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ford Marsalis 2002년 내한공연에 앞서…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근원을 찾기는 힘들지만 어느새 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내한 공연을 가졌고 또 예정에 있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번이겠거니 했었는데 매월 공연이 한두 개씩 예정되어 있으니 (국내 연주자들의 무대가 아직 좁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확실하게 재즈 공연 문화만큼은 자리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이렇게 공연이 많다보니 처음에는 하나의 이벤트로서 무조건적으로 공연장에 달려가곤 했지만 이젠 차분하게 이리저리 연주자의 면모를 살펴 관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 달에도 우리는 한명의 연주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가 바로 Branford Marsalis다.

브랜포드 마샬리스가 내한 공연을 펼친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저절로 Mo Better Blues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사실 국내에 브랜포드가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앨범도 아닌 단 하나의 이 곡과 그가 Sting의 앨범에서 세션으로 연주했던 Englishman In New York이 아니던가? 그러나 정말로 이번 공연에서 이들 곡을 들어볼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한 공연의 멤버 중 드럼주자 Jeff ‘Tain’ Watts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하니 아마도 이번 공연은 정규 퀄텟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혹스러워 할 지도 모를 한국 팬들을 위해 앵콜 정도로 연주해 주지 않을까?

그에게 정규 퀄텟이 있었던가? 이에 대한 답을 대신해 말하자면 국내에서 브랜포드 마샬리스를 알고 있는 재즈 애호가는 많은 반면 그의 앨범이나 연주곡을 제대로 감상해 본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필자의 시각으로는 그의 음악이 제대로 국내에 소개되지 못한 면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그는 위에 언급한 스팅의 세션이나 영화 음악 연주로만 알려져 있다. 여기에 90년대 중반 활발하게 활동한 애시드 재즈 그룹 Buckshot Lefonque의 창시자이자 멤버로 소개되었다는 알려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그에 대한 상당한 오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국내 재즈 애호가들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 곤란한 것이 이러한 오해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언론이나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상당부분에 있어서 브랜포드 혼자서 평가되고 언급되는 것보다는 브랜포드보다 더 유명하고 인정을 받고 있는 동생 Wynton Marsalis의 대자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언급되고 평가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한가지 사건, 그러니까 윈튼과 함께 활동하던 브랜포드가 스팅과 연주를 하기 위해 윈튼을 떠나면서 두 형제사이에 감정적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긴장은 이제 두 사람에게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이후 언론이나 호사가들은 쉽사리 윈튼의 신전통주의 반대쪽에 브랜포드를 배치시켰다. 다시 말해 동생 윈튼은 신 전통주의라는 기치아래 다양화 세분화되면서 자기 확장을 거듭하는 재즈의 시간을 다시 과거로 되돌리려 했다는 것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고 또 나름대로 주요한 결과들을 산출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것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브랜포드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의 세션과 애시드 재즈 그룹 활동이 그의 이력에서 주요활동으로 부각되어 그가 (마치 의도적으로) 윈튼 과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방향으로 음악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식으로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실례로 필자는 브랜포드의 음악에 대한 어느 외국 잡지의 짧은 언급에서 그 자체를 논하기 보다는 동생 윈튼에 비해 인기가 낮고 따라서 윈튼이 일종의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식으로 이상한 방향의 논지를 펼쳐 나가는 것을 읽고 기가 막혔던 적이 있다. 국내 재즈 애호가들도 무의식 중에 마치 동생은 때로는 교조주의적이기 까지도 한 복고주의자이고 형은 정반대의 개방주의자로 소개함으로서 마샬리스 집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 상상을 유발하는 언론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넘어가지 않았는가?

브랜포드가 스팅의 앨범을 필두로 Crosby, Stills & Nash, Guru, The Grateful Dead, Public Enemy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앨범에서 세션으로 활동했던 것과 Buckshot Lefonque를 결성해 한동안 마지 이후의 재즈는 모두 이러한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는 식으로 열심히 연주활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그의 활동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분명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15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그중 13장이 진한 밥 스타일의 사운드를 담고 있다. (나머지 두 장은 클래식 앨범이다.) 게다가 그의 재즈 인생 초기는 Art Blakey Jazz Messenger가 자리잡고 있다. 아트 블래키는 자신만의 혜안으로 주목할 만한 신인들을 발굴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필자도 브랜포드의 첫 번째 녹음에 해당하는 Keystone 3(Concord 1982)앨범에서 In A Sentimental Mood를 들었을 때 느꼈던 감동을 기억한다. 당시 스팅의 앨범만을 통해서 형성되었던 브랜포드의 이미지와 다른 그 연주가 무척 생경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브랜포드는 재즈에 대해 수구적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현재 진행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앨범에 세션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또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Buckshot Lefonque를 결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밥의 이디엄을 담고 있는 그의 여타 리더 앨범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Charles Mingus의 Scenes In The City를 타이틀로 했던 1983년 첫 번째 앨범부터 2000년도 Contemporary Jazz에 이르기까지 앨범을 통해 나타난 그의 모습은 점진적으로 음악에 현대성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이 점이 필자로서는 윈튼과 구별될 수 있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윈튼은 재즈의 시간을 과거에 맞추어 놓고 고고학자처럼 과거의 것을 복원시키려 한다. 현재 진행형인 재즈와는 상반되는 행동이다. 지속적인 자신과의 단절을 기반으로 하는 재즈에 연속성을 부가하려는 시도를 계속 해오고 있다.

그의 색소폰은 지적인 동시에 열정적이라는 다소 모순되는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드러난다. 위험한 표현일 수 있겠지만 그의 색소폰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Wayne Shorter를 기본으로 John Coltrane을 살짝 섞어 놓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 보다는 한번 머리 속에서 정리하여 매끄럽게 만든 뒤에 조심스레 내놓듯이 그의 음악에는 냉철함과 이지적인 면이 많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브랜포드의 음악은 맛이 별로 없다.라는 평을 내리게 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드 밥은 열정적이다.라는 공리를 신뢰하며 이것을 그의 음악에 투영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 역시 처음에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그와는 한 세대 아래인 Joshua Redman의 학구적 연주를 들었을 때도 느꼈다. 그런데 현재 조슈아 레드맨은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지 않은가? 즉, 차가움과 지적인 면은 브랜포드의 음악이 안고 있는 결함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감정의 과잉을 막는 그의 음악은 그 이유로 다른 어느 것보다 음악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템포가 빠른 곡이건 느린 곡이건 간에 감정의 한 상태로 완전히 몰입되기를 거부하는 듯한 그의 음악에서 역설적이게도 회화적인 측면이 부상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유러피안 재즈를 언급할 때 회화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다른 차원에서 브랜포드의 음악에도 이 용어가 적용될 수 있다. 그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직접적인 일상이나 자연의 한 풍경이 아니라 그 일상과 자연을 그림이나 사진의 형태로 벽에 걸고 있는 한 실내 공간이다. 그 공간은 그림이나 액자 외에는 텅 비어 있는 다소 추상적인 공간이다. 이런 상상, 인상이 유발되는 것은 그의 음악을 구성하는 각 악기들이 강한 응집력으로 보여주기는 하지만 실제 음악 공간 내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즉, 그의 음악에는 일차적인 감정 발산의 여지를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여백이 많다. 따라서 감상자는 일종의 여과된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20여년간 발표된 13장의 재즈 앨범을 개성을 무시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좀 무리지만 새로운 감상을 요구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브랜포드의 음악이 지닌 특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대 포스트 밥 재즈에 다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재즈 앨범 중 가장 최근 앨범인 2000년도 앨범이 Contemporary Jazz라는 제목을 달고 있음은 의미 심장하다. 이제 재즈는 신전통주의를 제창했던 동생이 아니라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일종의 선언이 아닐까? 이제 누가 세션 맨으로서 힙합 리듬에 맞추어 색소폰을 불어대는 애시드 재즈의 전사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필자가 그의 세션활동이나 애시드 재즈 활동을 뒤로 하고 그가 밥의 이디엄에 입각한 연주를 강조한다고 그를 일종의 윈튼 마샬리스식 정통주의자로 만들려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그의 세션활동이나 Buckshot Lefonque활동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 활동 역시 주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단지 국내에서 그의 주요활동이 부차적 활동에 의해 가리워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이 달 그를 만나게 된다. 부디 그의 근작 앨범을 한 장이라도 미리 감상해 보고 공연에 가자. 그런데 정말 Mo’Better Blues를 들을 수 있을까?


주요 이력

2002. 5: 내한 공연 예정

2001: 2000년 작 Contemporary Jazz로 그래미 상 베스트 재즈 앨범 부문 수상

1994: Buckshot Lefonque 결성, 그래미 수상(베스트 팝 악기 연주)

1993: 그래미 수상(베스트 재즈 악기 연주 부분)

1983: 첫 리더 앨범 Scenes In The City(Columbia)발표

1982 ~ 1985: Wynton Marsalis 그룹에서 활동

1981: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활동

1960. 8.26 미국 LA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Listen!

Contemporary Jazz(Columbia 2000), Requiem(Columbia 1999), The Beautiful Ones Are Not Born(Columbia 1991), Mo’Better Blues(Sony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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