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Shine – Come Shine (Curling Legs 2001)

재즈는 새로움에 갈증을 느껴 매번 미지의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음악이다. 클래식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룩해온 역사가 재즈에서는 100년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재즈가 이렇게 과감한 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스탠더드라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실험하더라도 각 선구자들은 이를 스탠더드 곡을 통해 현실화 시키면서 과거의 익숙한 재즈와 새로운 재즈를 비교할 수 있었고 나아가 감상자들에게도 낯섦을 순화시켜 신선함으로 치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연주자들은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면서 자신의 연주가 과거의 것과 어떻게 유사하고 다른지를 증명한다. 특히 확고한 음악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명시하고픈 연주자들은 꼭 스탠더드를 연주한다. Come Shine 역시 스탠더드의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자신들의 깊은 음악성을 드러내는 그룹에 해당한다.

 

스탠다드 연주를 위해 한 자리에 모이다.

 

Come Shine은 라이브 마리아 로겐(보컬), 얼렌드 스콤스볼(피아노), 손드레 마이스표르드(베이스), 호콘 요한센(드럼)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이 그룹의 네 멤버들은 모두 자국 노르웨이에서 솔로 연주자로 확고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그 중 라이브 마리아 로겐은 일렉트로 재즈 성향의 밴드 Wibutee에서 보컬을 담당하여 이미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역시 알레스 뮤직을 통하여 소개되었었던 라드카 토네프의 짧은 삶과 음악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된 Radka Toneff Memorial 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한편 얼렌드 스콤스볼은 칙 코리아의 음악을 빅 밴드 곡으로 편곡하고 지휘하는 것을 비롯하여 노르웨이의 대중 음악 편곡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는 키스 자렛, 빌 에반스 등 여러 대가들의 유산을 새롭게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한 연주를 펼치고 있다.  이 외에 손드레 마이스 표르드와 호콘 요한센 역시 여러 세션 활동 등을 통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해왔다.

이렇게 팝 성향의 대중 음악부터 아방가르드 음악까지 아우르는 활동을 보인 네 멤버들은 1998년 Come Shine을 결성하고 자신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투영하여 기존의 스탠더드 곡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 결과물로 지금까지 두 장의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앨범 <Come Shine>(2001)과 두 번째 앨범 <Do Do That Voodoo>(2002)가 된다. 이 두 장의 앨범들은 모두 노르웨이에서 크고 작은 상들을 수상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또 상업적으로도 좋은 성공을 거두었다.

앨범을 감상하게 되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바로 라이브 마리아 로겐의 보컬이다. 순수한 백인이면서도 그녀의 보컬에는 백인과 흑인의 장점들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굳이 비유를 한다면 디 디 브리지워터의 격정과 파트리시아 바버의 시적인 감수성을 겸비했다고나 할까? 실제 그녀의 노래들을 듣다 보면 그녀가 폭넓은 음역과 깊이 있는 성량, 매끄럽게 리듬을 타고 노래하는 능력과 명확한 발음으로 곡의 내면적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 등 보컬에게 요구되는 여러 요건들을 두루 겸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앨범 역시 일차적으로 라이브 마리아 로겐의 보컬이 지닌 매력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만약 앨범이 여기에 머물렀다면 그 훌륭한 보컬에도 불구하고 그저 평범한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의 매력은 그룹 연주에 있다.

사실 보통 피아노 트리오와 보컬로 구성된 편성이라고 한다면 보컬이 중심이 되고 피아노 트리오가 보컬의 반주를 하는 경우를 상상하기 쉽다. 과거 엘라 핏제랄드나 사라 본 등의 유명한 재즈 보컬들은 이러한 편성과 형식으로 많은 좋은 노래들을 들려주곤 했다. 필자 역시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라이브 마리아 로겐의 목소리에 정신이 팔려 다른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그래서 “아! 이여자 노래 참 잘 한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감상을 거듭할수록 이 앨범이 단순히 라이브 마리아 로겐 중심의 앨범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 보컬보다는 보컬이 포함된 전체 사운드가 주는 감동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브 마리아 로겐이라는 보컬을 발견하면서 간과했었던 Come Shine의 매력을 뒤늦게야 발견한 것이다. 실제 앨범의 각 수록 곡들을 감상해 본다면 라이브 마리아 로겐의 보컬만큼이나 트리오의 연주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얼렌드 스콤스볼의 피아노가 가장 두드러지는데 아름다운 멜로디를 담백하게 만들어 내는 그의 피아노는 마치 마리아 로겐의 듀엣 상대처럼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보드랍게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곡을 이끄는 또 다른 중요 요소로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편 마리아 로겐 역시 언제나 다른 멤버들의 연주에 귀를 열고 반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앨범에는 보컬과 피아노, 보컬과 베이스 간의 아기자기한 대화의 순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보컬과 그 반주가 아닌 그룹 차원의 연주와 노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각 연주자들의 뛰어난 자기 실력뿐만 아니라 명확한 지향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앨범에서 Come Shine의 지향점은 스탠더드 곡의 새로운 해석을 통한 자기 표현이다. 그리고 이것은 연주 이전에 섬세하고 새로운 편곡을 통해서 드러난다. 사실 얼렌드 스콤스볼에 의해 주도된 편곡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또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되려는 듯 파격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원래의 스탠더드 곡이 지닌 멜로디는 전혀 손상 받고 있지 않으며 그 정서적 느낌 또한 그렇게 크게 변형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Come Shine의 편곡이 매우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이들의 편곡이 음악적 실험보다는 각 멤버들의 공감된 정서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Come Shine이라는 그룹에 맞추어진 편곡이라고 할까? 특히 연주의 진행 방식에서 드러나는 절묘한 내적인 리듬감은 이 앨범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된다. 피아노의 들고 나옴, 사운드 강약의 변화, 그리고 악기간의 절묘한 조화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설령 같은 속도의 리듬 위라고 하더라도 마리아 로겐의 보컬과 그녀를 감싸는 연주 파트는 매우 다채로운 변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정해진 리듬과 상관없이 곡의 진행에 극적인 맛을 부여한다.

추천의 변

이 글을 위해 Come Shine의 홈페이지(www.comeshine.com)에 가보니 어느새 세 번째 앨범이 발매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앨범인 모양인데 여전히 연주와 노래의 대상은 스탠더드 곡이었다. 여전히 스탠더드 곡은 이들에게 많은 미지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대상인 듯하다. 재즈가 시대를 지배하는 음악이 되지 못하고 (연주자나 감상자 모두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성향을 띄어감에 따라 연주자가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보다 더 많은 이 시기에 어쩌면 Come Shine의 스탠더드에 대한 애착은 복고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비추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증명하듯이 이들의 작업은 자작곡을 연주하는 다른 누구보다 새롭고 참신한 맛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움은 자신들의 연주 능력에 대한 확신과 재즈를 변질이 아닌 발전의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려는 Come Shine의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Come Shine을 재즈의 새로운 방향을 선도하는 또 하나의 그룹으로 높게 평가하고 이들의 음악을 여러분께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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