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올리바(Stephan Oliva)를 만나다

몇 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프랑스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 가운데서 두 명의 피아노 연주자를 최고의 연주자로 꼽는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스테판 올리바다. 나는 2004년 가을 지금은 사라진 스케치 레이블의 제작자 필립 기엘메티를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한 카페에서 약 3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서 일부분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청춘: 몇 살부터 음악을 시작했나요?

S.O: 6,7세 무렵에 시작했으니 매우 일찍부터 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무렵 전 작은 장난감 하모니엄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걸로 되는대로 즉흥 연주를 시도하며 놀았죠. 그 하모니엄 소리는 제게 오르간 사운드의 느낌을 주었습니다. 작은 창고에서 그것으로 연주를 할 때면 잔향과 함께 정말 그 사운드가 오르간 같았죠. 이렇게 해서 전 즉흥 연주 분야에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전 작곡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곡을 기억하고 메모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피아노를 배울 것을 권했죠. 그렇게 해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시 전 재즈는 잘 알지 못했어요. 루이 암스트롱을 알게 된 것도 17세 무렵 라디오에서 여름 재즈 페스티발 재방송을 들으면서였죠. 그 방송이 내게 재즈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청춘: 그렇게 해서 재즈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셨군요.

S.O: 예. 제 아버지는 완전한 즉흥 연주가였습니다. 그는 첼로를 자유롭게 연주하곤 했었고 피아노로도 즉흥 연주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즉흥 연주를 했으니 제게도 즉흥 연주가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결국 음악 장르, 스타일 등에 대한 생각을 지니기 전에 전 귀로 즉흥 연주의 영향을 받았던 거라 할 수 있겠네요. 당시 제가 좋아했던 음악가는 바하였지만 말이죠.

청춘: 바하는 어떤 이유로 좋아하셨죠? 멜로디 때문에 아니면 음악적 분위기 때문에?

아니요. 전 바하의 음악이 정말 모든 면에서 달라 보였습니다. 한편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도 좋아했죠. 지금은 아무거나 다 듣습니다. 흥미로운 음악들이라면 말이죠.

청춘: 그래서 지금 듣고 계시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S.O: 보통 우연을 따라, 프로젝트에 따라 듣는 음악이 바뀌곤 합니다. 예로 제 퀸텟의 클라리넷 연주자 쟝 마크 폴츠는 제게 최근 야신드 셀시라는 현대 음악가의 음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요즈음은 이전보다 재즈를 덜 듣는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제 학생의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그리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내게 영감을 주는 것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사진이나, 영화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전 영화가 매우 좋습니다.

청춘: 그래서 영화 음악을 연주한 솔로 앨범을 녹음했나요?

S.O: 예. 단편 영화 음악도 했어요. 최근에는 루루라는 1928년 무성영화에 음악을 직접 입히는 작업도 했습니다. 영화 극장에서 영화를 틀어 놓고 라이브로 녹음하는 것이었는데 제겐 처음 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게 매우 마음에 든다. 사실 무성영화 시대에 모은 음악가들은 즉흥 연주를 했지 않습니까? 정말 이 작업은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청춘: 실제 즉흥 연주만 하셨나요?

S.O: 아니요. 영화가 매우 구조적이기 때문에 빅스 바이더백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을 미리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에서도 영감을 얻었죠.

청춘: 그렇다면 다시 당신의 경력을 살피겠습니다. 몇 살 때부터 프로 연주를 시작했나요?

S.O: 전 아마 매우 일직 시작한 셈입니다. 아직 완전히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20세 무렵에 시작했습니다. 사실 난 독학으로 재즈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전 지금 애들을 가르치고 있네요. 하지만 재즈는 경험으로 얻어지는 음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춘: 아. 독학으로 음악을 배우셨군요. 그렇다면 정말 학교에서 음악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S.O: 제가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애들을 작은 그룹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서로 연주하게 하죠. 그러면서 애들 사이에 교감이 생기고 역동적 소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전 개인교습은 맘에 들지 않습니다.

청춘: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재즈는 클래식에 가까운가요? 대중 음악에 가까운가요?

S.O: 현재 프랑스에서는 재즈를 클래식과 관련 지으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고등 음악원에서도 클래식과 재즈를 함께 가르치고 있죠. 그런데 이것은 실수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대중으로부터 재즈를 멀리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거든요.

청춘: 그렇군요. 그렇다면 처음에 프로 연주자로서 재즈를 시작했을 땐 전통적 스타일을 연주했나요?

S.O: 아닙니다. 물론 20세 때 비밥을 연주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사운드가 아주 처참했습니다. 전혀 비밥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던 거죠. 대신 전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건 내가 언제나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생각인데 전 오직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것만을 연주하려 합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전 보다 다양한 음악을 연주할 줄 알게 되었지만 20세 당시에는 특별한 것을 연주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시 제가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연주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았던 연주자들에 비해 아주 특별한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언제나 전 더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연주합니다.

청춘: 그래도 제 생각에 최근 당신은 과거의 음악을 추적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레니 트리스타노에 대한 앨범 < Sept variations sur le Lennie Tristano >(Sketch 2002)가 그렇지 않은가요?

S.O: 맞습니다. 제가 과거의 연주자에게 관심이 있을 때는 그가 그의 시대에서 상당한 혁신가이기 때문입니다. 폴 모시앙, 빌 에반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죠. 이들의 창조적 능력 때문에 다시 해석을 시도하는 겁니다. 이 외에도 전 초기 재즈 연주자들이 매우 창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완전 초기의 피아노 연주자들을 정말 창조적이었죠. 그들의 연주는 매우 놀랍습니다. 심지어 부기우기 피아노 연주자들도 그렇습니다. 예로 라이언 스미스의 피아노에는 놀라울 정도의 자유가 느껴집니다. 한편 전 또한 듀크 엘링턴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의 피아노 연주를 오케스트라보다 더 좋아합니다. 사실 데뷔 시절에 난 현대 음악에 매우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버드 파웰, 빌 에반스를 좋아했죠. 아마 클래식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모든 스타일 모든 시대의 음악을 다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클래식 음악을 지금의 음악처럼 듣고 해석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시간과의 관련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청춘: 그렇다면 당신의 음악적 원천은 무엇인가요? 무엇인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지……

S.O: 내게 있어 음악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 사람이 봉투를 열고 편지를 읽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읽으면서 그는 실제로 편지에 씌어 있지 않은 행간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읽고 또 읽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상하겠죠? 여기에 전 제일 관심이 있습니다.

청춘: 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실 전 당신의 음악이 상상의 여지를 많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당신의 빌 에반스 헌정의 성격이 강했던 앨범 <Jade Vision>(Owl 1996)년 앨범을 들어보면 당신은 멜로디를 있는 그대로 연주하지 않습니다. 여백을 두고 그 사이를 감상자가 상상으로 메울 것을 요구하죠.

S.O: 예. 제대로 보셨네요. 사실 저는 침묵을 매우 좋아합니다. 침묵은 그냥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는 역동적 공간이지요. 제 음악에서 그걸 발견하셨다니 연주자의 입장에서 매우 고맙고 기쁘군요.

청춘: 사실 전 당신과 브누아 델벡씨를 프랑스 피아노 연주자 가운데 가장 창조적이라 생각합니다. 두 분은 현대 음악의 긴장과 재즈의 창조적 측면을 아주 효과적으로 결합했다고 생각합니다.

S.O: 아!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군요. 사실 브누아 델벡과 전 아는 약간 사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음악적으로도 다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두 사람은 같은 스승을 두고 있더군요.

청춘: 하지만 일반 감상자들은 당신의 음악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나요?

S.O: 그럴 수 있습니다. 사실 대중들은 협의적인 것에 더 민감합니다. 브레드 멜다우 트리오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그런 거죠. 왜냐하면 그들은 그래도 전통적인 형식을 지키거든요. 브래드 멜다우는 인상적이고 자유로운 연주를 펼치지만 연주를 하면서 전통적 형식은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춘: 한편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재즈의 중심은 미국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현대 재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S.O: 물론 가장 위대한 재즈 연주자들은 과거 미국의 흑인 재즈 연주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 찰스 밍거스 같은… 하지만 그 이후 인종적 지역적 경계는 무너졌고 뛰어난 색채를 지닌 유럽 연주자가 아주 많이 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엔 음반과 문화의 역할이 컸죠. 현재 문화는 이전보다 훨씬 많이 여기저기 여행을 합니다.

청춘: 그렇다면 유러피안 재즈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미국인도 유럽인도 아닌 저 같은 아시아인에게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유러피안 재즈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60년대 미국 프리 재즈가 유럽으로 건너 오면서 유럽 재즈 연주자들은 음악이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 새로운 눈을 뜬 것 같습니다.

S.O: 예. 아마 유럽은 미국과 다른 관점에서 프리 재즈를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재즈는 사회 운동, 저항과 관련되어 있었지 않나요? 유럽에서의 재즈 역시 사회 운동과 관련은 있었지만 성격이 전혀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연주자들은 아주 많은 음악 문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민속 음악 말입니다. 유럽 연주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문화를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60년대 미셀 포탈 같은 사람이 그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청춘: 그렇다면 하나의 개성 있는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S.O: 일단 중요한 것은 모방에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배우기 위해서는 모방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대상을 잡고 그를 모방하는 거죠. 하지만 이후 변해야 합니다. 모방을 멈추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모방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실제 우리는 한 연주자를 추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종만하면 결코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나 뒤에 있을 뿐이죠. 그래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위험을 받아들여야 한합니다. 사실 이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청춘: 현재 당신은 스케치 레이블에서 앨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스케치 레이블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S.O: 물론 과거 OWL이나 다른 레이블에서 앨범 제작을 할 때도 다 만족스러웠지만 스케치 레이블은 더 좋습니다.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제공하고 있거든요. 사실 가장 좋은 제작자는 한 연주자가 하고자 하는 것을 제작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스케치는 최상입니다.

청춘: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과연 같은 현재의 음악을 할 수 있었을까요?

S.O: 아닐 수도 있겠죠. 사실 난 프랑스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프랑스에는 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거든요. 연주와 녹음 환경도 더 좋은 것 같고요.

청춘: 그렇게 좋은 환경이라도 아쉬운 부분은 있지 않은가요?

S.O: 있습니다. 공연에 대한 부담이죠. 프랑스에는 공연을 할 기회는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픈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공연 기획자들에게는 흥행성이나 제작비 규모가 문제가 되는데 그런 것 따지다 보면 연주자가 의도한 공연과는 성격이 다른 공연이 되곤 합니다.

청춘: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O: 뭘요. 모처럼 아주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특히 제 음악을 좋아하시니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서로 뛰뚜와이에(Tutoyer 서로 경어를 쓰지 않고 친구처럼 말하는 것)하죠.

청춘: 그럴까요?

S.O: 그러지. 앞으로 언제 또 만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청춘: 그러지. 뭐. 아무튼 오늘 인터뷰 잘 사용하지. 고맙군.

2 COMMENTS

  1. 인터뷰가 궁금해서 보니, 요기 있었네요.
    마지막 부분…ㅋㅋ

    ‘침묵은 그냥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는 역동적 공간’이란 말..멋지네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침묵이 존재의 의미를 찾는 순간입니다.

    여백을 생각하면서 다시 들어봐야 겠습니다..

    • 저도 모처럼 다시 읽어봤습니다. 파리의 작은 카페에서 녹음기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다시 생각나네요. 이후 메일도 몇 차례 주고 받았는데…ㅎ 아무튼 제가 왜 이 친구의 연주를 좋아하는지 이해하실 것 같네요.

      그리고 제가 한 인터뷰지만 다른 인터뷰보다 깊이가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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