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있었다. 또 그의 거문고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사랑했던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자신의 연주를 알아주는 종자기로 인해 백아는 늘 연주가 즐거웠다. 그러나 어느 날 종자기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고사성어 지음(知音)의 배경으로 전해지는 중국의 오랜 이야기다. 지음이라는 표현은 현재 마음이 통하는 친한 친구 관계를 가리킬 때 사용되지만 순수하게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연주자는 언제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최소한 음악은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연주자만큼이나 이를 감상하고 즐거워할 청자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연주자에게 가장 필요한 1차적인 감상자는 어쩌면 음반사의 제작자일 지도 모른다. 그가 있어야 음반 녹음과 발매가 가능한 것이고 또 그래야 많은 애호가들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일 텐데 이 시대에는 적절한 감상자를 만나지 못한 연주자들이 참 많다. 보통 이런 경우 우리는 때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라는 식의 표현을 쓴다.
피아노 연주자 에디 히긴즈도 마찬가지의 경우였다. 그는 분명 50,60년대에 등장하여 웨인 쇼터, 리 모건 등의 명인들의 앨범에 사이드맨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개인으로서의 그의 존재는 그다지 인식되지 못했다. 그의 연주가 인정을 받기에 50,60년대의 재즈 무대에는 너무나도 많은 연주자들이 확고한 자신의 것으로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에디 히긴즈는 그저 평범한 재즈 피아노 연주자 중의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에디 히긴즈 본인이 이러저러한 재즈 담론들과 무관한 편안한, 자족적인 삶을 더 선호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50,60년대의 모습은 아주 희미하게 재즈사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후의 활동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성 보컬 메레디스 드 암브로시오와 결혼을 하고 그녀의 노래에 반주를 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피아노 연주자로서 에디 히긴즈의 모습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연주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본인이었고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를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던 경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현재 비너스 레이블을 이끌고 있는 테츠오 하라가 그 주인공이다. 테츠오 하라는 에디 히긴즈의 연주에서 50,60년대 하드 밥 시대의 음악적 성과는 물론 에디 히긴즈 특유의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정서를 알아보았다. 그것으로 에디 히긴즈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60대의 나이에서 그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 출발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피아노에는 시대의 연륜이 만들어낸 낙관과 여유가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동그란 피아노 터치는 싱그러운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노장의 넉넉함과 젊은 감성의 신선함이 만난 그의 음악은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함께 시대의 가벼움을 복고적인 향취로 보완하려는 젊은 감상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겐 에디 히긴즈가 몇 살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40대 정도가 됐을법한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노 연주자가 아닐까 상상했을 뿐이다. 사실 연주자의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니 생존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음악이 현재에서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면 그 음악은 시대를 떠나 현재의 음악이 아닌가? 아무튼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에디 히긴즈의 지음들은 갈수록 증가했다. 우리 한국에서도 그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감상자들이 갈수록 증가했다. 오스카 피터슨, 케니 드류, 듀크 조던 이후 새롭게 사랑 받는 스탠더드 피아노 연주자로 그는 현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테츠오 하라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비너스에서 발매된 에디 히긴즈의 10여장 되는 앨범들은 언제나 한결 같은 분위기로 늘 그 자리에서 감상자를 맞이했다. 그는 여전히 피아노로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했고 감상자들은 그의 피아노 노래에서 편안함과 삶의 안락함을 느꼈다. 그런데 앨범이 거듭될수록 맛 좋은 그의 연주에 다소 싫증을 내는 무리들이 생겼다. 모든 것은 일상화가 되는 순간 그 맛, 색, 향기를 잃지 않던가? 혹자들은 그의 피아노 연주가 너무 가볍다, 달콤함만을 추구한다, 변화가 없다는 식의 견해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일견 이러한 발언들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에디 히긴즈의 모습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며 또한 그 스스로도 미묘한 변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해 스트링 오케스트라, 비브라폰과 함께 온화한 쿨 재즈를 연주하는 그를 만날 수 있었고 또한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차분하게 오래된 스탠더드 곡들의 멜로디를 되짚어가는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If Dreams Come True>앨범에서 우리는 같은 듯하면서도 달라진 그의 연주를 듣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앨범은 이미 우리에게 기분 좋게 각인된 에디 히긴즈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그의 피아노 터치는 맑고 부드러우며 이른 아침 풀잎에 떨어지는 이슬 방울처럼 싱그럽다. 그리고 익숙한 스탠더드 곡을 선택해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노래를 불러나가는 그의 연주 스타일도 그대로 잘 살아 있다. 게다가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제이 레온하트(베이스) 조 아시온(드럼)의 존재도 여전하다. 이들은 싫증을 내지 않고 언제나 이번 연주가 처음 하는 연주인 것처럼 싱싱하고 풋풋한 연주를 들려준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에디 히긴즈의 앨범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의 절반 이상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에디 히긴즈는 미묘하지만 새로운 질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어느 때보다 음악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위기에 연주가 종속된다는 식의 오해를 종식시키려는 듯 그의 편안한 연주 속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50년대 하드 밥과 쿨, 엄밀하게 말하면 쿨 밥의 색채가 보다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다시 나이를 언급하게 되는데 나이 든 연주자가 들려주기에는 너무나 젊은 탄력과 세기가 느껴진다. 예를 들어 “St. Louis Blues”를 들어보자. 이 곡에서 그의 피아노 터치나 진행은 같은 비너스 레이블의 젊은 연주자들보다 직선적이고 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은 이 앨범만으로 잘 느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나 미묘하기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 동안 그가 만들어내는 달콤한 분위기에 이끌려 연주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면 이 기회에 그의 연주를 재청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에디 히긴즈는 우리가 기대하는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가 실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언제나 늘 변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같은 자리를 지키는데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삶의 여러 풍파 속에서도 늘 같은 만족, 여유,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질리지도 않고 즐겁게 지나간 옛 시대의 음악들을 노래하듯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음악에 담긴 자연스러운 여유는 바로 이러한 것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따라서 만약 우리가 그에게 큰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에디 히긴즈 본인과 상관없는 우리만의 폭력적인 규정이 아닐까? 오히려 늘 그 자리에 있기에 편안한 음악으로 그의 음악을 즐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에디 히긴즈의 음악은 언제나 쉽게 연주하고 쉬운 감상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그의 음악은 끝없는 신뢰와 매니아적인 애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이번 앨범에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곡이 연주되고 있어 반갑다. 바로 이 은미가 노래해서 큰 인기를 얻었던 “기억 속으로”가 연주된 것이다. 지난 2004년 11월 나는 일본에 가서 비너스 레이블의 테츠오 하라씨와 레이블의 음악적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비너스의 앨범들을 수입하고 있는 한국의 강앤뮤직에서 한국에서도 그의 인기가 꽤 높으니 한국 노래를 연주하고 싶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4곡의 후보곡을 받았는데 에디 히긴즈와 테츠오 하라는 서로 합의도 없이 “기억 속으로”를 선택했다고 한다. 듣는 순간 아! 이 곡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나? 기왕이면 좀 더 길게 연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기억 속으로”에 대한 에디 히긴즈의 해석은 의외로 원곡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다. 가사 없이 오로지 멜로디만 듣고 지나간 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아쉬움을 느끼고 이를 표현한 것이다. 비너스 레코드의 사무실에서 테츠오 하라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몇 차례 “기억 속으로”를 되돌려 감상했다. 그리고 곡의 정서를 이야기 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다시 이번 새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었다. 지금은 자정이 가까워지는 일요일 밤이다. 한 주의 피곤함이 슬며시 사라지면서 새로운 한 주의 번잡함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 시간 에디 히긴즈의 피아노 연주가 들린다. 나는 편안함을 다시 느낀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아! 그리고 이번 에디 히긴즈의 새로운 앨범의 한국 반에는 특별히 2004년도 비너스 레이블의 대표작 모음집이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런 보너스 앨범이 있어야 더 판매가 잘 되는 한국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쉬움이기도 하지만 앨범 자체로 보면 단순한 보너스 앨범을 넘어서는 충실함이 있다. 특히 2004년 앨범이지만 이번 에디 히긴즈의 새 앨범과 함께 국내에 소개되는 해롤드 메이번, 밥 킨드레드의 새 앨범에서도 한 곡씩 선곡되어 그 매력이 더하다. 비너스의 복고적인 취향 하에 모인 유럽과 미국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들이 담겨 있는데 단순한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완성된 앨범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큼 배열이 유기적이기에 감상에도 아주 큰 만족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