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te La Musique… – Patricia Kaas (Sony 2005)

직접 공연을 보고 싶게 만드는 열정적인 공연의 기록

필자는 프랑스에 몇 년간 체류했던 경험이 있다. 필자가 프랑스로 향했던 이유는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잘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프랑스 문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의 근원에는 파트리시아 카스의 음악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파트리시아 카스의 인기는 당시 영미권 팝 음악에 경도되어 있었던 한국인들의 취향을 생각하면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그녀의 음악은 단순한 월드 뮤직-이 말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영미권 음악이 아닌 음악을 배제시키려는 불순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의 하나가 아니라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노래된 독특한 팝 음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중성적인 목소리로 자신 있게 내가 소유한 나만의 남자를 노래했던 “Mon Mec A Moi”는-이 곡의 제목은 영어로 한다면 My Guy Of Mine으로 My와 Mine이라는 단어를 이중으로 사용하여 남자에 대한 소유권을 강조하고 있다- 마네킹의 차가움을 연상시키는 조각 같은 그녀의 얼굴과 맞물려 새로운 프렌치 팝음악의 여성 가수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재즈와 블루스가 섞여 있는 다른 노래들에서는 뇌쇄적이고 관능적인 창법으로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프랑스인들은 그녀의 모습과 노래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재림을 보았다.) 아무튼 프랑스에서의 데뷔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부터 파트리시아 카스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몇 안 되는 비 영어권 가수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 파트리시아 카스에 관한 상당수의 웹 페이지는 그녀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한국을 언급하고 있다.

공연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수

9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대중 음악 분야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뛰어난 가창력을 소유한 인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어로 노래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한 셀린 디온, 라라 파비앙을 비롯하여 뮤지컬 <파리의 노틀담>에서 에스메랄다 역할을 맡았던 엘렌 세가라, 그리고 최근의 이사벨 불레까지 대부분의 인기 정상의 가수들은 풍부한 성량과 가창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여가수들의 득세의 시작에는 바로 파트리시아 카스가 위치한다. 그리고 언급한 가수들 가운데서도 파트리시아 카스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다른 대중 가수들처럼 티브이 출연을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공연을 통해서 자신의 인기와 음악 인생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파트리시아 카스의 노래는 일반 티브이 쇼 프로그램을 통해 듣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필자가 본 경험으로는 파트리시아 카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쇼 프로그램이 아쉽게도 생생한 현장감을 요구하는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를 잘 살리지 못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일 년에 수개월을 공연장에서 보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편 파트리시아 카스는 자신을 원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달려가 노래를 하는 열정이 있다. 지금까지 그녀는 프랑스, 미국은 물론이고 러시아, 동유럽, 중동 등 인종, 정치, 종교를 벗어난 모든 지역에서 공연을 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공연을 하지 않았던가? 실제 필자는 파트리시아 카스의 공연 활동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면 속의 그녀는 정치, 군사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는 동유럽의 한 국가에 전세기를 타고 날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공연장을 꽉 메운 관객들과 그들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이처럼 파트리시아 카스의 세계적 인기는 앨범이 아니라 직접 돌아다니며 노래를 해서 이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프랑스 여가수들 중 누가 이런 활동을 보여주었을까? 대부분 일년에 잠깐 프랑스에서만 공연을 하는 것이 전부이지 않던가? 이런 이유로 그녀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면 한 장이나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 뒤에는 꼭 공연 실황 앨범이 자리를 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뜨거운 벨기에에서의 이틀을 공개하다 

이번에 발매된 앨범 <Toute La Musique… 모든 음악>도 조금은 독특했던 6번째 스튜디오 앨범 <Piano Bar>와 7번째 스튜디오 앨범 <Sexe Fort 강력한 성(性)> 이후 발매된 5번째 공식 라이브 앨범으로 음악적 내용이나 공연장의 생생한 분위기 처리 등에 있어서 최고의 수준을 들려준다. 2004년 11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시르크 루와이얄(Cirque Royal)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은 다른 파트리시아 카스의 라이브 앨범들처럼 공연에 능숙한 그녀의 열정적인 보컬과 잘 조율된 뛰어난 사운드 그리고 관객들의 호응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이번 라이브 앨범에서 귀를 사로잡는 것은 갈수록 저음역이 풍성해져 가고 있는 파트리시아 카스의 보컬과 이에 걸맞게 강렬해진 롹 성향의 사운드이다. 이것은 앨범 속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공연 사진을 보면 쉽게 감지된다. 가슴이 금방이라도 드러날 듯한 옷차림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들은 그저 예쁘게 노래하는 여가수가 아닌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는 롹커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곡 “D’Allemagne 독일”에서부터 관객들의 환호성 속에 이별을 말하는 마지막 곡“Je Le Garde Pour Toi 너를 위해 그것을 간직할게”까지 그대로 지속된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로 가슴까지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인트로를 지닌 이 곡을 파트리시아 카스는 스튜디오 버전보다 훨씬 더 비장한 분위기로 노래한다. 그리고 반주 역시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그녀의 목소리에 화답한다. 비록 노래되고 있는 곡은 그녀의 첫 앨범 <Mademoiselle Chante 아가씨 노래하다.>에 담긴 곡이지만 장 자끄 골드만과 손을 잡은 이후 유난히 기타의 역할이 중요해진 최근 음악의 경향에 맞추어 새롭게 편곡된 것이다. 이러한 편곡은 앨범의 모든 곡에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데 그래서 “Mademoiselle Chante Le Blues 아가씨 블루스를 노래하네”같은 블루스 곡도 마치 열정적인 롹커의 노래처럼 바뀌어 노래된다.

이렇게 첫 곡을 시작으로 파트리시아 카스는 감상자의 가슴에 쌓여 있는 답답한 감정들을 일소에 제거하려는 듯 굵고 시원한 창법으로 노래를 이어 나가며 그녀는 관객을 그녀의 세계로 이끈다. 저렇게 노래 부르다가 목이 상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그녀의 노래에서는 혼신의 힘이 느껴진다. 세 번째 곡 “Oú Sont Le Hommes 남자들은 어디갔나”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들어보라. 파트리시아 카스가 남자들!이라 외치면 공연장에 모인 모든 남자들은 그녀의 부름에 화답한다. 다시 여자들!이라 부르면 여성 관객들 역시 큰 환호성을 지른다. 이 외에도 매 곡마다 그녀가 노래하는 곡 하나 하나에 환호성과 박수로 반응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파트리시아 카스의 공연이 얼마나 관객들을 몰아의 경지로 이끌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공연으로 정리한 파트리시아 카스의 베스트 곡들 

이번 실황 앨범에서도 파트리시아 카스는 그녀의 모든 스튜디오 앨범에서 엄선한 곡들을 노래했다. “Il Me Dit Que Je Suis Belle 그는 내가 예쁘다고 말해요”, “Une Fille De l’Est 동쪽에서 온 소녀”, “Ceux Qui N’ont Rien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등 그녀가 좋아하는 곡들이 노래되었다. 이처럼 실황 앨범은 파트리시아 카스의 특정 시기의 살아 있는 기록의 의미뿐만 아니라 새롭게 자신의 음악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번 실황 앨범에는 그녀의 정규 앨범에 수록되지 않는 곡들이 노래되어 있어 흥미를 높이고 있다. 아마도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 할 수 있는 곡으로 노장이면서 아직도 수십만 명의 관객을 공연장에 모을 수 있는 프랑스 롹의 대부 자니 할리데이의 히트 곡 “Toute La Musique Que J’aime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음악”과 공연장에 모인 벨기에 관객들을 위한 배려였다고 생각되는 자끄 브렐-그는 프랑스 음유 시인 음악의 대명사이지만 벨기에 출신이다-의 “Quand On N’a Que l’Amour 사랑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가 노래되었다. 게다가 보너스 트랙으로 197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바바라의 장엄한 분위기의 히트 곡 “L’Aigle Noir 검은 독수리”와 독일어로 노래한“Herz Eines Kämpfers 싸움꾼의 마음”이 수록되어 있다.

파트리시아 카스의 이번 공연 실황 앨범 <Toute La Musique…>의 한국 발매는 아주 시기 적절한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2005년 5월부터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7개 도시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역시 대도시만 선호하지 않고 마치 순례를 하듯 이곳 저곳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그녀의 성격이 반영된 투어라고 생각되는데 그 전에 이 앨범으로 공연의 분위기를 미리 느껴보는 것도 공연 관람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정말 앨범을 들을수록 파트리시아 카스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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