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anova – Mary. L (Universal 2005)

많은 사람들은 보사노바 리듬을 좋아합니다. 설령 보사노바 리듬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마저 저는 보사노바를 좋아할 수 있는 잠재적 애호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보사노바 리듬은 신비한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시냇물 위를 떠내려가던 종이배 하나가 잠시 바위에 걸려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다시 바위를 돌아 떠내려가기를 계속하는 것처럼 보사노바 리듬은 긴장과 이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아무리 슬프고 애절한 멜로디라도 보사노바 리듬 위에 놓이면 알 수 없는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리 열정적인 멜로디라도 보사노바 리듬을 만나면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됩니다. 아무리 나른하고 평안한, 그래서 심심한 멜로디라도 보사노바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과일주스 같은 싱그러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긴장을 품게 됩니다. 과연 어떤 리듬이 이토록 다채로운 정서를 포용하고 또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보사노바 리듬은 어쩌면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덫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보사노바 리듬 자체가 워낙 신비로운 마력을 지닌 만큼 한 아티스트의 개성을 모든 것을 중화시키는 것 같은 보사노바 리듬 위에 풀어 넣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보사노바 앨범이 있었지만 소수의 앨범을 제외하고는 편안하다 이상의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적이 없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앨범 전체를 보사노바로 채우기 위해서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그 아티스트가 보사노바의 고향인 브라질 출신이 아니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Mary. L 보사노바를 노래하다

그런데 마리엘(그녀의 이름은 이렇게 발음됩니다.)은 브라질 사람도 아니고 오래 전부터 보사노바를 노래했던 인물도 아닙니다. 프랑스 출신으로 일반적인 프렌치 팝의 분야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왔던 인물이지요. 간략하게 그녀의 이력을 살펴볼까요?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를 공부하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년 여름마다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2세 때 프랑스 샹송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인 베로니끄 샹송의 눈에 들어 작곡과 피아노 연주에 있어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Stone Age>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켈트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의 보컬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그녀는 보컬로서 음악활동을 지속하게 되는데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Canal+ 채널의 쇼 프로그램 “Nulle Part Ailleurs”의 코러스 그룹에 들어가 활동을 하기도 했고 재즈와 블루스가 섞인 음악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미셀 조나즈, 라이 음악의 대표적 인물 쉡 마미 같은 가수의 앨범과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코러스 가수로서의 활동을 계속하다가 2000년부터 솔로 활동에 대한 의지를 갖고 준비를 한 끝에 2002년 <Et La Musique 그리고 음악은>이라는 앨범을 발표하여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5년 보사노바를 주제로 전곡을 작곡하고 노래한 두 번째 앨범 <Bossanova>를 발표했습니다.

여러분이 듣고 있는 그녀의 이번 두 번째 앨범은 그 타이틀처럼 보사노바 리듬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앨범을 받았을 때 그냥 그런 평범한 보사노바 앨범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저 건조한 제 방에 약간의 온화함을 주는 분위기용 앨범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큰 기대 없이 앨범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앨범의 첫 곡을 듣는 순간부터 방만했던 제 신경은 어느새 그녀의 노래와 음악에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냐고요? 그것은 마리엘의 노래가 분명 보사노바지만 우리가 흔히 만나는 브라질 풍의 보사노바와는 다른 맛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브라질 풍의 보사노바란 라틴 음악의 입장에서 브라질의 축제적 화려함과 부드러운 해변을 생각하게 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보사노바 음악의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브라질의 이국적 풍경에 대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음악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마리엘의 보사노바는 약간 다릅니다. 그녀가 노래하는 보사노바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정형화된 브라질의 풍경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앨범의 첫 번째 곡 “Il pleut sur Rio 리오에 비가 내리네”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리오에 내리는 비를 생각해 보았을까요? 언제나 뜨거운 태양과 여름을 즐기는 축제만을 생각하지 않았던가요? 아무튼 보사노바의 도시에 비가 내리면 모든 화려함은 비에 녹아 내리고 “슬픔마저 선물 같다”고 그녀는 노래합니다. 색다른 브라질 풍경이지요? 그렇습니다. 마리엘은 이렇게 조금은 다른 보사노바의 정서, 보사노바의 풍경을 제공합니다.

보사노바에 담긴 프랑스의 풍경

 그렇다면 왜 이런 풍경이 그려지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미 말씀 드렸던 것처럼 그녀는 바로 프랑스 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보사노바를 노래한다고 해서 브라질 음악의 입장에서 노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이전까지 그녀가 해왔던 프렌치 팝의 관점에서 보사노바 리듬을 타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보사노바에는 프랑스의 정경이 떠 오릅니다.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다소 흐린 날씨가 일반적인, 그리고 비도 자주 내리는 파리의 일상 풍경 말이죠. 가을이나 겨울에 프랑스를 여행하신 분이라면 제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아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파리의 모습만 하더라도 낙엽이 하나 둘 바람에 흩날리고 코트의 옷깃을 세워 입은 사람들이 길을 쓸쓸히 걸어가는 영화 같은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던가요? 아무튼 마리엘의 노래에는 밝고 화사한 브라질 특유의 기후를 지닌 여타 보사노바 음악과는 다른, 마치 비가 내린 이후의 흐릿한 하늘과 촉촉한 공기와도 같은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La plage des amoureux 연인들의 해변”같은 곡은 사람 많은 브라질이 아닌 어느 해변에나 어울릴 법한 풍경을 그려냅니다. “Les Amants 연인들”은 어떻던가요? 조금은 쓸쓸한 거리에 위치한 카페의 아늑함을 연상시키지 않던가요? 또 다른 프랑스 여 가수 엘레나 노게라(Helena Noguerra)와 듀엣으로 노래한 “L’amour c’est gratuit 사랑은 무료”나 “Alanguie 나른한”은 그 자체로 프렌치 팝입니다. 심지어 “Voyage Pacifique 태평양 여행”같은 곡도 이국적인 맛보다는 프랑스적 정서를 더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드럽고 은밀한 프랑스어 특유의 어감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 창법뿐만 아니라 사운드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앨범을 감상하면서 분명 보사노바 노래가 맞는데 보사노바 리듬이 사운드의 전면에 드러나기 보다는 그만큼 리듬을 감싸고 수놓는 다른 리듬과 악기들의 존재가 강하게 부각되었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실제 앨범 전체의 편곡은 라틴 음악보다는 프렌치 팝의 관점에서 편곡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간히 등장하는 촉촉한 피아노, 감미로운 선율을 직조해나가는 뮤트 트럼펫이나 색소폰 등은 보사노바와 상관없이 재즈적 성향의 프렌치 팝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트롬본, 색소폰, 트럼펫이 한데 모여 만들어 내는 브라스 섹션을 집중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브라질 음악에서 일반적으로 작렬하는 태양을 그리는 것 같았던 이 브라스 사운드는 이 앨범에서는 프렌치 팝의 따스한 낭만성을 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마리엘의 보컬을 도와 은밀하게 흔들리는 코러스도 라틴 음악보다는 팝 적인 감각이 더 강하게 드러납니다. 라운지 팝의 느낌마저 주는 “Eternité 영원” 같은 곡이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우리의 일상에 어울리는 음악

결국 마리엘의 보사노바는 프렌치 팝 같은 보사노바입니다. 그런데 저는 마리엘의 보사노바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국적인 풍경이 아닌 하나의 사실적 풍경의 음악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한국이 아닌 프랑스를 그리고 있지만 마리엘의 음악에 담긴 그다지 색다르지 않은 도시적 일상에서 느끼게 되는 소소한 감정들, 서툰 사랑의 달콤함과 가슴 아픔, 색다른 사건에 대한 막연한 동경 등의 정서는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도시의 일상적 정서들이 보사노바라는 신비한 리듬을 통해 부드럽게 중화되어 있으니 공감하기 더 쉽지 않을까요? 그 가운데서 저는 특히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행복에 겨운 나른함을 안개처럼 흐릿한 보컬로 노래하고 있는 “Alanguie”사랑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고 부드럽게 만들고 삶에 행운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부드럽게 노래하고 있는 “L’amour c’est gratuit 사랑은 무료”, 그리고 연인과 아침을 맞이하고 함께 걷고 사랑을 나누었던 바닷가에서의 날들을 연인을 보낸 뒤 눈물로 추억하고 있는 “La plage des amoureux 연인들의 해변”곡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곡들은 모두 그 제목과 내용에 맞추어 나른하고 부드럽고 담담하게 다가옵니다. 모두 같은 보사 노바 리듬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다 다르다는 것이 신기하죠? 그리고 이 정서들은 우리가 도시를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던가요?

저 혼자 이런 곡들이 좋다고까지 말해버렸으니 여기서 이만 제 이야기는 끝을 내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고유한 감상을 망쳐버리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마리엘의 노래를 듣고 여러분만의 느낌을 가져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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