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지금까지도 그 변화 중의 상태로 있다. 그래서 재즈 라는 범주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다양한 스타일들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재즈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재즈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불가능한 일로 비추어진다. 그저 창조적인 무엇, Something Else!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치적인 면에서나마 올바른 정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즈가 지속적인 연속성을 지니며 그 외연을 확장시켜 올 수 있었던 것은 전통과 과감한 단절 속에서도 전통을 다시 새롭게 감싸 안는 포용적 자세 때문이었다. 과격한 새로움을 재즈는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단 아이버슨(피아노), 라이드 앤더슨(베이스) 그리고, 데이빗 킹(드럼)으로 구성된The Bad Plus역시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재즈를 보다 한 단계 앞으로 전진시키는 힘을 지닌 트리오라 할만하다. 이들은 과거의 재즈에 연연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무작정 새로운 것 자체에 경도되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끈끈한 인연과 호흡
The Bad Plus의 결성 과정은 그리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흔히 전설의 롹 그룹들의 경우처럼 유년시절의 우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먼저 데이빗 킹과 라이드 앤더슨은 1984년 고교 시절 롹 밴드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그리고 라이드 앤더슨과 에단 아이버슨은 1989년까지 아마추어 프리 재즈 그룹에서 함께 연주하면서 우정을 쌓은 사이다. 이처럼 음악적 공감과 함께 동질의 추억이 트리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이 세 연주자가 펼치는 연주는 단순히 호흡이 잘 맞는다는 표현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긴밀함을 보여준다. 이들의 2000년도 첫 앨범 <The Bad Plus>(Fresh Sound New Talent)가 첫 앨범임에도 상당한 대중적 호응과 높은 평단의 평가를 받았던 것도 이러한 끈끈한 호흡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창조성과 감수성
The Bad Plus의 음악적 특징은 무엇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재즈적인 것에 구속되지 않고 세 멤버가 공유하고 있는 유년 시절의 음악 경험, 그러니까 재즈 외의 대중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의 경험들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의 재즈 연주자들이 대중음악 자체였던 재즈를 들으며 성장했기에 현재의 연주자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순수한 스윙감을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세 명의 연주자들은 롹, 팝, 테크노 등이 대중음악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연주에서 재즈가 아닌 다른 장르의 음악적 스타일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번에 소개되는 The Bad Plus의 통산 두 번째이자 Sony/Columbia에서의 첫 번째 앨범인 <These Are The Vista> 에서도 이러한 면모는 잘 드러난다. 일단 수록 곡을 살펴보면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rit”부터 블론디의 “Heart Of Glass”, 그리고 아펙스 트윈스의 “Film”이 이들의 자작곡들 속에 섞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원래 재즈의 스탠더드 곡들이 대부분 재즈 밖의 뮤지컬이나 영화 음악 등에서 가져온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단지 롹, 팝, 테크노 곡들을 연주한다고 해서 특별하게 보지는 말자. The Bad Plus와 그 세 멤버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앨범 전체에 걸쳐 이 다른 장르의 음악적 기법, 특징들이 자유로운 세 연주자들의 새로운 감수성,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결합하여 신선하고 진보적인 음악적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새로운 연주의 기재들과 전통적 재즈간에 생기는 강한 콘트라스트는 이번 앨범의 색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 앨범의 모든 곡들을 감상하다 보면 강렬함과 부드러움의 대립,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멜로디와 강박적인 리듬의 대립 등을 우선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음악의 새로움은 스타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즈의 전통을 넘어선 자유로운 상상력과 그것의 충실한 표현력에 있다.
전통적인 트리오 연주
때로는 천둥이 몰아치듯 강력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테크노 이상의 강박적이고 기계적인 사운드를 연출하기도 하는 The Bad Plus의 사운드는 분명 재즈보다는 다른 음악 장르의 정서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그래서 몇몇 감상자들에게는 재즈의 전통을 거부한 과격한 아방가르드 연주로 생각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앨범을 차근차근 감상하다 보면 이들의 변화무쌍하고 혼란스러운 연주가 의외로 그다지 낯설게 들리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이들의 연주 진행 방식이 전통적인 재즈 트리오의 방식을 적절히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연주자 모두 개성이 강한 연주자들이지만 결코 이들은 혼자서 튀는 법이 없이 탄탄한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긴밀한 인터플레이를 펼친다. 그러면서 새로움의 정서적 효과만큼이나 과거부터 내려왔던 순수한 연주의 측면을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앨범에 사용된 다른 장르의 음악적 요소들은 대부분 사운드의 질감에 더 많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경향을 볼 때 이러한 새로운 사운드의 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일렉트로닉스의 첨가가 필요할 텐데 이 세 연주자들은 고집스럽게도 어쿠스틱 연주로만 이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말이다. 이처럼 이 앨범에 나타난 The Bad Plus의 연주는 단순히 재즈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전통의 새로운 수용을 보여준다.
추천의 변
필자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이 담긴 연주와 음악들을 우선적으로 선호하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과연 내가 재즈를 듣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라고 자문할 때가 많다. 그것은 재즈가 경우의 수에만 머물러 있었던 모든 표현 가능성들을 하나씩 해방시키면서 정작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재즈와 단절을 시도하면서도 전통적인 요인들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적극 사용하고 있는 <These Are The Vitas>같은 앨범을 만나게 되면 이러한 불안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전체 재즈사의 관계의 망에서 분명 이 앨범이 큰 의미로 오래 기억되리라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