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을 듣기 전에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24세에 불과한, 스웨덴의 트럼펫 연주자 칼 올란데르손(Karl Olandersson)의 첫 번째 리드 앨범 <Introducing>은 감상 전부터 묘한 궁금증, 사운드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유발한다. 그 궁금증과 기대는 바로 이 앨범이 쳇 베이커(Chet Baker)에 대한 일종의 향수를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이 글을 맡기 전에 미라 맘버그(Myrra Malmberg)의 앨범 <Sweet Bossa> (Arietta 2002)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부록으로 특별히 포함되었던 Arietta 레코드의 샘플러 시디에서 칼 올란데르손의 “The Old Country” 한 곡을 듣고서 자연스럽게 이 연주자가 쳇 베이커를 무척 좋아하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앨범의 소개 글을 위해 앨범을 받고 나서 앨범 표지에 드러난 그 외모의 유사성으로 인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로 빗어 올린 헤어 스타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이마의 주름, 약간은 도도한 느낌으로 굳게 다문 얇은 입술, 트럼펫을 들고 분위기 있게 자리잡은 그 자세 등이 영락없는 젊은 시절의 쳇 베이커였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재즈 애호가분들 상당수는 필자와 같은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이를 확인하길 원한다면 쳇 베이커의 <Young Chet> (Blue Note 1954)나 <Chet> (Riverside 1958)같은 앨범의 표지와 비교해보기 바란다.
쳇 베이커처럼 부드러운 보컬
결국 이 앨범을 감상하기도 전에 외모의 유사성으로 인해 부지불식간(不知不覺間)에 칼 올란데르손에게서 쳇 베이커적인 음악을 바라게 된다는 것인데 사실 이는 연주자에게 큰 부담일뿐더러 폭력일 수 있다. 자신이 유명한 선배 연주자의 아류. 판박이로 인식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지 않은 일인가?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칼 올란데르손은 쳇 베이커와 자신의 유사성을 차라리 잘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그것은 보컬에서 확인 되는 것으로 이 앨범의 첫 곡 “The Old Country”부터 그의 목소리와 창법은 절로 쳇 베이커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잘 부른다 생각이 들지 않는, 그저 멜로디를 따라가기만 하는 듯한 평이한 진행, 부족한 성량이 주는 불안감,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에서 강조되는 알 수 없는 짙은 페이소스를 유발하는 올란데르손의 노래는 쳇 베이커의 전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확신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쳇 베이커식 창법의 수용은 일종의 인기를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엘라 핏제랄드,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 등 그를 모방하며 나아가 그를 뛰어넘어야 할 전형이 있는 여성 재즈보컬과 달리 남성 재즈보컬에는 그러한 전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칼 올란데르손이 전문적인 재즈 보컬이 되기에는 성량이나 음색에 있어서 부족했기에 이를 수용한 결과라 생각된다. 그래서 기교보다는 정서적인 접근을 우선시했던 쳇 베이커의 보컬이 어쩌면 올란데르손 본인에게는 잘 어울리는 전형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쳇 베이커를 넘어서는 전(全)스타일적인 트럼펫
한편 보컬과 외모의 유사성에서 칼 올란데르손이 자신의 모든 것을 쳇 베이커와 동일화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혐의를 두게 되지만 그의 트럼펫 연주를 살펴보면 그가 단순히 한 연주자의 모방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실제 그의 트럼펫 연주는 쳇 베이커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이 앨범의 수록 곡들이 쳇 베이커가 주로 연주하고 노래했던 곡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곡들인데다가 색소폰 연주자 베니 골슨이 비운의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했던 “I Remember Clifford”가 포함되었음을 염두에 두자. 이러한 선곡은 (역시 쳇 베이커가 그랬던 것처럼) 칼 올란데르손이 보컬 이전에 트럼펫 연주자임을 확인하게 되는 부분인데 그의 트럼펫 연주는 쳇 베이커처럼 불안정하고 유약한 느낌을 주지 않고, 자신만의 강약을 가지며 명확한 음정으로 이루어진 프레이징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연주의 전개는 쳇 베이커보다는 다른 선배 연주자들의 영향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그의 보컬이 등장하지 않는 “Sermonette”같은 곡에서 들려주는 그의 트럼펫은 음악 스타일의 복고적 성격과 맞물려 클락 테리(Clark Terry)같은 연주자를, 그리고 “I Remember Clifford”같은 곡에서는 아트 파머(Art Parmer)같은 연주자를 연상시키는 등 전반적으로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계열의 연주자들과 깊은 관련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그의 트럼펫 연주가 쳇 베이커를 넘어선 다른 선배 연주자들의 흔적을 복합적으로 지니게 된 이유는 24세라는 나이와 걸맞지 않는 그의 다양한 이력 때문이다. 그는 9세 때부터 지방의 브라스 밴드나 빅밴드에서 활동을 시작해 Swedish Radio Big Band까지 크고 작은 빅밴드 경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톡홀름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하면서 스웨덴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인 울프 아데커(Ulf Adåker)같은 연주자에게 사사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경력이야 대부분의 프로 연주자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활동했던 밴드들의 음악적 스타일이 하나에 고정되지 않고 과거의 뉴 올리언즈, 딕시랜드 스타일부터 시대를 앞서는 아방가르드 스타일까지 그 폭이 넓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全)스타일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트럼펫 연주자에 대한 탐구가 있었음은 자명하다. 사실 이러한 선배 트럼펫 연주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관계-그 안에는 물론 쳇 베이커도 포함되어 있다.-를 형성했었기에 누구의 색이 드러난다는 표현은 쓸데없이 연주자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칼 올란데르손이 발전 과정에 있는 젊은 연주자이고 선배 트럼펫 연주자들의 영향이 한 곡에 한꺼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각 곡마다 조금씩 그 정도를 달리하여 드러나고 있는 만큼 자신만의 색깔 있는 음색과 연주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보컬과 트럼펫 연주에 있어서 쳇 베이커와의 관계가 극명하게 맥을 달리하는 만큼 이 앨범을 무조건적으로 쳇 베이커를 따르는 한 젊은이가 쳇 베이커의 후광으로 관심을 끌려고 하는 앨범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보다는 전도 유망한 젊은 트럼펫 연주자가 보컬과 트럼펫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 연주자들의 흔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앨범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적인 수용은 결과적으로 이 앨범의 완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안정적 연주를 기반으로 한 정서적 매력
이 앨범은 쳇 베이커와의 유사성 여부에 대한 호기심에서 감상을 시작하지만 이내 이 앨범에 편재하고 있는 부드러운 낭만성에 빠져 버리게 된다. 첫 곡 “The Old Country”에서부터 마지막 곡 “I Remember Clifford”까지 모든 곡은 낭만과 우수로 채색되어 있다. 그것은 때로는 사랑에게 버림받은 실연자의 슬픔 같기도 하고 때로는 기분 좋은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연인들의 간절한 기원 같기도 하다. (만약 아직까지 쳇 베이커와의 관련성에 더 관심을 갖는 감상자들이 있다면 이는 분명히 앨범의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역시 이 앨범에 끌리게 되었던 이유가 이 앨범이 지닌 정서적 매력이었다. 그런데 그 정서적 매력은 단순히 발라드를 노래한다고 해서, 어두운 조명이 있는 카페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식의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앨범의 그윽한 정서적 매력이 달콤한 분위기의 창출 자체에 매달리지 않고 그의 보컬과 트럼펫, 그리고 피터 노르달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리듬섹션의 연주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음악적 충실함을 우선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앨범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주는 매력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조금은 심심하다는 느낌을 주다가 앨범의 중반부를 지나서야 이 앨범 전체가 지닌 잘 달인 차 같은 은근함을 느끼게 된다. 한편 이러한 음악적 충실함과 고즈넉한 분위기의 저변에는 칼 올란데르손을 적극 지원하고 협력하는 피터 노르달(Peter Nordahl)의 피아노가 있음을 언급해야 한다. 이 앨범에서 그는 다른 리듬 섹션 연주자들과 함께 칼 올란데르손의 연주와 보컬을 포근히 감싸고 때로는 시성 어린 대화를 하는 상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아가 그는 단순히 이 앨범의 피아노 연주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베이스를 연주하는 파트릭 보만(Patrik Boman)과 함께 칼 올란데르손의 장점을 발굴하고 이를 앨범 전체의 분위기에 반영하는 지휘자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러한 그만의 탁월한 혜안은 이미 국내에도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리사 엑달(Lisa Ekdahl)의 세계적 성공을 통에서 확인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이제 칼 올란데르손을 소개(Introducing)하고 있는 것이다.
추천의 변
보통 재즈를 감상하는 이유로 음악자체에 몰입해 연주자의 탁월한 연주력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는 삶에서 색다른 느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재즈를 듣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알찬 연주이면서 동시에 삶을 새롭게 하는, 감상자의 감상 공간을 부드러운 비현실로 채우는 앨범을 감상하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칼 올란데르손의 <Introducing>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그런 이상적 감상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는 무리하게 이 앨범이 유일한 최고이며 명반이다라고 주례사식의 칭찬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연주에 있어서 솔직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면서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어 정서적 쾌감을 주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소박한 좋은 앨범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칼 올란데르손과 그의 첫 리드 앨범을 적극 소개<Introducing>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