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제인 버킨의 내한 공연 리플릿 해설을 위해 쓴 글이다.
아직까지 프랑스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세르쥬 갱스부르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었던 2001년, 그를 추억하기 위해 프랑스의 각종 매체는 여러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 중 한 TV에서는 주말 쇼 프로그램 시간에 작곡가, 가수, 시인, 영화 배우, 영화 감독, 시대의 기인으로서의 세르쥬 갱스부르의 모습을 여러 자료 화면과 실존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차근차근 재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당시 필자는 프랑스에 체류 중이었기 때문에 정말 세르쥬 갱스부르의 장단점까지 잘 짚어낸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였다. 바로 젊었을 당시를 연상시키는 수수한 청바지에 스웨터 차림의 제인 버킨이 “Je Suis Venu Te Dire Que Je M’en Vais 떠난다고 당신에게 말하려고 왔어요”를 노래하는 것으로, 이 곡을 노래하던 제인 버킨이 처연하게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녀의 눈물은 비록 그녀가 현재 영화 감독 자끄 드와이용(Jacques Doillon)의 아내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한때 세기의 커플로 프랑스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제인 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의 관계를 다시 한번 추억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만남
사실 제인 버킨은 가수이기 이전에 영화 배우였다. 그것도 칸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사이코 스릴러 영화 <Blow Up> 등에 출연하면서 가능성을 인정 받은 배우였다. 따라서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운명적인 만남도 노래가 아닌 연기를 통해서였다. 두 사람은 1968년 영화 <Slogan>에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가까워졌다. 당시 세르쥬 갱스부르는 브리짓 바르도와의 염문을 마감하고 있던 시기였고, 제인 버킨은 007 시리즈 등 영화 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존 배리와의 결혼 생활을 끝낸 상태였다. 아무튼 이 두 사람은1969년부터 파리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세르쥬 갱스부르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인생에서는 연기가 최우선이었을 뿐 전문적으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물론 뮤지컬 <Passion Flower Hotel>에 출연하면서 잠깐 노래를 불렀던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연기의 일부분이었을 뿐이었다. 사실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를 하기에 너무나 높았고 또 불안했다.
순수, 그 이상의 관능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그저 평범한 일반인으로서의 선입견이었을까? 세르쥬 갱스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순수함과 관능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래서 곧장 제인 버킨의 목소리를 위해 “Jane B”라는 곡을 작곡했다. 쇼팽의 전주곡을 동기로 삼고 있는 이 곡은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가성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창법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가를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제인 버킨 스스로에게도 인식시켜주었다. 그러나 세르쥬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이 진정한 음악적 동반자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Je T’aime……Moi Non Plus 사랑해……난 아닌데”의 성공을 통해서였다. 사실 이 곡은 이미 1968년에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와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듀엣으로 녹음되었었다. 하지만 브리짓 바르도는 노래가 담고 있는 육감적인 면에 부담을 느꼈는지 이 곡의 음반 발매를 거절했다. 그래서 세르쥬 갱스부르는 1969년에 제인 버킨과 이 곡을 다시 녹음했는데, 아쉽게도 프랑스 대중 음악계에서 상당한 부정적 반응을 유발시켰다. 곡에 담긴 뇌쇄적이다 못해 외설적이기 까지 한 분위기가 성에 대해 관대하고 유연하다는 프랑스에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라디오에서는 이 곡을 방송 금지했고 심지어 바티칸에서도 이 곡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평단의 이러한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대중적으로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또 다른 곡 “69 Année Erotique” 처럼 이들에게 1969년은 관능적인 해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능성은 이후 두 사람의 음악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필수 요소가 될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제인 버킨의 목소리를 통해 발현된 세르주 갱스부르의 음악은 단순한 노래의 차원을 넘어 시대와 사회의 가치 체계를 뒤흔든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제인 버킨은 70년대를 대표하는 섹스 심볼이 되었다. 사실 이것은 현재의 미인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몸매가 그다지 볼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다가, 특히나 그녀의 빈약한 가슴은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섹시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의 깡마르고 보이시(Boyish)한 몸매와 거친 호흡과 함께 신음하듯 뱉어내는 노래와의 불일치에서 새로운 관능을 발견했던 듯싶다. 분명 소녀처럼 여린 이미지의 인물이 관능적인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것은 일종의 로리타 콤플렉스적 환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각종 파티나 클럽 등에서 보여주었던 세르쥬 갱스부르의 데카당스(Decadence)한 분위기와 함께 맞물려 그녀의 24시간은 70년대 프랑스 미디어의 초점이 되었다.
예술과 사랑, 영혼의 동반자
한편 제인 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는 서로에게 있어 또 다른 자아, 알터 에고(Alter Ego)였다. 실제 당시 여러 여자 가수들에게 곡을 만들어 주었던 그는 제인 버킨과의 만남 후 주로 그녀를 위해서만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모두 제인 버킨의 순수와 관능이 공존하는 이미지에 부합되었다. 한편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스부르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어 그의 최고 명작 중의 하나인 앨범 <L’histoire De Melody Nelson 멜로디 넬슨의 이야기>을 만들게 했으며-이 앨범에서도 제인 버킨은 보컬로 참여하고 있다.- 나아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Je T’aime…… Moi Non Plus> 같은 영화를 감독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이 두 사람이 다른 연예인 커플과 다르게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그저 세인의 얕은 관심만 증폭시키는 일반적인 연예인 커플들과 달리 서로에게 창조적 자극을 주었으며, 또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순탄하게 마감되지 못했다.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스부르를 통해 확고한 자아를 확립해 갔던 반면 세르쥬 갱스부르는 갈수록 자기 파괴적인 쪽으로 자신을 몰아갔다. 그래서 결국 제인 버킨은 1980년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르쥬 갱스부르를 참지 못하고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두 사람의 정신적 관계는 그리 쉽게 끊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스부르를 떠난 후 다시 영화 감독 자끄 드와이용과 결혼했지만 여전히 음악에서만큼은 세르쥬 갱스부르의 파트너였다. 그래서 1983년, 앨범 <Baby Alone In Babylone>을 통해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제인 버킨이 그녀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한다는 “Les Dessous Chics 세련된 여자 속옷”이 수록된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 세르쥬 갱스부르는 여전히 육체적 정신적 침체기에 빠져 있었고, 따라서 그의 솔로 앨범은 60년대와 70년대에 보여주었던 의미심장한 가사와 독특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그만의 음악적 특징을 더 이상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제인 버킨의 이 앨범에서만큼은 그만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새롭게 살아있었다. 여전히 그에게는 제인 버킨이 창조적 영감을 주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세르쥬 갱스부르를 떠나 보내고
세르쥬 갱스부르는 1991년 3월 2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그의 솔로 앨범이 아닌 제인 버킨의 <Amour Des Feintes 위선자들의 사랑>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녀에게 커다란 슬픔이었고 음악에서만큼은 아직까지 세르쥬 갱스부르의 그림자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음악활동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실제 그녀는 “나는 노래를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앨범을 녹음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 뒤 그동안 그녀의 삶에 또 다른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던 연기자로서의 활동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세르쥬 갱스부르의 추억은 다시 그녀를 노래하게 만들었다. 1996년, 그녀는 세르쥬 갱스부르가 생전에 자신뿐만 아니라 줄리엣 그레코(Juliette Greco), 브리짓 바르도, 프랑소아즈 하디(Françoise Hardy), 달리다(Dalida) 등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던 곡들을 모아서 새롭게 노래한 앨범 <Versions Jane>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단순히 세르쥬 갱스부르에 대한 헌정을 넘어 그의 모든 것을 그녀의 것으로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998년 제인 버킨은 세르쥬 갱스부르의 곡이 한 곡도 포함되지 않은 앨범 <A La Légère 가볍게>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알랭 슈송(Alain Souchon), 로랑 불지(Laurent Voulzy), 에티엔 다호 (Etienne Daho), 자지(Zazie)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대중 음악 작곡가들이 그녀의 이미지에 맞추어 그들만의 스타일대로 작곡한 곡들로 채워졌다. 세르쥬 갱스부르가 없는 제인 버킨을 만난다는 것은 프랑스 대중 음악계에도 큰 충격이었다. 정말 앨범 표지처럼 하얀 날개를 달고 세르쥬 갱스부르를 진정으로 떠나려 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필자 역시 새르쥬 갱스부르가 없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앨범에서 그녀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옷을 입은 성숙한 소녀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는 “이 앨범에 세르쥬 갱스부르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환영이 남아 있다”고 밝히며 의도적으로 그를 떠나려 하지 않음을 밝혔다.
새롭게 부르는 그의 노래, <아라베스크>
여전히 제인 버킨에게 있어 세르쥬 갱스부르의 추억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2002년도 앨범 <Arabesque>를 통해 다시 확인된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다시 세르쥬 갱스부르의 곡들을 노래한다. 그러나 단지 그를 추억하기 위해서 노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르쥬 갱스부르를 새롭게 현실로 불러내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녀가 택한 방법은 그의 노래를 새로운 풍경 속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앨범에는 “Elisa”, “Les Dessous Chics”, “Comment Te Dire Adieu 어떻게 당신에게 이별을 말할까요, “Cloleur Café 커피 색” 같은 세르쥬 갱스부르의 대표 곡들이 알제리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 쟈멜 베니엘(Djamel Benyelles)에 의해 알제리, 안달루시아, 그리고 약간의 집시적인 분위기로 새로이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랍 풍의 세르쥬 갱스부르를 택했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나는 쟈멜 베니엘과 작업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것 말고는 다시 세르쥬 갱스부르의 곡을 노래할 방법,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곡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노래를 그만 둬야 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오리엔탈리즘이기는 하지만 이국적으로 편곡된 세르쥬 갱스부르의 음악은 다시 한번 프랑스 대중 음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는 것이었고, 또 새로운 세대와 프랑스 외의 새로운 지역, 새로운 대중들에게 세르쥬 갱스부르를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한, 하지만 여전히 청바지와 스웨터가 어울리는 제인 버킨을 인식하게 했다.
즐거운 공연 아라베스크
우리가 만나게 될 공연이 바로 <Arabesque> 앨범의 내용과 같다. 이 앨범은 제인 버킨의 정규 앨범으로 인정 받고 있지만 사실 라이브로 녹음된 것이다. 일종의 특별한 이벤트 성격으로 시작된 공연이 큰 대중적 호응을 얻어 앨범과 세계 공연으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따라서 이번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 이 앨범을 미리 감상했다면 공연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의 경우 수록곡 “Comment Te Dire Adieu”에서 그녀에게 도움을 준 여러 사람들을 회상조로 언급하며 각각 감사의 뜻을 전하는 부분이 있는데, 쟈멜 베니엘의 애상 어린 바이올린 반주와 그녀의 목소리가 만드는 묘한 콘트라스트에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과연 프랑스가 아닌 한국 공연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무척 궁금하다.
한편 이번 공연은 이미 언급했다시피 세르쥬 갱스부르에 대한 추억보다는 새로운 세르쥬 갱스부르, 현재의 성숙한 제인 버킨을 만날 수 있는 공연이다. 그래서 공연의 분위기는 향수보다는 서로 웃고 즐기며 새로운 정을 나누는 축제적 즐거움이 우선한다. 따라서 이 공연에서 60,70년대의 제인 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를 떠올리려 하지 말자. 그보다는 오히려 두 사람간의 사랑과 음악에서의 동반자 관계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의 상태로 지속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