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의 성격을 지닌다. 재즈는 새로움에 경도되어 언제나 앞으로 전진하려고 한다. 따라서 재즈에 있어서 완성이라는 표현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완성되었다고 평가를 내리는 순간 재즈는 스스로 그 것을 버리고 새로운 영역을 찾아 도약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백년에 걸쳐 클래식 음악이 보여주었던 변화의 양상을 100여년의 짧은 시간동안 재즈는 숨가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짧은 역사에서 보여주었던 재즈의 변화, 새로움의 추구는 기존의 스타일과 단절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오늘의 재즈와 과거의 재즈를 비교감상하면 아무런 유사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당혹해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음악(재즈)를 완전한 다른 장르의 음악으로 보지 않고 여전히 재즈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 묶어두게 되는 것은 결국 새로움의 추구라는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새로움이라는 것은 이전의 것과 비교했을 때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기존의 사조가 될 수도 있고 연주 스타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들은 포괄적으로 재즈사나 음악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만큼 오랜 시간동안의 관람을 요구한다. 따라서 재즈를 막 듣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요원한 것이다. 그보다는 이런 비기너에게는 스탠다드 곡 감상이 가장 적합하다.
그렇다면 스탠다드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를 따진다면 우리말로는 표준정도가 될 것이다. 재즈에서 스탠다드의 의미는 그렇다고 이러이러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규범의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스탠다드는 인위적으로 어느 순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저 많은 연주자들에 의해서 널리 연주되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스탠다드라는 자연스럽게 정의가 내려진 것이다. 그래서 스탠다드 곡이 되기 위한 음악적 조건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즈의 초창기 자체 레파토리가 없었던 연주자들이 당시에 유행하던 영화나 뮤지컬 음악에서 곡들을 가져와 연주를 하면서 생긴 것부터 Art Blakey And The Jazz Messenger가 연주하여 유명해진 Moanin’처럼 재즈 연주자 재즈 연주 자체를 위해 만든 곡까지 스탠다드 곡은 다양하다. 그러나 무작정 연주자들이 많이 연주한다고 스탠다드라 부르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연주자가 많이 연주를 한다는 것 외에도 재즈 애호가들로부터 시대에 상관없이 사랑받는 곡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탠다드 곡들은 오랜시간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 정리한다면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에게 오랜시간동안 사랑을 받는 곡이 스탠다드라 할 수 있겠다.
재즈는 작곡자의 의도보다는 연주자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나는 음악이다. 이 때 스탠다드 곡은 연주자들에게는 열려있는 도전의 대상이 된다. 연주자들은 스탠다드 곡을 연주하면서 자신이 영향받은 연주 스타일이나 이전에 비해 무엇이 새로운가를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왜냐하면 스탠다드 곡은 재즈 사조, 연주 스타일과 상관없이 하나의 기본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던 좋던간에 그의 스탠다드 곡 연주는 다른 연주자의 같은 곡 연주와 비교의 선상에 올려지게 된다. 그러면서 더 좋다 아니다의 평가를 받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주자은 늘 같은 곡이면서도 또한 늘 새로운 곡같은 느낌을 만들어 내기에 부단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스탠다드 곡은 녹음된 음악을 지칭하기 보다는 악보상에 있으면서 아직 연주로 실현되지 못한 것을 지칭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연주자에 따라서 스윙, 밥, 쿨, 프리, 퓨전 등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스탠다드 곡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투스가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재즈를 순간의 음악이요. 따라서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재 진행형의 음악이라는 재즈의 가장 중요한 전형을 창출해 낸다. 현재의 시점에서 살펴보면 새로운 스탠다드 곡은 한두곡씩 생성된다고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아주 미미한 편이다. 이는 자신의 앨범을 위한 창작곡을 만들어 연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스탠다드 연주가 아직도 강한 원초적 싱심함으로 연주자들을 매혹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즈를 처음듣는 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되는 대로 막 음들을 나열하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내재된 법칙을 찾아 내는 것이다. 최소한 필자의 경우가 그랬다. 심지어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연주가 프리 재즈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테마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다면 이후에 전개되는 즉흥 연주가 보다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것은 한 곡을 여러 번 듣는 것보다 비슷한 다른 곡을 많이 들을수록 보다 확실해진다. 그래서 곡들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의 비교를 하게되면서 테마부분과 즉흥부분을 가려내기에 이르른다. 바로 여기서 스탠더드 곡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스탠더드 곡만큼 다양한 스타일로 아주 여러 번 연주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테마부분은 이해를 쉽게한다. 그래서 보통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처음 들을 때 스탠다드 곡부터 감상을 시작하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스탠더드 곡이 귀에 잘 들어온다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연주자의 설정 방향에 따라 곡의 난이도가 바뀌는 것이니까.
이번에 필자가 소개하는 두장으로 된 한국인이 사랑한다는 스탠다드를 모아놓은 “MMJAZZ CHOICE”는 여러모로 스탠다드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연주의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 친숙함, 익숙함을 앨범 전체에 견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각 연주들은 테마가 되는 주 멜로디에 많은 변형을 가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다른 어느 연주들 보다 테마의 인식에 용이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테마에서 아기자기하게 펼쳐나가는 즉흥 연주의 경우도 지나친 확장이나 파격을 시도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진행을 보인다. 그래서 즉흥 연주부분도 상당한 멜로디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그러므로 감상자는 즉흥 연주라는 강박이전에 마치 노래하는 것같다는 인상을 먼저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것은 상당수의 연주가 피아노 트리오를 비롯 단촐한 편성으로 연주된다는 것과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악기의 수가 많을수록 편곡이나 연주의 진행에서 복잡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피함으로서 보다 더 여유로운 감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앨범이 단순하게 재즈를 처음듣는 감상자들만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재즈에 대해 어느정도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 애호가들에게도 관심을 끌 만한 앨범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이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의 면모를 보면 이해가 가능한데 이제는 살아있는 전설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Lee Konitz를 비롯 이제는 열정에서 푸근한 여유로 돌아선 Archie Shepp같은 색소폰 연주자부터 명징하고 냉철한 연주를 들려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Steve Khun, 다시 젊음을 되찾은 듯한 싱그러움을 느끼게 하는 Ediied Higgins, 훌륭한 솔로 연주자이자 조력자이기도한 Kenny Barron같은 피아노 연주자들까지 많은 인정받은 연주자들의 연주가 엄선되어 있다.
게다가 단순히 이들의 연주를 되는대로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레이블 고유의 음악적 색깔을 지닌 Venus의 음원으로 꾸며졌기에 상이한 연주자들의 상이한 곡들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가 한 연주자의 정규 앨범과도 같은 일관된 분위기, 하나의 흐름이 느껴진다는 것도 이 앨범의 미덕이라 하고싶다. 일반적인 모음집은 유명 연주자의 곡들을 분위기와 상관없이 시대순으로 연결하여 이어듣기시 균형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기 쉬웠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선곡에 들인 정성도 있겠지만 비너스라는 레이블이 지닌 고유의 색이 그만큼 강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앨범을 통해 비너스라는 레이블의 전체 색을 가늠해볼 수도 있겠다. 게다가 해상도 높은 음질로도 비너스 레이블이 유명한만큼 보다 더 명징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셀제로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몇장의 초기 비너스의 음원과 비굑해볼 때 리마스터링을 통해 상당한 음질 향상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에서 필자는 스탠다드 곡이 연주되지 않은 악보상태로서의 의미가 강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실제 감상이나 연주에 있어서는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기준이 되는 연주가 저마다 있다. 대부분 이것은 재즈 연주로 처음 들은 곡이 연주의 완성도를 떠나 개인만의 스탠다드 중의 스탠다드가 되는데 Miles Davis와 Cannonball Adderley가 함께 연주한 Autumn Leaves를 처음 들었다면 그 연주가 그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후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한 곡을 감상할 때 이 기준이 되는 곡과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찾아나간다면 어느새 테마를 매우 함축적으로 생략한 연주를 들어도 금방 그 곡이 어떤 곡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스윙부터 프리나 아방가르드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조들을 가로지르는 전반적인 재즈 감상이 자연스럽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결국 스탠다드의 감상은 재즈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자 재즈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아무런 편견없이 바라보게 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자! 이제 당신앞에 CD가 있다. 이 앨범을 통해 당신만의 스탠다드의 스탠다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여기서 출발해 다른 스탠다드 연주를 들어나가면 어떨까? 이제 남은 것은 아무런 강박 편견없이 편안하게 감상하는 것만 남았다. 만약 이미 당신만의 스탠다드가 있다면 그것과 이 앨범의 연주들을 차분히 비교하는 감상을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