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솔로 앨범
팻 메스니(Pat Metheny)의 솔로 앨범이다.
필자가 이렇게 이 앨범의 설명을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 앨범이 말 그대로 팻 메스니의 솔로 앨범이기 때문이고 또 솔로 앨범이라는 사실이 이 앨범을 감상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전까지 그가 솔로 앨범을 녹음했던 적이 없었던가? 물론 1979년 ECM에서 발매한 <New Chautauqua>를 필두로 <Passaggio Per Il Paradiso> (Geffen 1999)까지 혼자서 연주했던 앨범이 몇 장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앨범들은 모두 오버 더빙을 통하여 그룹 연주의 분위기를 냈었던 앨범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앨범들은 이미 녹음 전에 미리 어떤 사운드를 만들겠다는 방향이 이미 설정되었던 계획된 앨범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One Quiet Night>은 아무런 오버 더빙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기타 한 대와 마이크 하나를 가지고 녹음한 그야말로 말 그대로의 솔로 앨범이 되는 셈이다.
집에서 녹음된 바리톤 기타와 내쉬빌 튜닝의 만남
이번 앨범의 수록곡 12곡 중 절반인 6곡은 전문 스튜디오가 아닌 메스니의 집에서 녹음된 것들이다. 사회인으로서의 옷을 벗어 버리고 개인 본연의 모습으로 머물게 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녹음되었기에 우리는 어쩌면 팻 메스니 개인의 은밀하게 감추어진 내면의 모습, 그러니까 한 밤에 집에 혼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외로움 슬픔 등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메스니의 연주에서는 의외로 이러한 정서적 요인들을 쉽게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이 앨범이 메스니가 자기 감정의 강한 발현 욕구를 느껴서 연주를 했던 것이 아니라 곧바로 연주 그 자체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 24일 밤, 그는 기타를 들고 자신의 집에 있는 작은 홈 스튜디오에 안에서 마음이 가는 대로 그 자리에서 멜로디와 코드를 만들어가면서 6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그 연주를 녹음했다. 그 당시에 그는 이 연주를 앨범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시 새로 생긴 바리톤 기타에 내쉬빌 튜닝-6줄 기타에 12줄 기타의 높은 음역대의 6줄을 걸고 1,2번 줄은 그대로 둔 채 나머지 4줄은 정상보다 한 옥타브 높게 튜닝하는 방법-을 하고 이 기타와 튜닝의 낯선 결합을 시도했을 뿐이었고 앨범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그로부터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의 결과를 느껴보는 과정에서 (명징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사운드가 매우 인상적임을 느낀 뒤에야 앨범 제작의 영감을 얻었다.
밤이라는 이미지에 전사된 메스니의 이미지
그만큼 이 앨범은 어떤 지향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앨범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Pat Metheny Group (이하 PMG)을 비롯한 여타 다른 편성의 앨범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자못 다르다. 굳이 따진다면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미주리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던 <Beyond The Missouri Sky> (Verve 1997)과 사운드의 측면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이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키려 하기보다 연주 그 자체에 머물고 있기에 기존의 다른 앨범들과 차별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이 앨범을 감상하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도 아니요 막연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여행에의 동경도 아니다. 그보다는 단순하게 어느 조용한 밤(One Quiet Night!)이라는 특정 시간 기타를 몰입해서 기꺼이 연주하고 있는 메스니의 외면적 이미지다. 실제 맑고 깨끗하면서도 차갑다기보다는 동그랗게 잘 다듬어진 음들이 부드럽고 따스한 바리톤 기타 사운드를 조용히 듣고 있으면 처음에는 메스니와 일대일 조우를 하고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플랫과 6개의 줄이 교차된 기타가 나타나고 간혹 줄을 거스르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 메스니의 손이 상상되면 메스니가 스피커에서 빠져 나와 내 앞에서 기타를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것마저 시간이 흐르면 기타를 연주하는 메스니는 사라지고 기타 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불특정 공간만이 그려지며 급기야 감상자인 내가 그 안에 있다는 느낌으로 발전된다. 감상자와 메스니의 음악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멜로디와 분산화음의 혼재
이처럼 이미 메스니 본인의 라이너 노트에서 이 앨범이 “하나의 사운드, 하나의 분위기”에 관련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One Quiet Night>의 음악은 기타를 연주하는 메스니와 밤의 홈 스튜디오라는 그의 시공간 자체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감정적 효과를 더 많이 일으키는 멜로디 보다 이를 감싸는 분위기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분산화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오버 더빙이 없는 녹음이기에 기타 하나로 멜로디와 코드를 동시에 연주해야 하는 기타만의 제약이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실제 대부분의 곡들은 분산화음이 멜로디이자 멜로디가 분산화음인 것처럼 들린다. 다양한 분산화음들 안으로 스며들어간 멜로디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설사 멜로디가 드러나더라도 그것은 기존 메스니 음악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연상시킬 정도의 서사성을 띄기보다는 동일한 성격을 지니는 동기들의 반복적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음악은 흐른다기 보다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지속의 인상을 주고 이 정지된 시간은 밤, 공간의 이미지로 확장된다.
1년 만의 앨범 제작
따라서 그간 메스니의 음악들이 역동적 시간성이 우선하는 음악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한 밤이라는 정적인 공간이 우선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밤의 공간은 메스니에게 1년 동안 지속된 하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바리톤 기타와 내쉬빌 튜닝의 색다른 조화를 발견한 이후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여기에 대한 자신의 마음, 애착을 꼭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도 이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지난 해 가을에 있었던 PMG의 공연 당시 어두운 무대 한가운데 메스니 혼자서 바리톤 기타로 연주했었던 “Last Train Home”을 공연을 관람했던 감상자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당시 필자는 원래의 형태로 그룹 전체가 연주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졌었는데 이미 메스니는 그 순간에도 그러한 기타 솔로 연주로 채워진 앨범 제작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첫 녹음이 있은 뒤 1년이 지난 올해 1월 앨범 제작을 위해 “Last Train Home”을 포함한 6곡이 녹음되었다. 이 때 녹음된 곡들은 즉흥이 아니라 새로 작곡한 곡(“Song For The Boys”, “Over On 4th Street”)과 자신의 애주곡들이지만 첫 녹음시의 분위기와 의도적으로 연결된다.
의외의 연주 곡들
그런데 그가 즐겨 연주한다고 하는 곡에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노라 존스(Norah Jones)의 “Don’t Know Why”와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My Song”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아마도 지금 이 앨범을 손에 들고 있는 여러분 중 상당수는 그가 노라 존스와 키스 자렛을 연주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호기심을 가지고 구입을 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메스니의 이번 신보가 궁금했지만 그와 그다지 상관없는 듯한, 그가 연주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 곡들이 무척 궁금했다. 특히, 노라 존스의 곡이야 원래 기타로 연주되었기에 어느 정도 그 느낌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키스 자렛의 “My Song”의 경우 현대 재즈를 대표하는 두 연주자가 간접적으로나마 조우한다는 사실 때문에 작은 흥분마저 했었다. 그런데 원곡만큼이나 깔끔하고 정적인 메스니의 “My Song”을 들으면서 필자는 역시 집에서 녹음되었던 키스 자렛의 <Melody At Night With You> (ECM 1999)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실제 두 연주자 모두 밤을 노래하고 있으니 비록 음악적 성향의 차이는 있으나 이 두 앨범은 정서적인 차원에서 통하는 면이 있다.
이상적 음악감상의 가능성
한편 이번 앨범은 이상적인 음악 감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일반 감상자가 되었건 평론가가 되었건 하나의 음악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연주에 중점을 두어야 하느냐 이미지에 중점을 두어야 하느냐를 사이에 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연주에 중점을 두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같고 이미지, 느낌에 중점을 두면 그것은 실제 음악과 상관없는 공허한 것 같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연주와 그 이미지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메스니의 음악들은 바리톤 기타와 내쉬빌 튜닝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연주 가능성의 탐구에서 시작되어 그 연주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밤이라는 정서적 분위기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감상자를 연주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개인적 경험 등 다른 매개물을 끌어들이지 않고 그 안에서 정서적 이미지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즉, 자연스럽게 메스니와 감상자의 감성이 일치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연주와 정서의 이상적 결합이 아닐까? 실제 메스니도 이번 앨범이 새로운 기타 연주의 가능성을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현재까지 그룹과 트리오, 그리고 기타 세션으로 그의 활동이 이루어졌었다면 앞으로는 이 새로운 솔로 기타 사운드의 탐구를 추가하겠다고 한다. 그러므로 계속되는 그의 내면적인 순수 음악 공간의 탐구를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자! 이제 필자의 어설픈 이야기는 끝났다. 이제 직접 플레이어에 음반을 걸고 새로운 모습의 메스니와 만나는 것만 남았다. 그가 제시하는 밤, 그 밤이 지속되는 공간 속 자신을 위치시키고 직접 그의 음악을 체험하는 것만 남았을 뿐이다.
제가 직장인이었을 때..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었습니다.
그러다가..하루종일 집에 있을 때 ‘혼자’라는 느낌이 들때가 많았지만, 그 혼자임이 외롭다는 느낌보다는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주더라고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앨범이 바로 그 느낌을 제대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앨범 자켓부터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 같아요.^^
비가 내리는..아님, 비가 내린 후 풍경을 보면(특히 도시생활을 하는..)이상하게 Pat Metheny가 떠오릅니다.
어쿠스틱 기타의 질감과 여백을 강조한 연주 등이 촉촉한 비를 닯았죠. ㅎ 도시인이 외롭다고 말을 하지만, 저도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하기도 하지만 정작 도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독을 마주하고 내면화 하면 외롭지 않죠. 외로움은 여럿이 있을 때 오는 것이구요.ㅎ
‘외로움은 여럿이 있을 때 온다’…아!!! 완전 공감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고독과 다르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