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메시니 그룹(Pat Metheny Group)

2002년 내한공연 해설지에 쓴 글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재즈를 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어려운 일이다. 밖에서 재즈를 바라보면 흑인 연주자들과, 흥겨운 스윙리듬 정도를 연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겠지만 실상은 그렇게 일반화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10년 단위로 일어났던 지배 사조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현대 재즈가 수직적인 자기 혁신이 아니라 이제는 수평적인 자기 분열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즉 다양성과 세분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만큼 현대 재즈는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재즈가 전문화가 되어가는 만큼 영향력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많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보통 스타일리스트란 다른 연주자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연주자를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 재즈는 다양한 스타일은 있지만 스타일리스트는 부족하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스타일에 연주자가 매몰되는 경우가 많음을 의미한다. 현대 재즈는 자신의 음악 색깔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현대 재즈의 흐름을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를 스타일리스트로서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팻 메스니야말로 그러한 스타일리스트 중의 대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음악인들이 그의 음악적 분위기를 간간히 차용할 만큼 그의 음악이 지닌 영향력은 세계적이다.

지금까지 팻 메스니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재즈 내의 다양한 스타일을 뛰어 넘는다. 미국 컨트리 음악에 바탕을 둔 그만의 서정과 음악적 상상력이 넘치는 음악 외에 세션 맨으로서 메인스트림의 성격이 강한 재즈를 연주하는가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강렬함으로 순간의 자기 표현에 충실했던 Song X같은 프리 재즈 앨범을 녹음하기도 하고 현대 음악가의 전위적인 곡을 녹음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재즈 밖의 음악의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르와 스타일을 뛰어넘는 메스니의 행보는 그가 매 순간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음악에서라도 그를 식별하게 만드는 메스니만의 정체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팻 메스니의 음악 이력 중에서 중요하고 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팻 메스니 그룹(이하 PMG)이다. PMG는 분명 팻 메스니의 음악적 성향이 지배적으로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단순히 그의 음악적 표현의 수단으로서만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은 이들의 음악이 감상자들을 상상하게 한다는 것에 있다. PMG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음악 감상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상상의 세계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것과도 같다. 상상할 수 없으면 PMG의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이 PMG의 음악이다. PMG는 감상자를 단순히 구성원의 연주 자체에 관심을 갖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모든 곡들의 첫째 소절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는 가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인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낯선 곳은 안개 짙은 이른 새벽의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일 때도 있고(Au Lait), 고개 숙인 벼들이 황금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는 들 판을 가르는 기차 안일 때도(Last Train Home)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차도 위일 때도 있고(If I Could) 또 눈부신 밝은 햇살이 있는 시골 길 위일 때도(Dream Of Return)있다. 물론 상상은 다른 음악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PMG의 음악에 유독 감상자들이 매료되는 것은 신기하게도 PMG의 음악들이 여행, 여정이라는 진행적 이미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정해진 목적지 없이 단지 PMG는 감상자를 여행길에 오르게 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가는 오로지 감상자 자신에게 달렸을 뿐이다. 그러므로 PMG의 음악은 감상자의 능동적 상상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러한 여행의 이미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실 이것은 어느 한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MG의 음악은 팻 메스니 개인이나 다른 누구 누구의 힘 때문이 아닌 그룹 멤버들의 합을 넘어서는, 결국 PMG만의 것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국적인 동시 규칙적이면서 속도감 있는 리듬과 이와 대조를 이루며 진행되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뽑아내는 메스니의 기타(신디사이저) 연주, 그리고 꿈꾸는 듯한 보컬 등 PMG의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이 모였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각 멤버들의 능력의 총합을 넘어서는 플러스 알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이러한 특징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구성원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유지될 수 있었다.

반면 감상자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은 이러한 PMG만의 특징은 역으로 PMG음악에 일종의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매번 새로운 앨범들이 발표될 때마다 감상자들에게는 분명 PMG가 새로운 여행으로 자신들을 인도하기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PMG의 전형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다소 모순된 두 가지 기대가 공존하곤 했다. 그러나 이전 음악과의 단절과 연속을 동시에 지닌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모든 창조적 에너지를 쏟아 부어 만들었던 이전 앨범들이 다음 앨범을 위해 부정하고 넘어야 할 산이 되어 버린다는 것은 커다란 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PMG의 앨범들을 보면 이러한 위험과 장애를 잘 극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 초에 발매된 ‘Speaking Of Now’와 20년 전 앨범 ‘Offlamp’를 비교해 본다면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변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PMG의 음악 자체가 변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그것은 PMG가 보여주는 점진적이며 지속적인 변화들은 어디까지나 팻 메스니와 그 구성원들의 감성이라는 동인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발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PMG가 라틴 성향의 리듬을 차용하거나 더 나아가 월드 뮤직적인 성향을 보이더라도 감상자들은 새롭기는 하지만 PMG의 음악 색깔이 변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스타일리스트가 만드는 음악이 아닐까?

올 초 발표한 SPEAKING OF NOW는 그동안 PMG의 음악을 기다려왔던 많은 애호가들에게 여느 때보다 더 큰 선물이었다. 왜냐하면 1997년의 Imaginary Day이후 5년만에 발표한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영화 음악, 트리오, 세션, 협연 등 팻 메스니 개인의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여전히 그의 솔직하고 아름다운 감성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PMG 새로운 음악을 기다리는 애호가들의 목소리는 줄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PMG는 그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고 이전 그들의 음악과 연속성을 지니며 색다른 상상의 세계로 감상자를 안내하는 멋진 음악을 선보였다. 3명의 기존 멤버와 3명의 새로운 멤버로 녹음한 이번 앨범은 전작 Imaginary Day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월드 비트에서 벗어난 PMG초기의 리듬 패턴으로의 회귀를 강하게 드러내며 근작들보다는 First Circle같은 초기의 음악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속성을 바탕으로 이번 앨범에서 PMG는 또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라일 메이스나 팻 메스니의 솔로 연주들이 비교적 사운드 위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과거에는 하나의 지향점을 상정하고 각기 구성원들이 그 지향점을 향해 유기적인 관련을 맺으며 전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솔로가 음악의 내적 구조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메인스트림의 어법을 보여주는 솔로를 펼칠 정도의 대담함 마저 드러난다. 이것은 그간 다양한 개인 활동을 통해 육화된 팻 메스니의 음악 경험들이 자연스레 PMG의 음악과 융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미리 기보된 부분과 즉흥 연주를 펼치는 부분 간의 구분이 비교적 모호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앨범에서는 그 구분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구조적 단순미마저 느껴진다. 이런 상대적으로 강조된 솔로 연주는 아마도 오늘 공연에서 더 많은 빛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필자가 주워들은 이들의 미국 내 공연 이야기에 의하면 라이브라는 특성도 있겠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각 멤버들의 개인 기량을 선보이는 시간이 많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드럼을 맡고 있는 안토니오 산체스와 앨범에서는 미미했던 리차드 보나의 베이스가 라이브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하니 한번 지켜볼 일이다.

한편 그동안 PMG에서의 보컬의 사용은 곡의 분위기나 색을 명확히 만드는 다소 부수적인 면을 띄고 있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전면에 부각되어 곡을 리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주목할 일이다. 이번 앨범의 보컬은 베이스와 트럼펫이라는 각자의 악기를 두고 목소리로 참여한 리차드 보나와 쿠옹 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들을 보컬로 참여시킬 수 있는 팻 메스니의 대담함과 선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미 새로운 멤버들이 PMG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기존 멤버들이 새로운 실험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새 멤버들이 기존 PMG의 정통성을 유지시키는 역전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길 끝에 휴식할 곳이 있지만, 다시 길을 찾아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

필자가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박 이문 님의 길이라는 수필 중에 나오는 문장이다.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이 문장을 처음 읽는 순간 필자는 막연하게나마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대로 전진을 멈추지 않는 팻 메스니, PMG의 음악에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반대로 팻 메스니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문장을 더 올리곤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음악은 스스로를 과정의 선상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앞을 향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을 통해 받게 되는 일종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위 문장처럼 움직이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PMG에게 목적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심지어 없을 지도 모른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음악에 대한 상상과 도전으로 충만한 전진만이 의미가 있기에….

그러므로 영원한 여행자로서의 PMG의 음악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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