랜 시간 다양한 스타일들이 교차하는 연주를 들려주리라고는 맨프레드 아이허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키스 자렛은 무대에 올라가 지금까지 그가 체험한 모든 음악적 양식을 다 연결하고 분리시키는, 독창적이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펼쳐지는 피아노 솔로 연주를 들려주고 무대를 내려왔다. 이 공연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당시까지 이런 피아노 솔로 공연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폴 블레이가 그동안 스튜디오에서 유사한 연주를 펼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실제 어느 클럽에서 공연을 할 때에 키스 자렛이 관람을 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폴 블레이의 입장에선 사람들의 다소 악의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폴 블레이가 솔로 연주 하나를 마치고 났을 때 여기 키스 자렛이 왔다고 사회자가 외치자 그가 그냥 말 없이 클럽을 나갔다는 설이 있다. 말하자면 폴 블레이가 키스 자렛보다 먼저 솔로 연주를 시작했다는 것인데 설사 그럴지는 몰라도 그와 키스 자렛의 연주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폴 블레이의 연주는 키스 자렛보다 긴 연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어떤 상관이 있느냐고? 사실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약 한 시간 가량을 관객 앞에서 오로지 자신에만 집중해서 멜로디와 화성, 그리고 음악에 내재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이것은 무한한 상상력과 집중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지속 시키는 자렛의 힘이야 말로 그의 솔로 연주의 가장 큰 핵심이다.

그의 첫 번째 솔로 콘서트 앨범은 1973년 3월과 7월의 공연을 담은 <Solo Concert: Bremen & Rosanne>였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리고 역사적 명연이다. 재즈사의 한 사건이었다고 평가하는 <Köln Concert>는 1975년 1월에 녹음된 것으로 자렛의 솔로 콘서트 앨범 가운데 두 번째로 발매된 것이다. 여기서 혹자는 어째서 그렇다면 브레멘과 로잔 콘서트가 아닌 쾰른 콘서트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가? 의문을 제기할 지 모른다. 대중들이나 재즈 평자들이 쾰른 콘서트를 명반으로 꼽은 이유는 단지 그것이 장시간의 솔로 콘서트이기 때문에 꼽은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냉정하게 보아 쾰른 콘서트의 음악적 내용이 훨씬 더 탄탄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례없는 공연이라서 명반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브레멘과 로잔 콘서트야 말로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 활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시로서 석 장의 LP (현재는 두 장의 CD)에 담은 피아노 솔로 앨범이 발매된다는 것, 또 그 앨범을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과론 적일지는 몰라도 만약 이 브레멘과 로잔 콘서트가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쾰른 콘서트는 없었을 것이다.

쾰른 콘서트 앨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이 앨범은 명백하게 유지되는 그러나 너무나도 간단한 하나의 주제를 지니고 있다. 그 주제는 키스 자렛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연주를 시작한 뒤에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주제를 찾아내고 그는 그 주제를 도구로 삼아 다양한 음악 양식을 가로지르는 연주를 펼친다. 그 테마, 코드 두 개로 이루어진 그 보이지 않는 테마는 때로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다 이내 추락한 이카루스의 부질 없는 욕망을 그리듯 슬픈 발라드가 되고 때로는 경건한 가스펠이 되었다가 한 없이 아래로 침잠하는 인상주의적 음악이 되었다가 다시 형태를 잃고 공간에 흩뿌려지는 추상적 현대 음악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듯 완벽한 연결점을 구성하며 흐른다. 그래서 전 곡을 듣는 감상자는 마치 장편 대하 소설 하나를 독파한 것만 같은 가슴 벅참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어째서 감상자들은 그의 솔로 콘서트 연주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곡의 진행 속에서도 맥을 잃지 않는 자렛의 멜로디적 감각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만들어 내는 멜로디는 모두가 정교하게 작곡을 한 것처럼 가슴에 단번에 와 닿는다. 이것은 사실 솔로 연주 외의 다양한 편성의 연주에서도 쉽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멜로디적 감각이 그의 즉흥 자유 콘서트를 다른 프리 재즈 연주들과 구분 짓게 만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키스 자렛의 연주야 말로 순간적 감흥에 의해 음악 형식까지 결정되는 것이므로 완전한 프리 재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멜로디적 감각에 의해 그의 연주는 다른 프리 재즈 연주와 차별성을 획득한다. 실제 그는 프랑스의 재즈 평론가 알렉스 뒤틸과의 대담에서 “어떻게 프리 재즈 연주자들이 수 십 년간 프리 재즈 연주만 들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은 기본적인 부분 그러니까 멜로디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밝혔다.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1976년 일본의 5개 도시를 돌며 가졌던 <Sun Bear Concerts>일 것이다. 이 콘서트가 놀라운 것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고른 음악적 완성도이지만-이런 이유로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는 어느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전 콘서트를 박스에 담아 앨범화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 이 5개의 공연이 1976년 11월 5일부터 18일, 그러니까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로지 당시의 느낌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성을 만들어 나가는 힘겨운 콘서트를 2주간 5차례, 그것도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뛰어난 연주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스튜디오 녹음만 해도 연주자들은 하나의 마스터 테이크를 위해서 여러 차례 녹음을 했지 않은가? 아무튼 이 선 베어 콘서트 앨범은 지금까지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인간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나는 이 앨범을 1980년대 수입된 앨범으로 10장의 LP가 육중한 박스에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나는 그 박스에 얼마나 위대한 인간의 창조성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박스가 주는 엄숙한 무게감, 세상의 지혜가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육중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쾰른 콘서트를 듣기 전부터 이 박스 앨범을 욕망했다. 그 욕망은 바로 실현되지 못하고 CD 박스를 구입하는 것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박스 앨범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면 어쩌면 키스 자렛의 모든 앨범을 다 듣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키스 자렛은 이러한 솔로 연주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자렛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젊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젊었기에 그는 체력적으로 솔로 연주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었기에 다소 무모해 보이는 솔로 콘서트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젊었기에 음악의 궁극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고 그래서 솔로 콘서트를 할 수 있었다. 역시 프랑스의 재즈 평론가 알렉스 뒤틸과의 대담에서 자렛은 어떻게 그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오가며 솔로 연주를 할 수 있었는지 밝혔다.

“당시 내가 매우 젊고 솔로 콘서트에 저를 던질 정도로 음악에 미쳐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일을 했을 지 모르겠습니다. <Facing You>앨범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희미하게나마 곡의 일부분이 스케치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콘서트 연주에 대해서는 정말 대단했던 것은 솔로 콘서트를 기획했다는 그 사실 자체입니다. 일단 콘서트가 시작되면 문제는 과연 저 너머에는 무엇일 있을까를 알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발견해야 할 대부분의 것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리고 다른 콘서트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전에 발견했던 것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콘서트를 계속했습니다……문제는 내게 꼭 맞는 구조물을 창조해 냈을 때입니다. 저는 제가 만든 것을 다시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제 신선함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내가 했던 콘서트를 해체할 것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콘서트는 이전 콘서트에서 분리된 형식으로 진행됩니다……이를 위해서는 젊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적당히 무지해야 하거든요. 점 점 더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은지 알기 시작하면 전체적으로는 이로울지 몰라도 솔로 콘서트에는 그다지 이롭지 않습니다. 다행히 저는 지금까지 단 한 장의 솔로 콘서트 앨범도 무리하게 발표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앨범이 다 발매될 이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저의 최고의 콘서트는 아직까지 녹음되지 않았네요.”

다른 솔로 작품들

키스 자렛은 솔로 콘서트 외에 다른 솔로 앨범들을 많이 녹음했다. 그리고 그 앨범들은 각기 다른 자렛의 표현 욕구를 반영한다. 클라비코드로 기타의 현을 긁는 주법을 표현하고자 미묘한 시간 차를 두고 현을 짚어 냈던 <Book Of Ways>(1987), 독일의 오토베렌 사원에서 현장에서 익힌 최소한의 오르간에 대한 지식으로 거대한 공기의 울림을 만들었던 <Hymns/Spheres>(1976), 원래는 프랑스의 한 영화에 사용될 음악으로 연주를 하게 된 것이었는데 정작 사용되지 못한 <Staircase>(1977), 즉흥 연주도 자작곡도 아닌, 조지 그루지에프라는 작곡가의 곡을 연주했던 종교적 색채의 <Sacred Hymns>(1980), 솔로 콘서트 앨범이지만 표제 음악 형식으로 연주되었던 <Dark Intervals>(1988),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나 스탠더드 곡들을 조심스레 연주 했었던 <The Melody At Night With You>(1999) 등이 그 앨범들이다.

Radiance

키스 자렛 스스로 밝혔듯이 젊었기에 가능했던 솔로 콘서트 활동은 나이가 들면서 갈수록 그 회수가 적어졌다. 그리고 그를 시련에 빠지게 했던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인해 그는 아예 연주 활동을 접어야 했다. 그 사이 활동을 쉬기 전인 1995년 이태리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가졌던 솔로 콘서트를 담은 앨범 <La Scala>(1997)가 발매되어 그의 솔로 콘서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병상에서 일어난 이후 키스 자렛은 트리오 활동 외에 다른 프로젝트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것은 온전하지 못한 그의 체력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솔로 콘서트 연주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트리오 앨범을 통해서 강하게 드러나곤 했다. 실제로 2001년과 2002년에 연달아 발표했던 <Inside Out>과 <Always Let Me Go>는 트리오 형식의 연주였지만 자렛의 솔로 콘서트처럼 자유로운 변화가 있는 장시간의 연주를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건강에 대한 불안이 남아 있기에 게리 피콕, 잭 드조넷의 도움을 받으며 솔로 콘서트 식 연주를 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변형된 트리오 연주를 하게 된 데에는 1999년 일본에서 시도했던 두 번의 솔로 콘서트가 자렛에게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2005년 공식적으로 5년 만에 그의 솔로 콘서트 앨범이 발매가 된다. 녹음 상으로는 지난 1995년 이태리 밀라노의 라 스칼라 공연 이후 8년만의 콘서트 앨범이 되는 이번 앨범 <Radiance>는 그 동안 자렛이 해왔던 솔로 콘서트와는 다소 다른 형식의 솔로 연주를 담고 있다. 역시 지난 1999년의 실패를 생각하며 연재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적의 솔로 연주 양식을 적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양식이란 하나의 표제 하에 각기 다양한 길이의 솔로 연주 17곡이 모이는 것이었다. 한번에 모든 것을 장시간에 걸쳐 연주하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테마까지 그 자리에서 결정되는 완전한 즉흥 솔로 콘서트가 아니지 않는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모두 즉흥 연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러 조각으로 분리된 이 연주들이 즉흥 연주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표제 하에 모일 수 있는 것일까? 의외로 그것은 간단하다. 먼저 자유 즉흥 연주로 첫 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력이 발동하는 한도에서 그 연주를 결말 짓는다. 그리고 두 번째 연주는 다시 첫 번째 연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연주로 발전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다시 두 번째 연주에서 동기를 얻는다. 이런 식으로 연주는 진행되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것은 과거 장시간에 걸쳐 연주했던 솔로 콘서트와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콘서트에서도 다양한 음악 양식을 배경으로 한 연주의 변화는 바로 직전의 연주에서 출발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단지 이번 연주에서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명확하게 변화의 지점을 분리하고 여기에 몇 초의 휴지를 주었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당시의 상황에서 자렛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연주 방법이었다.

이 앨범은 2002년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에서 3일의 차이를 두고 행해진 콘서트를 두 장의 앨범에 담고 있다. 그 중 오사카 공연에서 만들어 낸 13곡은 모두 실렸으며 도쿄에서의 연주는 오사카 연주의 흐름과 정서에 맞추어 4곡이 선택되어 실렸다. 차라리 서로 분리되어 오사카와 도쿄 공연이 각기 완결된 앨범으로 발매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자렛이 3일 동안 이 공연에만 집중하고 긴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큰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실제 두 장의 CD를 들어보면 장소의 변화는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곡의 정서는 어떨까? 어쩌면 많은 감상자들은 그의 솔로 연주가 주는 거대한 상상력의 순간 보다는 아기자기한 키스 자렛만의 멜로디를 먼저 기대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답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번 자렛의 앨범은 듣는 만큼 느낌이 오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앨범을 받고 처음 감상을 했을 때는 그다지 집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어렵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감상에서는 도대체 내가 무엇을 들었던가? 의문이 들 정도로 다른 음악이 담겨 있어 놀랐다.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듯한 연주가 시작되다가도 어느새 자렛은 그 미로를 보기 좋게 빠져나와 곱디 고운 멜로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멜로디에는 사람을 경건하게 만드는 상승에의 갈망, 침묵으로 무화 되고픈 욕망 등이 들어 있었다. 결국 키스 자렛이 이 공연을 위해 자신의 전존재를 투영했던 것처럼 그 성의에 걸맞은 감상을 할 때 이 앨범은 전체의 표제가 의미하는 찬연(燦然)한 광휘(光輝)를 내뿜을 것이다. 


키스 자렛의 솔로 앨범 5선

오로지 피아노 솔로 앨범만 선정한다

Solo Concerts: Bremen & Lausanne

키스 자렛의 첫 번째 공식 솔로 콘서트 앨범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장의 LP에 담겨 발매된 이 두 도시에서의 솔로 연주들은 장황한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하나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연속적인 흐름이 장점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물론 따로 떼어서 하나의 독립된 곡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한,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을 연상시키는 멋진 멜로디 파트가 등장한다.

Köln Concert

이 앨범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키스 자렛 뿐만 아니라 ECM 레이블, 그리고 재즈사를 빛낸 명반으로 추앙 받는 앨범이다. 이 앨범이 그의 여러 솔로 콘서트 앨범 가운데 빛나는 것은 다양한 음악 양식이 교차하는 그 극적인 흐름이 즉흥적으로 형성된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피아노 환상곡을 보는 것 같은. 유일하게 이 공연 실황이 악보로 채보되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Sun Bear Concerts (6CD)

1976년 일본 5개 도시를 돌며 가졌던 마라톤 공연의 기록이다. 각각의 공연을 담은 앨범 5장에 앙코르 연주를 따로 담은 한 장의 앨범 이렇게 총 6장으로 구성된 박스 앨범이지만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다. 그래서 원래는 한 장의 앨범만을 생각했던 것이 박스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그리고 다른 어느 앨범보다 자유롭고 부드러운 멜로디적 감각을 자렛은 이 일본 실황에서 드러낸다.

Vienna Concert

이 앨범은 다른 솔로 콘서트 앨범에 비해 그다지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앨범이 지닌 감동은 때에 따라서는 쾰른 콘서트도 뛰어넘는다. 다른 콘서트와 달리 이 앨범은 점진적으로 분위기가 상승하는 형식으로 연주되는데 그 분위기의 정점에는 종교적인 느낌마저 드는 상승에의 강한 희구가 위치한다. 이것은 공연장에서 순간적으로 얻은 자렛의 느낌이자 비엔나에 대한 자렛의 느낌이기도 하다.

Dark Intervals

역시 다른 솔로 콘서트 앨범들에 비해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앨범이다. 일본 도쿄의 선토리 홀에서 1987년 4월에 있었던 자렛의 공연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은 다른 솔로 콘서트 앨범과 달리 표제를 지닌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곡들은 진지한 뉴 에이지 음악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정제된 멜로디와 잘 정돈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표제 형식과 짧은 연주의 구성은 이번 앨범 <Radiance>의 원형으로 비교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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