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s & Goodbyes – 정금화 with Walter Lang Trio (Kang & Music 2005)

지난 해 우리 곁을 찾았던 여성 아카펠라 재즈 그룹 레이디스 토크는 반가움과 아쉬움을 함께 남겼습니다. 그것은 우리 한국 여성 보컬이 리드하는 그룹이 독일로부터 날아 왔다는 사실이 반가웠지만 의도했던 바와 달리 그 활동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채 끝났다는 것입니다. 재즈 월간지 MMJAZZ의 부록 시디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이후 강앤뮤직의 과감한 결단으로 관계자들이 독일 현지로 직접 가서 제작했던 앨범이었기에 그 아쉬움은 더 컸습니다. 사실 우리 한국에서 앨범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의 대부분은 음악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홍보 부족 때문입니다. 막상 감상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어? 왜 내가 이 앨범을 여태 몰랐지? 진작에 구입할 것을…… 이라는 후회를 이끌어 내는 앨범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레이디스 토크의 한국 활동이 아쉽게 유야무야 끝났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도 레이디스 토크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면 정금화라는 반가운 인물의 건재입니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삼아 훨훨 날아 다니자던 징검다리 출신의 그녀가 독일에서 10년간 재즈에 빠져 있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징검다리”가 도대체 어떤 그룹이었냐 구요? 이제 나이 지긋한 분들은 아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싶네요. 해마다 여름이면 징검다리의 “여름”이나 “뭉게구름”을 노래하면서 소박한 작은 여행을 꿈꾸었던 80년대를 말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동요처럼 이 노래들을 부르며 해살 가득한 여름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네요. 실제 얼마 전 텔레비전의 70,80 콘서트인가를 보았는데 그녀가 나와서 노래하니 관객들이 상당히 반가워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징검다리” 출신의 정금화라는 사실은 그녀가 감추고 싶은 부분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는 재즈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현재 그녀의 모습으로 새로이 감상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것이 그녀의 마음일 것입니다. 단지 한 시대의 젊음을 기억하고 있는 향수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노래로 다시 등장하고팠기에 강산이 바뀌고 소년 소녀가 신사 숙녀로 변하는 10년의 세월 동안 저 독일에서 조용히 자신을 지워가며 살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앨범의 타이틀이 <Hellos & Goodbyes>라는 것도 바로 이런 마음의 반영이 아닐까요?

자신만의 보컬로 노래하다

그녀는 재즈를 노래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재즈와는 다른 재즈입니다. 사실 많은 분들은 한국인이 노래하건 일본인이 노래하건 아니면 저 브라질 인이 노래하건 독일인이 노래하건 재즈 보컬 하면 역사와 전통의 미국식 흑인 보컬을 먼저 떠올립니다. 끈끈한 점성질(粘性質)과 영혼의 깊이가 느껴지는 흑인들의 노래가 정통이라 생각합니다. 재즈 밖에서 본다면 맞는 말이지만 사실 재즈를 조금이라도 들어 보신 분들은 그게 다가 아님을 알고 있을 겁니다. 어차피 그런 식의 노래는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흑인을 따라가기는 힘이 듭니다. 운명적으로 결정된 사항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미국 밖의 많은 보컬들, 특히 유럽의 보컬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기본으로 삼아 재즈를 연주하고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독특한 자신들만의 스타일과 전통을 확립했는데요. 그런 유럽에서 10년간 공부하고 분위기를 호흡한 정금화 이기에 그녀가 미국식 재즈 보컬과는 다소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실제 앨범의 첫 번째 곡을 들어보면 이것은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All Of Me”이 곡은 의외로 몇 해전 릴리안 부테의 노래로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곡입니다. 재즈의 스탠더드 가운데 스탠더드 곡인 곡, 흑인 특유의 끈적끈적함이 깃든 보컬 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 곡을 그녀는 매우 담백하게 노래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목소리의 떨림(비브라토)를 억제한 상태로 마치 소녀가 수줍게 노래하듯 멜로디를 이어나갑니다. 스팅의 곡을 노래하고 있는 “Fragile”은 어떤가요? 어떤 허무가 느껴지는 이 곡을 그녀도 상당히 느린 템포로 접근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의외로 담담합니다. 오히려 발터 랑의 피아노가 더 우리의 감정선을 건드린다고 느껴지는데요. 어쩌면 정금화가 의도한 정서적 효과는 바로 이런 대비효과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노래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고 전체 사운드에 집중을 해보면 의외로 이 무덤덤한 보컬에서 묘한 슬픔, 처연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일

하지만 이 앨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몇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금화 본인이 작곡한 곡들이 노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녀 역시 다른 유럽의 보컬들처럼 형식이나 스타일에 구애 받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기가 만든 음악만큼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음악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귀여운 느낌의 “My Little Joori”나 다소 힘이 들어간 “5번 트랙” 등 이질적인 분위기가 함께 공존해도 정금화라는 존재로 인해 어색함이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편 여기서 더 나아가 정금화는 상당수의 수록 곡을 우리말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분들은 정금화가 한국적인 재즈를 추구했다 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합니다만 저는 오히려 이 앨범이 한국 외의 다른 지역의 감상자들을 겨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독일의 감상자들을 생각한 앨범이라 여겨지는 군요. 사실 재즈 보컬 하면 미국의 흑인 보컬을 떠올리는 것처럼 영어로 노래가 되어야 그 느낌이 제대로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감상자들의 일반적 성향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노래한다는 것은 최소한 우리 감상자들을 대상으로 보았을 때는 매우 위험한 시도입니다. 게다가 정금화의 노래가 일반적인 재즈 보컬 곡과 다르기 때문에 그저 분위기 있는 우리 가요 같다고 느껴질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외국인들도 그리 생각할까요? 적어도 다양한 개성 있는 스타일에 개방된 유럽의 감상자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실제 또 다른 우리 보컬 나윤선은 이런 말을 제게 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공연 시 우리 가곡 “초우”를 우리 말 가사 그대로 노래하면 뜻도 모른 채 감동을 받는 현지 감상자들이 많다고 말입니다. 아마 정금화 그녀도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재즈가 한국적이라 한다면 그것은 한국적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적이기 위한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작곡도 상당히 우리네 정서를 많이 반영했다는 생각입니다. “6번 트랙”, “8번 트랙”, 그리고 모짜르트의 곡에 윤석중 선생이 가사를 붙인 곡으로 지금까지 동요로 불리고 있는 “봄바람”같은 곡의 경우는 우리네 포크의 정서-어쩌면 과거 “징검다리”의 정서가 상당히 느껴집니다. 결국 이것은 정금화가 생각한 자신의 장점을 살린 재즈를 생각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앨범의 수록 곡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지 않던가요?

발터 랑 트리오의 반주

한편 정금화와 함께 하고 있는 발터 랑 트리오의 역할을 짧게 언급해야겠습니다. 발터 랑은 지난 레이디스 토크의 앨범에서 “꿈꾸는 백마강”을 편곡했던 인물입니다. 그만큼 우리네 멜로디의 특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일 텐데요. 실제 일본과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피아노 연주자는 유럽식 우아함을 기반으로 특별한 과장이 드러나지 않는 담백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특히 그의 솔로는 하나의 새로운 작곡이다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독자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네요. 이와 함께 베이스를 연주하는 벨기에 출신의 니콜라스 타이의 둔탁하면서도 경쾌하게 흐르는 베이스 연주도 주목할 만 합니다.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멜로디가 묵직하게 드러날 때는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드럼을 연주하는 미국 출신의 릭 홀란더와 함께 이 세 연주자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각자 개성 있는 연주로 지명도를 획득한 인물들입니다. 이런 그들이기에 다소 낯설 수 있는 정금화의 멜로디에 편안하고 아늑한 사운드를 입힐 수 있지 않았을까요?

분명 이 앨범에는 저기 독일에서 자신만의 재즈를 추구하던 정금화의 개인적 결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자기 자신의 취향에 솔직한 음악이 우리 감상자들에게 소기의 호응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냥 아깝게 사라지는 앨범이 되기에는 그녀의 10년의 세월도 세월이지만 음악이 아깝게 느껴지거든요. 부디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서 정금화의 현재가 새로운 추억을 생산해 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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