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Gabarek 내한공연 인터뷰

재즈 색소폰 연주자로서는 드물게 노르웨이 출신인 얀 가바렉이 이번 2월 26일 한국을 찾아온다. 2002년 힐리어드 앙상블과 함께 한 프로젝트성 공연에 이어 이번에는 그의 색소폰 연주를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는 쿼텟을 이끌고 두 번째 방한을 하게 되었는데 이에 앞서 특별히 전화 인터뷰가 허락되었다. 이런 훌륭한 뮤지션을 만난다는 것은 항상 행복하다 못해 약간은 떨리는 순간인데 이번 그와의 인터뷰는 필자를 더욱 긴장되게 만들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 차가운 이미지에 성격도 조금은 까다롭게 보였고, 표정을 볼 수도 없이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만 집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그의 목소리는 여유 있고 따뜻했으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적인 대답이 많은 게 인상 깊었다.

인터뷰 중 많은 부분이 “이유가 뭐냐?” “특징은?” “계획은?” 등 틀에 박힌 질문의 연속인데 얀 가바렉은 이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지도 않다” 라고 단정적으로 대답했지만 모든 대답에 마지막에 도착하는 귀결은 모두 ‘임프로비제이션!’이었다. 어떤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보다는 즉흥 연주를 좋아하는 그는 삶 자체도 즉흥적인 것 같았다. 이런 그가 한국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우리도 만나봐야 하지 않겠는가?

질문지 작성 : 낯선 청춘

전화 인터뷰 : 김성희

MMJAZZ : 인터뷰를 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한편 당신같이 훌륭한 뮤지션과 직접 통화를 하니 떨리기도 한다.

얀 가바렉 : 걱정마라. 나 전혀 위험한 사람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다. 후후

MM : 고맙다. 지난 2002년 2월, 힐리어드 앙상블과의 첫 내한공연 이후 이번 공연이 한국에서의 두 번째 공연이 된다. 다시 한국을 찾게 된 소감과 며칠간의 체류 중 기대하고 있는 것을 말해 달라.

얀 : 지난 번 한국에서의 경험은 정말 좋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하루 반이라는 짧은 체류 기간이어서 안타까웠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오래 머물지는 못하겠지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으면 한다.

MM : 아마도 이번 공연은 당신 그룹의 앨범인 <Rites>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되는데, 어떤 공연을 펼쳐줄 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

얀 : 지난번 공연은 영국의 힐리어드 앙상블과 함께한 특별한 프로젝트성 공연으로 4명의 싱어가 함께 했었다. 이번에는 보컬이 없고 아주 리드미컬하고 즉흥연주가 중심이 된 다이내믹한 연주가 될 것이다.

MM : 이번에 내한 공연을 펼치는 그룹의 멤버들은 모두 자신만의 음악성이 확실한 뮤지션들이어서 더욱 기대된다. 어떻게 이들과 함께 그룹을 만들어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얀 : 모두 10년이 훨씬 넘게 함께 해온 친구들이다. 피아노와 키보드에 Rainer Bruninghaus, 베이스에 Eberhard Weber, 드럼과 퍼커션에 Marilyn Mazur가 담당할거다. 모두 즉흥 연주가 뛰어난 뮤지션들이고 각자가 작곡도 하고 솔로 공연도 활발히 하기 때문에 솔로 연주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MM : 솔로 연주를 펼칠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연주를 하는가?

얀 : 음악은 나의 전부이고 무대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다양한 시도할 뿐이다. 특별한 생각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MM : 한편 당신의 음악은 시각적인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나는 당신의 영상 음악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앨범 <Visible World>의 한 수록 곡의 뮤직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파도와 산, 새 등이 등장하는 그 영상이 당신의 음악을 들으며 그대로 상상할 수 있던 것들이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당신은 작곡을 할 때 이러한 이미지들을 미리 고려하는가?

얀 : 그렇게 특정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곡을 쓸 당시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거기에 맞는 곡을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지금 여기서 창밖에 보니 하늘, 산과 온통 눈 투성이이다. 지금 곡을 쓴다면 아마 눈 덮인 산에 관한 멋진 곡을 쓰겠지.

MM : 한국도 어제 눈이 많이 내렸고 오늘 좀 추워졌다.

얀 : 와우! 떨어져 있어도 우린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 거군.

MM :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은 음악적 이미지 때문인지 여러 매체에서 연주하는 당신을 경건한 종교적 구도자에 비유하곤 한다. 이러한 점을 당신도 알고 있는지, 실제의 당신은 어떤지 궁금하다.

얀 : 글쎄, 그건 듣는 사람과 성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는 내 음악이 별로 종교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거다.

MM : 당신은 존 콜트레인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당신의 초기 앨범들이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내 생각에는 단지 존 콜트레인이 연주 스타일에만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실제 당신에게 존 콜트레인은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얀 : 내가 처음 존을 알게 된 것은 14살 때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그의 연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는데 당시 우리 가족이나 주위에는 음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고 나도 그 전에는 음악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당시 존의 연주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파워풀한 것이었고, 나의 마음속에 직접 파고 들어 14살 어린 소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때부터 찾기 시작해서 ‘존 콜트레인-테너 색소폰-재즈’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나는 단지 존처럼 되고 싶어서 재즈를 시작하고 존처럼 색소폰을 연주하고 싶었다. 존을 알기 전의 나는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스키와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MM : 축구를 좋아했으면 체격은 좋았겠다.

얀 : 헤헤, 내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소파에 앉아서 TV로 보는 것을 좋아할 뿐이어서 몸매는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스키나 스케이팅은 직접 한다. 요즘도 자주 즐기고. 여기 노르웨이에서는 흔한 운동이니까.

MM : 그 외에 영향을 받은 선배나 동료 연주자가 있는가?

얀 : 너무 너무 많다. 가끔 젊은 뮤지션들한테도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다. 여러 뮤지션과 함께 일하는 것은 나의 음악적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고 그런 뮤지션들은 백 명도 넘기 때문에 지금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MM : 당신의 차갑고 명확한 색소폰 톤 컬러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러한 당신만의 색소폰 사운드는 연습 중에 우연히 발견된 것인가? 아니면 음악적인 고려를 통해 만들어진 것인가?

얀 : 글쎄, 사운드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매일 연습을 통해서 내면에서 상상한 것들이 점차 성장해서 밖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통해 나의 사운드를 찾아낸다. 플루트, 클라리넷과 같은 클래식 악기는 정확한 그 악기만의 소리가 있지만 색소폰에는 그런 어떤 정해진 사운드가 없다. 매우 개성 있는 악기이고 새로운 사운드를 찾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것이 창조적인 작업이어서 흥미롭다.

MM : 평소 감상하는 음악들은 주로 어떤 것인지. 당신의 음악으로 보아 매우 다양한 음악이 당신의 감상 목록에 들어 있을 것 같은데.

얀 : 솔직히 너무 바빠서 음악을 편안하게 충분히 듣지는 못한다. 나의 영웅인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마일스 데이비스 등과 같은 옛날 곡들을 주로 듣는다.

MM : 한편 최근 들어 당신은 색소폰 외에 스스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새로운 첨단 장비가 당신 음악과 사운드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얀 : 오래 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재미가 들었다. 사운드 프로세싱 테크놀로지는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에 음악과 영화 작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내가 원하는 미세한 사운드에 접근하거나 이를 잡아내기 쉽기 때문에 작곡 과정에도 도움이 된다. 음악에서 뿐 아니라 내 취미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MM : 같은 멤버이긴 하지만 앨범 녹음과 공연은 분명 다른 것이다. 공연에서는 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 편인가?

얀 : 그전에는 스튜디오에서도 자유롭고 어쿠스틱한 연주를 했다. 최근에는 좀 시간을 들여서 녹음하는 경향이 있다. 홈 스튜디오도 많이 이용하는데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무대서는 즉흥 연주를 하고 그날의 느낌을 살리려고 할 뿐 어떤 인위적인 노력은 안 한다.

MM : 색소폰뿐만 아니라 당신의 음악은 사운드에 있어서도 상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ECM의 사운드에 대한 배려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운드는 스튜디오 연주가 아닌 공연을 통해서는 쉽게 만들기 어려운 것 같다. 당신 스스로는 여러 곳에서 공연을 펼치면서 앨범 사운드가 제대로 재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는가?

얀 : 공연은 현실감이 있고 다이내믹하고 막 움직이는 느낌이다.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어서 좋다. 앨범과 같은 사운드를 내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쉬울 것도 없다.

MM : 당신의 앨범 <Afric Pepperbird>를 ECM 레이블에서 제작한 후 계속 ECM에서만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그래서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 같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당신의 초기 앨범의 음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는가?

얀 : 그렇다. 1969년 처음 알게 된 후 우리는 지금까지 좋은 친구이며 음악이나 다른 면에서 취향이나 기호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당시 ECM은 작은 회사로 나는 규제 없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개방적이었고 누구든지 내가 함께 연주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앨범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이런 작업 환경이 나에게 좋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 인연을 맺고 있을 수 잇는 것 같다.

MM : 앨범을 제작할 때 당신은 먼저 앨범 전체의 방향을 설정하고 작곡을 하는가? 아니면 당신 작곡 중 이야기가 될만한 것들을 골라 앨범의 방향을 결정하는가?

얀 : 때에 따라 다르다. 1년 동안 투어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나면 곡을 쓰고 레코딩을 해 놓을 때도 있고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다듬을 때도 있었다. 이건 하나의 방법일 뿐이고 매번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MM : 그리고 작곡을 할 때 당신은 즉흥 연주에 어떤 식으로 배려를 하는가?

얀 : 그럴 필요는 없다. CD는 주로 혼자서 들을 때가 많고 공연은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곡에 따라 앨범으로 듣는 게 좋을 때가 있고 직접 연주를 듣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상황, 장소가 다르고 각각의 매력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곡을 쓸 때 즉흥 연주에 대한 배려를 따로 하지는 않는다.

MM : 당신은 계속 여러 민속 음악에 관심을 표현해 왔다. 특히 앨범 <Rites>에서의 민속적 요소들은 단지 크로스 오버의 대상이 아니라 당신의 음악을 한 단계 새로운 차원으로 더 나아가게 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민속 음악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알고 싶다.

얀 :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가 민속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서로 공통점이 있어서다. 인간의 신체조건, 사람들의 생각, 사는 방식은 결국 닮은 점이 많고 민속 음악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생활에 기본이 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나라는 달라도 기본적인 음색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런 면이 좋을 뿐이다.

MM : 한국 민속음악은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얀 : 지난 번 갔을 때 한 젊은 뮤지션이 연주하는 전통 음악을 들었다. 아주 흥미롭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미안하다. 한국사람 이름 외우는 게 쉽지가 않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더욱 신비롭게 들렸는지도 모르겠지만 뮤지션으로써도 꼭 들어야 할 것 같다. 이번에 갈 때도 가능한 시간을 내서 들어보고 싶다.

MM : 당신이 생각하는 컨템포러리 재즈에 대해서 알고 싶다.

얀 : 우리가 알고 있는 재즈는 1920년대에 시작해서 60년대 많은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젊은 뮤지션들도 많고 음악도 많이 다양해졌다. 가끔은 재즈라고 불러야할지 모르는 음악도 많은 것 같다.

MM : 그 동안 당신은 여러 연주자와 매우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를 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매우 창조적이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할 계획은 없는지. 그리고 함께 연주하고픈 인물은 없는지 궁금하다.

얀 : 계획은 안한다. 미리 마음 먹고 실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즉흥적인 발생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내 눈앞에 어떤 영감을 주는 것이 나타나면 그 때 하려고 한다.

MM : 당신 삶이 바로 ‘임프로비제인션’같다.

얀 : 맞다. 그렇다.

MM : 한편 당신의 많은 팬들은 당신 그룹의 새 앨범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새 앨범에 대한 계획은 없는가?

얀 : 이미 녹음, 믹싱이 모두 끝난 상태다. 올해 3,4월이면 발매 예정이다.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앨범인데 재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재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퀄텟은 아니고 일렉트릭 악기나 홈 스튜디오 장비도 많이 쓰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여러 게스트들도 함께 참여했다.

MM : 이번 서울 공연에서 새 앨범 곡들을 연주할 예정은 있는지?

얀 : 없다.

MM : 사실 당신의 한국에서의 인기는 키스 자렛 과의 활동 당시 녹음했던 앨범 <My Song>의 타이틀 곡 연주가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몇몇 관람객들은 이 곡을 앵콜 곡으로 신청할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공연의 내용은 어느 정도 정해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한국 공연에서 연주해줄 의향은 없는지.

얀 : 한국의 팬에게 미안하지만 연주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곡들은 30년 전에 연주했던 것이고, 키스 자렛과 나의 공동 작품이다. 그는 나의 절친한 친구이고 그 없이 나 혼자 그 곡을 연주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번 서울 공연에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 곡은 연주할 수 없을 거다.

MM : 끝으로 당신의 공연을 기대하고 있는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그럼 서울에서 보자. 보면 친절한 사인 부탁한다. (웃음)

얀 : 지난 번 한국에서의 경험이 너무 좋았다. 나도 이번 한국 공연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물론 사인인 해 주겠다. 즐거운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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