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s Salvadore Poe”는 리사 엑달(Lisa Ekdahl, 1971년 7월 29일 스웨덴의 Hagersten 출생)의 세 번째 재즈 앨범이다. 굳이 재즈라는 한정을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온 그녀의 활동이 재즈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스칸디나비아 대륙의 음악이 지닌 포크적 전통이 가미된 팝 성향의 셀프 타이틀 앨범 “Lisa Ekdahl”(1994)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앨범에 수록된 싱글 ‘Vem Vet(우리 말로는 ‘누가 알아’로 해석된다.)’의 성공으로 단번에 스웨덴 인기가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첫 앨범의 대중적 성공 이후 리사 엑달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스웨덴어가 아닌 영어 앨범을 녹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녀는 영어 앨범을 위한 곡들로 기존의 스탠더드 재즈 곡들을 선택했다. 어떻게 재즈 스탠더드를 노래할 생각을 했는지는 필자로서는 알고 있는 바가 없다. 단지 그녀가 19세였던 1990년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재즈 앨범의 음악을 담당하게 되는 피아니스트 피터 노르달(Peter Nordahl)을 이미 만났었다는 것에서 그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리사 엑달 특유의 장난끼 가득한 느낌의 첫 번째 스탠더드 곡 집 “When Did You Leave Heaven”(1995)은 또 다시 스웨덴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리사 엑달이 재즈를 지속적으로 노래할 의도를 지니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후 다시 “Med Kroppen Mot Jorden”(1996)과 “Bortom Det Bla” (1997)이라는 두 장의 스웨덴어 팝 앨범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7년 뒤늦게 미국에 발매된 “When Did You Leave Heaven”이 미국에서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자 다시 두 번째 재즈 앨범 “Back To Earth”(1999)를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 역시 대중적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발표한 앨범이 지금 당신이 감상할 “Sings Salvadore Poe”가 된다.
일반적으로 그녀의 재즈 앨범에 대한 평가는 상업적 성공과는 달리 대부분의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가 완전히 재즈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그녀의 창법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가 부르는 스탠더드 곡들은 근 40년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불렀던 방법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s),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사라 본(Sarah Vaughn)등의 재즈계의 디바(Diva)는 물론 최근의 다이아나 크롤(Diana Krall), 파트리시아 바버(Patricia Barber)등의 주목받는 여성 재즈 보컬과 비교했을 때 리사 엑달의 미성숙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는 100% 재즈 보컬로 인정하기엔 어딘지 어색한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는 그녀의 가냘픈 목소리로 노래되는 스탠더드 곡들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고 아양을 떨며 귀엽게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그녀의 팬들의 상당 수는 남자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시각에서는 백인 여성 재즈 보컬의 대명사 블로섬 디어리(Blossom Dearie)의 계보를 희미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음악보다는 깜찍한 외모를 강조한 뮤직 비디오로 승부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팝적인 창법을 기조로 짧은 호흡과 소녀같은 여린 음색의 목소리로 표현된 그녀의 스탠더드 곡들은 힘과 깊이 있는 목소리를 지닌 다른 여성 보컬들이 전달해 주었던 재즈 본래의 맛을 살리지 못하고 밋밋한 느낌을 준다는 평을 받았다. (필자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음을 인정한다.)
무엇보다 이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된 데는 그녀가 스탠더드 곡을 불렀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그녀의 목소리가 지닌 독특함으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재즈 보컬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바꾸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리사 엑달도 인식했을까? 이번 “Sings Salvador Poe”에서 그녀는 자신의 창법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바꾸어 새롭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당히 매혹적이다. 무엇보다 스탠더드가 아닌 새로운 곡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로 다가온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탠더드 곡과 그녀의 창법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객관적 입장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감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곡의 대부분이 가벼운 보사노바라는 점은 이 앨범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총 14곡 중에서 4곡을 제외한 전곡이 다양한 속도의 보사노바 리듬으로 꾸며져 있고 다른 4곡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한다. 이 보사노바를 노래하는 리사 엑달의 애교 스럽게 살랑거리는 창법은 보사노바가 지닌 밝고 따스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면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솔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장난기를 잘 절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제 누가 ‘Rivers Of Love’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밝은 웃음을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보사노바를 노래할 때 필요한 미묘한 떨림을 능숙하게 표현하는 그녀-특히 ‘The Rhythm Of Our Hearts’같은 곡에서-를 누가 아직도 미성숙한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앨범에서 리사 엑달은 30을 앞둔 나이여서 인지 이전의 두 앨범에 비해 매우 성숙한 창법을 선사한다. 이전의 스탠더드 앨범에서는 느리고 우울한 느낌의 발라드를 부를 때 종종 감정표현이 어색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Of My Conceit’같은 발라드 곡에서 드러난 깊이 있는 감정처리는 이제 그녀가 단지 애교만을 앞세운 노래를 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들이 리사 엑달의 시각적 이미지보다 노래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앨범의 제목처럼 리사 엑달은 살바도르 포(Salvadore Poe)의 곡을 노래한다. 살바도르 포는 브라질과는 상관없는 이탈리아 혈통을 지닌 뉴욕출신의 젊은 작곡가이다. 그는 이 앨범을 위해 리사 엑달에게 30여 개의 보사노바 곡을 주었고 나아가 이 앨범을 공동 제작하고 기타까지 연주하고 있다. 그의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곡들은 보사노바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한 흔들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매우 낙관적인 면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리사 엑달의 투명하면서 약간은 까실까실한 목소리에 잘 어울린다. 한편 여기에 피아노와 각종 혼 악기를 연주하고 앨범의 전 곡을 편곡한 마그누스 린드그렌(Magnus Lindgren)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그의 단순하면서 깔끔한 현악 편곡은 보사노바 리듬과 어우려져 따스하면서도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다. 이것은 앨범의 첫곡 Daybreak에서부터 드러나는데 플루트와 현악으로 된 전주는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해의 이미지를 그대로 연상시키면서 뒤에 나오는 리사 엑달의 목소리가 지닌 청순함을 드러나게 한다. 사실 이전의 두 앨범을 담당했던 피터 노르달 트리오의 편곡과 연주는 리사 엑달에게 나름대로 재즈의 정통성을 부여했음에도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풍의 연주는 생경한 리사 엑달의 창법과 어울리지 못해‘리사 엑달은 재즈를 부르려면 노래 연습을 더 해야한다’는 악평을 받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마그너스 린드그렌의 편곡은 리사 엑달의 목소리와 대조되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를 공기처럼 감싸고 있다.
한편 리사 엑달은 음악적 새로움을 보여주면서도 이전처럼 자신의 외모를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살바도르 포와 함께 찍은 Daybreak의 뮤직 비디오를 통해 여전히 청순미를 간직한 소녀의 모습으로 등장해 감상자를 매혹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 앨범은 리사 엑달이 그 동안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받았던 부정적 평가에서 완전히 벗어나 진정한 재즈 보컬로 인정받게 할 수 있는 면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만한 앨범이다. 필자가 현재 거주하는 프랑스의 예를 들면 지난 해 11월에 발매된 이후로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 데이 선물 목록에 포함될 정도의 대중적 반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점이 리사 엑달의 음악이 지닌 강점이라 생각한다. 스탄 겟츠(Stan Getz)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에 의해 보사노바가 재즈사에 편입된 이후로 많은 보사노바 앨범이 녹음되었다. 그리고 그 앨범들 중에는 상당한 음악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스탄 겟츠의 “Getz & Gilberto” 앨범 이후 “Sings Salvadore Poe”만큼 음악적 완성도와 대중적 친화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앨범은 드물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앨범이 무엇보다 사랑의 향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필자는 그 구분을 방안에 편안하게 배치된 가구들처럼 그냥 우리의 삶의 배경으로 휴식을 주는 가구같은 음악과 어느 미술관의 벽에 걸려있는 그림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진지한 자세의 감상을 요구하는 그림같은 음악으로 설명하곤 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리사 엑달의 이번 앨범은 가구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가장 편안한 소파같은. 만약 당신이 차가운 겨울에 따뜻한 한잔의 차와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이나 뜨거운 여름에 시원한 맥주 한 병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 아니면 그저 가벼운 흔들림으로 회색 빛 일상에 약간의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음악을 찾고 있었다면 당신은 최상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상투적 찬사가 아니다. 실제로 이 앨범은 그런 표현에 어울리는 음악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건 아니면 그냥 혼자이건 차가운 북쪽에서 온 이 따스한 보사노바 앨범을 통해서 당신은 맑음과 여유의 공간에 빠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