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ner Mounting Flame – Mahavishnu Orchestra (Columbia 1971)

처음부터 대단했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기록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재즈를 비롯한 여러 대중 음악의 관심은 새로운 음악적 형식이나 연주 주법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새로운 질감을 지닌 사운드의 창조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연주자들은 새롭게 발명된 악기를 연주하거나 서양 문화 밖에 존재하는 악기들, 그러니까 아프리카의 토속 악기 등을 연주하곤 했다. 설사 익숙한 악기라도 기존의 주법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연주를 펼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설명들은 60년대 후반 이후의 상황보다는 60년대 전반의 프리 재즈에 더 적합한 설명이다. 60년대 후반 이후의 사운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사운드 볼륨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즉, 소규모 밴드로 그 몇 배 이상의 강렬하고 웅장한 사운드를 만드는데 많은 연주자들이 주력했다는 것이다.

사운드의 볼륨을 키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어쿠스틱 악기보다는 전기적 증폭이 가능한 전자 악기의 출현 때문이었다. 일렉트릭 키보드, 일렉트릭 기타 등이 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에 사용되었는데 그 가운데 일렉트릭 기타는 6현의 오케스트라라는 칭호를 얻으며 1970년대를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를 잡게 된다. 실제 1960년대 후반 기존의 기타 연주와 구분되는 화려한 기교를 지닌 기타 연주자 지미 헨드릭스의 등장은 롹뿐만 아니라 재즈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언제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기타는 새로운 질감의 사운드를 실현시킬 이상적 악기였다.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를 자신의 밴드에 넣을 수 없었기에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기타 연주자를 찾았다. 그 결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1969년도 녹음 <In A Silent Way>에 존 맥러플린이라는 생소한 기타 연주자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퓨전 재즈의 탄생을 선언했던 앨범 <Bitches Brew>(Columbia 1970)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직접 그를 위해 “John McLaughlin”이라는 곡까지 작곡을 하며 그를 높이 평가하자 세상은 이 기타 연주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존 맥러플린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Bitches Brew>를 끝으로 존 맥러플린은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에서의 인기와 안정적 미래를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독립을 했다. 그리고 인도 음악과 철학, 특히 인도의 영적 사상가 스리 친모이의 사상에 심취해 자신의 이름을 존 “마하비시누” 맥러플린으로 개명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는 그러므로 존 맥러플린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비록 존 맥러플린의 인도에 대한 애정이 반영된 이름을 그룹 이름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인도 음악으로 무엇을 해보려는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서구적이지 않은 신비로운 사운드와 선율의 진행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존 맥러플린의 관심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개척한 퓨전 재즈를 자신에 맞게 재구성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에 인도적 색채가 있다면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아무튼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퓨전 재즈의 시대를 선언한 이후 퓨전 재즈의 인기를 증폭시켰던 그룹이었다. 특히 그 인기는 재즈에 머무르지 않고 롹까지 아우르고 있어 진정한 퓨전 재즈 음악을 선보였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실 재즈 애호가들에게 기타 연주자 존 맥러플린의 인기는 다소 높은 편이지만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는 오히려 롹 애호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앨범 <The Inner Mounting Flame>은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첫 앨범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퓨전 재즈가 보여주었던 이국적인 동시에 화려한 개인기가 집단적으로 드러난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러나 마일스 데이비스보다는 훨씬 더 정리되고 안정적인 구조하에서 각 연주자들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어 훨씬 더 감상이 용이하다. 그리고 앨범의 수록 곡 하나하나를 감상하다 보면 존 맥러플린을 비롯한 제리 굿맨(바이올린), 얀 해머(피아노), 릭 래어드(베이스), 빌리 코햄(드럼) 등 각 연주자들이 이 첫 앨범을 통해 보여 주고픈 새로운 음악적 영감이 매우 많았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각 연주자들은 동시 다발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 하지 않고 차례로 줄을 서듯 자신의 표현 욕구를 조절하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순서를 기다린다. 그래서 8곡의 수록 곡은 구조의 통일성과 사운드의 균질성을 드러내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낸다. 예로 ‘Dawn’에서는 존 맥러플린의 거칠면서 힘있게 전진하는 기타, 때로는 지미 헨드릭스를 연상시키는 우주적인 기타 사운드가 빛을 발하더니 ‘A Lotus On Irish Streams’에서는 제리 굿맨의 동양적 신비를 머금은 바이올린이 얀 해머의 피아노와 함께 조용히 부각된다. 그리고‘Awakening’같은 곡에서는 빌리 코햄이 숨막히는 드럼 연주로 사운드를 흥분시킨다.

그런데 앨범의 뛰어남은 이러한 연주자들의 화려한 기교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첫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그룹으로서의 제대로 된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에서 놀라게 된다. 각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화려한 개인적 기교와 그 와중에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모이는 전체 사운드는 분명 갓 결성된 그룹의 연주를 뛰어 넘는 것이다. 물론 이전까지 새로운 사운드를 위해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순간적으로 모여 훌륭한 합주를 벌리는 것이 일상적이긴 했지만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연주자 개개인의 개성과 함께 그룹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전의 경우와 차이를 보인다. 어쩌면 이러한 면모는 롹 그룹에서 더 발견하기 쉬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이 앨범은 곡의 전체 진행이 세밀하게 계산된 방향, 고려된 서사적 역동성을 따라 흐른다는 점에서 흔히 프로그레시브 롹, 아트 롹이라 불리는 예술적 롹으로도 감상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 좋은 예로 앨범의 첫 곡 ‘Meeting Of The Sprits’의 사운드와 그 구성을 주의 깊게 들어보기 바란다. 즉흥 연주(Improvisation)보다는 애드리브(Ad Lib)에 가까운 기타 솔로, 몽롱한 키보드,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바이올린, 롹적인 드럼과 베이스를 듣다 보면 70년대를 풍미했던 아트 롹의 향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유럽의 재즈 음반 매장에 가보면 종종 PFM, Osanna같은 70년대 이태리 아트 롹 그룹의 앨범들이 재즈 롹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앞서 이 앨범이 재즈보다 롹쪽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롹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 앨범이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앨범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말 그대로 롹과 재즈가 이상적으로 결합한 퓨전 사운드의 모범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퓨전 재즈라는 표현 외에 재즈 롹이나 롹 재즈라는 새로운 한정이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붙여지는 것이리라.

보통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하면 두 번째 앨범 <Bird Of Fire>(Columbia 1972)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곤 한다. 분명 이 앨범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음악적인 감동에 있어서는 이 첫 앨범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아니라면 최소한 대표 앨범이 아닌 평범한 앨범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되는 앨범임에는 분명하다. 재즈를 감상하다 보면 공인된 유일의 명반 콤플렉스로 인해 하나의 대표 앨범 외에는 같은 연주자의 다른 앨범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이 앨범을 들으면서 새삼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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