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ence – Richard Bona (Sony BMG 2001)

현재의 재즈가 과거의 재즈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탈 미국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즈가 세계화의 길을 걸으면서 단순히 재즈가 미국 고유의 음악으로서의 성격을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연주자들은 전설적인 미국 재즈의 명인들이 이룩한 업적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차원에서 벗어난 그들만의 재즈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현대 재즈의 탈 미국화는 블루스, 가스펠 등 미국 흑인 문화가 재즈의 근간이라는 것조차도 새롭게 생각을 하게 한다. 대신 자국의 민속적인 요소를 근간, 그러니까 자신이 자라온 문화적 배경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독자적인 재즈의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비평가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현대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월드 뮤직과의 관계라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문화를 흡수하다

리차드 보나가 최근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는지. 그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카메룬 출신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즈를 알기 전에 카메룬과 아프리카의 음악적 자양분을 먼저 흡수했다. 재즈는 한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나 알게 된 것이었다. 적어도 재즈를 알기 전까지 그저 리차드 보나에겐 음악은 음악일 뿐 다른 장르로 세분화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공인된 학습을 통해 음악을 알기 이전에 독학을 통해 음악을 느끼고 이해했다.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악기라도 눈으로 보고 그 연주법을 익힐 줄 아는 뛰어난 습득력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악기를 구하기 어려운 아프리카의 여건상 직접 악기를 만드는 능력도 함께 갖추었다고 한다. 특히 기타 줄을 구할 수 없어서 자전거의 제동장치용 줄을 사용해 줄로 대신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게다가 말 그대로 아마추어적인 악기로 연습한 그의 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함을 인식하게 만든다. 아무튼 그가 우리에게 알려진 베이스와 노래 실력 외에 다양한 악기를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카메룬에서의 삶을 그대로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약 이런 사람이 미국식 재즈를 그대로 따르려 했다면 어땠을까? 그의 천부적인 재능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쉽게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리차드 보나가 뉴욕에 가기 전에 파리에서 머물렀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프랑스는 유럽 재즈의 수도로 다양한 음악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또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실제 그가 카메룬에서 재즈를 알게 된 것도 음악 클럽을 열었던 프랑스인의 혜안(慧眼)에 의해서였다. 아무튼 파리에서 그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 다양한 연주자들과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수혜를 입은 아프리카적인 음악 유산이 어떻게 다양한 음악 문화와 결합될 수 있는 가를 익혔다. 그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그의 활동은 새로운 음악의 습득이 아닌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다양한 음악 요소들이 리차드 보나만의 것으로 발현되는 시기의 시작이었다. 웨더 리포트의 키보드 연주자이자 자비눌 신디케이트라는 멀티 문화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독자적 그룹을 지니고 있는 조 자비눌을 시작으로 기타 연주자 마이크 스턴, 팻 메스니 등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은 단순히 뛰어난 베이스 연주력이나 보컬 능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리차드 보나라는 한 인간에 내재된 독특한 음악적 색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미 우리는 팻 메스니 그룹의 <Speaking Of Now> 앨범을 통해서 리차드 보나가 어떻게 팻 메스니에게 새로운 음악적 동기를 유발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마이크 스턴의 앨범 <These Times>에서는 아예 마이크 스턴이 리차드 보나에 음악을 맞추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에 게이코 리의 <Vitamin K>앨범을 들어보자. “Wonder Of Love” 단 한 곡에 보컬로 등장하지만 이 한 곡만으로 우리는 그만의 음악적 색채를 느끼게 된다.

리차드 보나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앨범 <Reverence>

하지만 정작 그의 솔로 앨범들은 그렇게 국내에서 큰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그의 세 번째 앨범 <Munia>가 라이선스 앨범으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리차드 보나의 음악을 소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두 번째 앨범 <Reverence>야 말로 리차드 보나의 진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언제나처럼 다양한 베이스를 비롯하여 플루트, 기타, 타악기, 키보드 등을 연주하며 직접 자신의 음악을 현실화 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직접 그의 손과 입을 통해 현실화된 음악은 단순히 아프리카라는 지역에 머물고 있지도 않으며 재즈라는 특정 장르에 머물고 있지도 않는다. 분명 아프리카 출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지역적 특성을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보편성을 포기하고 있지도 않다. 쉬운 예로 “Ekwa Mwato”라는 곡을 들어보자. 아프리카가 아닌 쿠바의 색채가 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또한 일부러 쿠바적인 색채를 추구하려 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한편 장르적으로 보아도 팻 메스니, 길 골드스타인 등의 인물들이 참여하여 재즈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다른 음악적 스타일 또한 강하게 드러난다. 결국 리차드 보나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정서적으로 이 앨범은 리차드 보나 특유의 희망, 낙관, 긍정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실제 각 곡들의 제목을 살펴보면 이러한 이미지들은 쉽게 이해된다. 개개인의 사소한 감정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화해, 용서, 기적, 진실된 마음을 먼저 그는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좀 거창할지도 모르는 주제들이다. 그리고 한국의 감상자들이야 영어도 직접 이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카메룬 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생각이 들지만 편안하고 신비로운 그의 보컬과 따스한 태양이 빛나는 듯한 소박하고 밝은 사운드는 그 분위기만으로도 그가 전달하려는 음악적 전언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각 곡들이 분명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배열들이 하나의 전체적 관계를 형성하며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기에 보다 더 큰 음악적 재미로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번 앨범을 감상하는데 있어 그저 보컬 실력의 확인에만 목적을 두었던 감상자라면 보다 더 넓게 앨범을 감상하시길 바란다. 사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리차드 보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팻 메스니 그룹의 멤버로 내한하여 멋진 보컬 실력을 들려주었다는 사실이 가장 우선하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 필자도 그의 황홀한 보컬에 매료되었었고 지금도 그의 모든 능력가운데 보컬 능력을 가장 사랑한다. 이번 앨범도 팻 메스니 그룹을 통해 보여주었던 보컬 실력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그의 보컬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단계를 거치면 이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연주자이며 작곡가인지 나아가 얼마나 놀라운 스타일리스트인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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