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메스니 그룹과 함께 하는 희망의 여행
팻 메스니가 그의 새로운 그룹을 이끌고 다시 한국을 찾아 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요?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이번 공연이 4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5년에 올림픽 공원 체조 경기장에서 감동적인 첫 공연을 펼친 후 두 번째 공연, 그러니까 5일간에 걸쳐 팻 메스니 그룹의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팬들을 열광하게 했던 LG 아트 센터에서의 공연으로 한동안 그를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다음해 겨울 트리오를 이끌고 다시 한국을 찾아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다시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새롭게 탈바꿈한 그의 그룹을 이끌고 온답니다. 첫 공연에서 두 번째 공연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그 뒤로는 거의 1년에 한번씩은 오고 있네요. 보통 우리 한국의 공연 문화를 살펴보면 한번 방한한 연주자를 다시 부르기가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 관람료가 고가인데다가 그다지 쉽게 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왕이면 처음 오는 연주자의 공연을 보자는 생각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음악을 듣기 전에 그 유명하다는 연주자의 얼굴, 연주 모습을 한번 보자는 생각이 음악 감상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팻 메스니 그룹의 공연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사실 아무리 오랜만이었다고 하지만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난 2002년, 4일에 걸쳐 공연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거기에 하루를 더 추가해야 했을 정도로 많은 한국의 팬들이 그의 공연을 사랑할 줄 말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팻 메스니 본인도 그렇게 예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2002년의 공연이 5일간이나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팻 메스니와 그의 그룹의 공연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고가에도 불구하고 하루로 만족하지 않고 이틀, 사흘 심지어는 5일 모두를 공연장에서 살다시피 했던 열성 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2002년 팻 메스니 그룹의 공연은 한국의 공연 문화 속에서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는 여정의 음악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팻 메스니와 그의 그룹이 함께 하는 공연에 몰려들었던 것일까요?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음악이 너무도 좋기 때문이겠지요. 실제 저와 함께 재즈에 관한 글을 쓰는 한 선배 재즈 칼럼니스트는 앨범 리뷰 등을 쓸 때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곤 하는데 유달리 팻 메스니에게는 애착을 보입니다. 그래서 편애가 아니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글쎄 그 선배 칼럼니스트는“그렇게 보일 지 모르지만 정말 훌륭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팻 메스니의 동그랗고 투명한 기타 톤부터 다양한 곳에 멤버의 합일 지점과 분산 지점을 설정하여 하나의 드라마를 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의 구성 방식, 동일한 지향점을 향해 열심히 서로를 격려하며 연주를 진행하는 합주 등에 관해 장시간 이야기를 하더군요. 물론 저 역시 그 선배 칼럼니스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팻 메스니의 음악을 좋아하는 데는 단순히 음악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의 우수성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악 감상자들은 음악에 정서적으로 반응을 합니다. 결국 팻 메스니의 음악이 사랑 받는 이유는 다른 음악과 차별되는 정서적 특성 때문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팻 메스니의 모든 음악은 꿈을 꾸게 합니다. 그 꿈은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한 꿈입니다. “지금 나의 삶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는……”이라고 생각할 때 건조한 일상을 견디게 되는 것처럼 팻 메스니의 음악에는 언제나 희망 같은 동경, 아련함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긍정적이고 낙관적 정서가 많은 감상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희망의 음악은 언제나 어디론가 향하는 길 위의 여정으로 나타납니다. 매번 팻 메스니의 앨범에 이러 저러한 길 위의 풍경들,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경들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까요? 실제 많은 감상자들은 팻 메스니의 음악에서 다양한 여행의 이미지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팻 메스니의 음악이 실릴 때에는 언제나 “너른 벌판을 가로질러 끝없이 펼쳐진 길”이 담긴 사진이나 신호등, 교통 표지판 등이 등장하는 사진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의 음악에 담긴 희망의 정서가 길이라는 현실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은 아무리 시대가 자유롭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시간을 내어 자신의 공간, 자신의 시간으로 일상을 벗어나 이동하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팻 메스니의 음악을 들으면서 낯선 곳, 오로지 막연함만이 기다리고 있는 곳,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짜릿한 기대와 흥분이 기다리는 곳, 아직 도착하기 전이니까 언제든지 목적지를 바꿀 수 있다는 안도감이 지배하는 그 곳을 상상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따라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팻 메스니 그룹의 공연을 자꾸 기다리게 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반복 속에서 생성되는 영원한 젊음
희망이 담긴 여정의 음악은 팻 메스니의 첫 앨범부터 이미 담겨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모처럼 제 앨범 라이브러리에서 팻 메스니의 앨범들을 꺼내 다시 들어보았습니다. 팻 메스니의 첫 앨범 <Bright Size Life> (ECM 1976), 팻 메스니 그룹의 첫 앨범이라 할 수 있는 <Pat Metheny Group>(ECM 1978)부터 올 해 새롭게 발매된 <The Way Up> (Nonesuch 2005) 등 여러 앨범을 들었는데, 모든 앨범마다 팻 메스니만의 약간은 외롭기까지 한 아련한 희망적 여정의 이미지가 아주 또렷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네요. 그런데 이렇게 희망적 여정이라는 이미지가 팻 메스니의 앨범에서 반복되고 있음에도 뻔한 음악이라는 식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그 반복되는 이미지만큼이나 매번 새로운 차이가 느껴지지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음악은 반복되지만 결코 동일성을 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팻 메스니의 음악이 익숙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신선함을 주었던 것이 바로 이 적절한 반복과 차이의 조합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의 차이는 팻 메스니가 끊임없이 여행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모든 것을 느끼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음악을 희망적 여정이라 정의했는데, 실제 그의 삶은 음악적 이미지와 동일합니다. 일단 그는 언제나 새로운 음악에 열려 있지요. 아마 팻 메스니의 다양한 솔로 활동을 접해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프리 재즈 연주자 오네트 콜맨부터 가장 최근의 만남이었던 폴란드 여가수 안나 마리아 조펙까지 그는 다양한 음악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고 다시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는 세계 각지를 돌며 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팻 메스니 그룹의 변천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전히 키보드 연주자 라일 메이스가 그의 동반자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의 그룹은 지금까지 다양한 멤버들의 교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멤버들은 미국 외에 아르헨티나(페드로 아즈나르), 카메룬(리차드 보나), 멕시코(안토니오 산체스) 등 다양한 문화권 출신들로 채워졌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룹의 음악적 외형은 변화를 거듭했지요. 그러니 누가 팻 메스니의 음악에 지루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팻 메스니의 음악이 단순히 퓨전 재즈, 아방가르드 재즈 등의 기존 재즈의 분류에 쉽게 포함되지 않고 그저 팻 메스니 음악으로 정의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저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팻 메스니는 올 해 우리나라 나이로 52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젊다고 하기에는 다소 많은 나이지요. 그럼에도 팻 메스니의 음악은 70년대, 그러니까 팻 메스니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을 장식했던 시기의 풋풋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옷차림과 얼굴은 전혀 50대의 중년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원한 젊음의 이미지가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 역시 그가 늘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또 그 속에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그의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2005년, <The Way Up> 한국 공연에 대한 기대
이제 이번 공연에 대한 예상을 해야겠군요. 다른 어느 공연보다 이번 공연은 그 진행이 매우 궁금해집니다. 왜냐하면 올 해 발매된 신보 <The Way Up>(Nonesuch 2005)의 독특한 구성 때문이겠지요. 한 시간이 넘는 분량을 단 4곡으로, 그것도 각 곡들이 서로 연결되는 형식으로 채워져 있으니 공연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앨범 그대로 연주를 하고 공연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기대와 우려를 함께 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잠시 후면 바로 확인이 되겠지요. 사실 뭐 어떻습니까? 그저 이번 앨범의 수록 곡으로만 공연을 채운다고 하더라도 저는 결코 팻 메스니 그룹의 이번 공연이 실망을 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앨범이 설령 4곡으로 이루어진 독특함이 우선하기는 하지만 그 각각의 곡들에는 지금까지 팻 메스니 그룹이 보여주었던 다양한 음악적 효과들이 집약되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희망적 여정의 이미지는 여전합니다. 아니 더 강화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좋겠군요. 지금까지 팻 메스니가 이끌었던 다른 어느 여행길보다도 다채롭고 극적인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비록 새로운 곡들로 채워진 공연이지만 그 느낌은 여전히 신선함과 익숙함이 공존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공연이 앨범 <Speaking Of Now>(Warner 2002)를 기반으로 그동안 많은 인기를 얻었던 다른 앨범 수록 곡들을 함께 연주했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번 공연은 꼭 <The Way Up>만을 위한 공연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실제 이리저리 수소문한 바에 따르면 현재 팻 메스니 그룹의 공연은 신보의 곡들을 축약한 형태로 연주를 하고 다른 곡들을 함께 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팻 메스니 그룹의 음악을 총체적으로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기왕이면 4월 공연인 만큼 “April Joy”같은 팻 메스니 그룹 초기의 곡도 연주해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봄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 확인해 보고 싶네요.
따라서 이번 공연은 팻 메스니를 중심으로 라일 메이스(피아노, 키보드) 스티브 로드비(베이스, 첼로), 쿠옹 부(트럼펫, 보컬), 그레고와 마레(하모니카), 안토니오 산체스(드럼)로 이루어진 새로운 팻 메스니 그룹이 이번 새 앨범의 곡들 외에 잘 알려진 이전 앨범의 곡들을 어떻게 기존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킨 연주를 들려주느냐를 확인하는 것에 중점을 두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공연을 펼치고 있는 팻 메스니와 그룹 멤버들이 보여주는 눈앞의 연주 풍경에 빠지지 않고 그들이 직접 전달하는 음악적 이미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좋은 공연 감상일 것입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색색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있는 공간으로 마음을 열고 따라갈 때, 우리가 기대했던 감동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를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자, 그리면 이제 팻 메스니와 그의 그룹의 2005년 한국 공연 속으로 빠져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