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의 정규 솔로 앨범
스탠리 클락은 70년대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베이스 연주의 대가로 인정 받았던 인물이다. 특히나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에서 활동하면서 들려주었었던 경이로운 연주들은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혁명적인 베이스 연주에 선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건반 연주자 조지 듀크와의 활동이나 <School Day>같은 앨범을 통한 솔로 활동 모두에서 그의 베이스 연주는 베이스의 역할을 뛰어넘는 현란하고 적극적인 솔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퓨전 재즈를 단순히 분위기 조성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연주자의 독창성이 대중적인 면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음악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93년 <East River Drive> 이후에 정규 앨범 제작을 멈추었다. 1995년에 발매된 <Rite Of Strings>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바이올린 연주자 장 뤽 퐁티와 기타 연주자 알 디 메올라와의 공동 리더 앨범이었다. 설령 이 앨범부터 계산하더라도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는 변함이 없다. 리더로서의 활동을 정지함과 동시에 그는 세션 활동도 많이 하지 않은 듯하다. 이 글을 위해 그의 디스코그라피를 찾아보았는데 주목할 만한 세션 활동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 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이혼 같은 그의 가정사나 그의 활동이 커머셜 뮤직 등으로 이전되었다는 것이 이유로 거론될 수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기존의 퓨전 재즈가 애시드 재즈 같은 새로운 흐름으로 인해 힘을 상실했을 뿐더러 퓨전 재즈 자체도 갈수록 연주이전에 분위기가 우선시되는 방향으로 그 흐름이 바뀌었다는 상황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아무튼 그렇게 과거로 사라지는 것만 같았던 그가 10년의 침묵을 깨고 새 앨범 <i, 2 To The Bass>로 건재함을 보여준다는 것은 많은 그의 애호가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새롭게 재현하는 전성기의 사운드
사실 필자는 앨범 감상 전에 그의 재 등장을 최근 일렉트로 뮤직의 새로운 득세와 이를 재즈에 접목시키는 것이 젊은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이 재즈 계에 유행처럼 번지는 것에 자극을 받아 다시 치열한 재즈 무대 한가운데로 나오기를 결심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음악적 분위기를 올 해 발매된 로이 하그로브의 새 앨범에서 들을 수 있었던 힙합적 스타일이 가미된 미국식 일렉트로 펑크가 아닐까 예상했다. 이것은 랩퍼 Q-Tip이 참여하고 있는 앨범의 첫 트랙이자 타이틀 곡 ‘1,2 To The Bass’를 통해 어느정도 적중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두 번째 곡 ‘Simply Said’부터 이러한 예상은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했다. 이 앨범은 7,80년대 펑키한 재즈를 선보였던 선배 연주자로서 새로운 흐름에 대해 기득권을 주장하려는 사고에서 출발한 앨범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스탠리 클락의 여러 앨범들 중에서 이 앨범이 시대에 대한 흐름, 대중적 기호와 함께 연주자이자 작, 편곡, 제작자로서의 스탠리 클락의 모습이 충실하게 잘 발현된 앨범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 앨범에 담긴 음악들은 그간의 부재를 보상하기라도 하듯이 매우 다양하다. 먼저 음악적으로 본다면 그는 현재의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Simply Said Anna’,’ Where Is The Love’나’Anna’같은 곡은 보다 사운드의 질감이 현대적이긴 하지만 적당한 클리셰의 사용으로 과거 7,80년대의 퓨전 재즈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곡들이다.
다양한 베이스 연주
이 앨범의 음악적 충실함을 높이고 있는 요인은 바로 스탠리 클락 본인의 베이스 연주다. 보통 베이스 연주자의 독집 앨범들은 베이스라는 악기의 특성상 연주자로서의 모습보다는 작, 편곡을 통한 전체 사운드의 기획자, 그룹의 리더로서의 역량이 더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스탠리 클락 역시 이번 앨범에서 사운드의 조율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한다. 그런데 만약 그의 역할이 여기에 그쳤다면 그다지 이 앨범은 다양한 시도는 있으되 그 느낌은 심심한 앨범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연주자로서의 스탠리 클락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곡마다 다양한 베이스로 현란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솔로 연주를 펼치고 있다. 그 중 요시 재즈 클럽에서의 어쿠스틱 베이스 솔로 라이브인 ‘Touch’나 ”Bout The Bass’, ‘Hair’같은 곡들은 아예 그의 베이스 솔로 연주로 전체를 채우고 있다. 한편 그는 단순한 베이스 솔로가 아니라 베이스의 영역을 넘어서는 연주도 들려주고 있는데 그 예가 바로 ‘Just Cruzin’이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재즈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타 연주자, 웨스 몽고메리, 조지 벤슨, 팻 마티노에 대한 헌정 곡이다. 베이스 연주자가 기타 연주자에게 헌정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의아한데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이러한 의문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보통의 베이스보다 음역대가 높은 피콜로 베이스를 사용한 그의 연주가 마치 기타 솔로와도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도들
한편 이 앨범에서 그는 퓨전 재즈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던 자신의 활동을 언급하는 것을 빼놓지 않고 있다. 특히 그는 몇 차례에 걸쳐서 인도의 바이올린 연주자 닥터 서브라마니엄과 연주를 했었다. 이것을 이번 앨범에서도 마지막 곡인 ‘Shanti’를 통해 재현해 내고 있다. 평화를 의미하는 이 곡에서 그는 서브라마니엄과 함께 기존과는 다른 명상적이고도 오케스트라 이상의 공간적인 사운드를 연출하고 있다. 한편 유명한 시인 마야 안젤루의 시를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감정을 실어 서사적으로 읽어나가는 ‘I Shall Not Be Moved’같은 다소 실험적인 곡에서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들을 수 있다. 이런 곡들 역시 과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스탠리 클락 표 종합 선물세트
<I, 2 To The Bass>에서 확인되는 스탠리 클락의 다양한 모습은 그 부재의 기간이 단순한 공백기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었으며 그 새로운 흐름들을 어떻게 자신에 맞추어 변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탐구하는 기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가장 세련되고 현대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음에도 모든 곡마다 잘 숙성된 스탠리 클락의 대가적인 시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면들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잘 연결되어 하나의 총체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도 이 앨범을 다시 보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양하지만 잘 정리된 스탠리 클락 표 종합선물 세트가 바로 이 앨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